2024년 8월 16일 금요일 날씨 맑음
중국행이 결정되고 나서, 헤어질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물론 내 친구들을 못 보는 것도 무척 섭섭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중국에서 머물게 될 3년이란 시간이 주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괜찮았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문제의 관계는 바로, 겸이 어머니(=큰 아이의 친구 엄마)였다. 겸이와 재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이긴 하지만, 겸이 어머니와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 건 둘이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재이가 다닌 학교는 한 학년에 12명, 전교생이 72명인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였다. 집 앞의 가까운 학교를 두고 부러 먼 학교를 지원해서 다닌 것은 겸이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된 학교의 모습이 너무도 이상적이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교직원 수가 부족하여 학부모들이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한다는 게 이 학교의 자랑 중 하나였다. 겸이는 셋째라서, 겸이 어머니는 이 학교의 학부모로서 경력이 깊었다. 그래서 한 학기 동안 학교를 보내며 겸이 어머니(편하게 ‘언니’라고 부르겠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언니가 리더를 맡아 모임을 이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늘 감탄했다. 사려 깊고, 세련되고, 담백하고, 게다 위트까지 갖춘 언니의 모습은 늘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언니는 나보다 아홉 살이 많았는데, 나도 언니의 나이가 되면 저렇게 너른 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생각할 때마다 결론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거였고, 그래서 멋진 언니 곁에서 오래 머물며 언니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언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의 크기에 비해 우리의 관계는 너무 얕았다. 애초에 내 지인이 아니라, 재이의 친구 엄마라는 사실부터가 마음에 걸렸다. 이 관계가 3년의 시간을 버텨주지 못할 것 같아 그게 너무 속이 상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결국 나는 재이가 마지막으로 등교했던 날, 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이 터질까 봐 내 속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쿨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고심 끝에 출국 전날, 나의 구구절절한 마음을 담아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언니는 더 큰 마음으로 답해주셨다.
한국 학교는 오늘이 개학이라 아침에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언니에게 보이스톡으로 전화가 왔다. 둘이서 기쁘고 반가운 이야기들을 실컷 나누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22분, 짧지 않은 통화로 에너지가 가득 채워졌다. 아침부터 기쁘고 기뻤다. 오늘 내 기분은 무조건 맑음이다!
하교 후, 아이들을 데리고 ‘허마선생’에 갔다. 하마선생은 며칠 전 한국인 친구에게 소개받은 마트. 여기서는 허마선생 배달권에 살면 ‘허세권’에 산다고 부를 정도로 허세권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허마선생은 지난주에 갔던 무인양품 바로 앞에 있는 매장이었다. (불행히도 우리 집은 허마선생 배달 불가 지역) 지난주에는 허마선생을 몰랐을 때라 그런 게 있는 지도 몰랐는데, 오늘은 알고 가니 바로 눈에 띄었다.
이제 생활이 안정을 좀 찾았으니 집에서 밥을 좀 먹고 싶어 남편을 보챘는데 이제야 그의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요리사인 큰 박씨는 필요한 식재료들을 사고, 나는 작은 박씨들을 쫓아다니느라 바빠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그간 다녔던 마트보다 규모도 크고 물건도 다양했다. 쇼핑을 마치고 물건을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간 우리는 알리페이와 웨이신페이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허마선생 어플을 통한 알리페이 결제만 가능했다. 허마선생 어플을 받으려면 우리나라 계정으로는 안 되고 애플 중국 계정이 필요한데, 남편의 핸드폰 배터리가 1% 남은 상황. 중국 계정으로 로그인 후 어플을 받다가 핸드폰이 종료되었다. 내 핸드폰으로는 중국 계정을 만들어놓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계정을 새로 만드는데 자꾸만 승인이 안 됐다. 남편도 중국 계정을 만들 때 한 번에 잘 되지 않아 여러 번 시도했다고 했다. 다행히 허마선생 고객센터(?) 같은 곳에서 충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줘서 남편 핸드폰을 충전 후 결제를 마쳤지만, 중국어도 할 줄 모르는 한국인들은 식은땀이 줄줄. (*허마선생 가실 분들은 꼭 미리 어플을 준비하세요!)
우리 집은 굉장히 한갓진 곳에 자리하고 있고, 자주 가는 롱지후 근처도 비교적 인구밀도가 낮아서 생활에 큰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생활 반경을 조금 넓혔더니, 복잡한 도시 생활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 같아 기분이 어질어질하다. 허마선생에서 장을 보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왔더니 금요일 퇴근 시간과 겹쳐 건물 앞 거리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디디(호출 택시)를 불렀는데, 기사님께 전화가 왔다. 아마 교통이 혼잡한 상황이라 전화를 주신 것 같았다. ’뚜이부치(죄송합니다)…‘
아, 내가 진짜 중국에 왔구나. 여기가 바로 인구 1300만의 대도시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