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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Sep 27. 2024

귀여운 책 수다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날씨 구름

  저녁에 아이들이랑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데 재이가 물었다.

- 엄마, 오늘 뭐 했어?

- 엄마 오늘 집에서 책 읽었지

- 또? 또 집에만 있었어?

- (갑자기 눈치) 엄마 어제는 밖에 나갔다 왔어

- 뭐 했는데?

- 아빠랑 나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고 산책했지

- 그럼 그 전날은?

- 음, 화요일은 써니 이모집에서 삼겹살 파티해서 갔다 왔잖아

- 그 전 날은?

- 월요일은 준이 형아 엄마 만나서 이거 손톱 예쁘게 하고 놀았고

- 아 그러네, 근데 왜 엄마 맨날 책만 읽어?

- 책 재밌으니까

- 오늘은 무슨 책 읽었어?

- 어떤 작가님이 일 년 동안 텃밭 가꾸면서 일기 쓴 거 읽었는데 재밌더라?


  마침 오늘 읽은 책은 재이도 좋아할 내용이라 재이랑 같이 책 수다를 떨었다. 작가님이 사마귀 알집을 알현한 일에 대해 쓰신 걸 보는데, 봄에 재이가 숲산책에 가서 거품이 보글보글한 사마귀 알집을 보고 왔던 일이 생각났다. 숲산책 선생님께서 사마귀 알집 보기가 힘든데 아이들이 오늘 굉장히 귀한 경험을 하고 왔노라고 말씀해주셨던 터라, 작가님께서 쓰신 ‘알현’이라는 표현을 보고 웃음이 번졌다.


  또, 작가님께서 텃밭을 가꾸어 수확한 작물들을 아파트 이웃들과 나누는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넉넉함이 좋았는데, 이 또한 재이가 같은 경험을 해 봐서 이해가 쉬웠다. 재이가 한국에서 다녔던 학교는 시골마을 작은 학교라 학년마다 텃밭이 있었다. 작은 텃밭이지만 수확한 작물을 열두 명의 학생들이 고루고루 나누어 집에 가지고 올 정도로 양이 충분했던 걸 떠올리며 그때의 추억을 함께 나누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신명나게 늘어놓고 싶다. 중국에 와서는 그걸 하지 못 하는 게 내심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재이가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내가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이야기를 하면, 숲 유치원 출신인 데다 숲 사교육까지 받은 재이가 찰떡같이 받아쳐서 ‘그거 뭐지 뭐지’를 백 번씩 말하며 본인이 경험한 이야기를 줄줄 들려주었다. 우리 재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마냥 기특하고. 대화에 끼지 못 하는 시안이는 옆에서 계속 ‘흥 나만 못 얘기하고’ 하며 흥흥 거리는데 그 또한 넘치게 귀엽고.


  모쪼록 평온한 날들이다.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유현미


읽는 내내 마음이 환하게 맑았다. 작게 옹송그리고 있던 마음이 넓게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도시텃밭 그림일지’라는 부제에 걸맞게 작가님께서 일 년 간 텃밭을 일구시며 쓴 일기들이 담겨있는데, 여기서 문제는 작가님의 글맛이 너무 좋다는 거다. 갓 따온 싱싱한 쌈채소 씻어서 흰밥 한 술 뜨고 맛있는 된장쌈장 올려 우물우물 먹다 보니 어느새 밥 한 그릇 뚝딱 비운 것처럼, 정말 큰침이 꼴깍 넘어가게 맛있는 글이었다.


자연을 통해, 엄밀히 말하면 자연을 대하는 작가님의 너른 마음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았다. 재미있게 책장을 휙휙 넘기며 읽었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어깨에 힘이 빠지고 단단히 묶여있던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이 책이 너무 좋았다.


종이책으로, 고운 색을 입은 일러스트까지 함께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아쉬움이 커서 이 책은 구매 목록에 넣어두었다. 종이책으로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게다 선물용으로도 아주 좋을 책, 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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