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없음

by 김씩씩

요즘 내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장 큰 문제는 의욕이 없다는 것이었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고, 도무지 생활에 의욕이라는 게 없었다. 매일 집에서 고요하게 내 시간을 보내는 게 좋기도 했지만, 마음이 한 번씩 요동칠 때면 감정의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니까. 억지로라도 힘을 내서 집 밖에서의 재미도 좀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노동절 연휴에 모처럼 남편과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커피 맛집이라고 소문난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카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인기가 좋아서 테라스 자리까지 모두 만석이었다. 마침 빈자리가 하나 생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지저분한 테이블을 보니 마음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다행히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직원이 와서 눈치껏 빈 잔을 치워주었다. 다만, 아이스 음료를 마신 자리였던 터라 컵이 놓였던 곳이 동그란 흔적을 남겨놓았는데 멀뚱히 앉아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숨이 나왔다.


중국에서는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 정정한다, 내가 사는 정저우에서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신 뒤 자리를 떠날 때 테이블을 정리하지 않고 간다. 심지어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는 매장 내에서도 일회용 컵을 제공하는데, 다들 다 마신 컵과 쓰레기들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간다. 그래서 카페에 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너저분한 테이블이고, 이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은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진다. 스타벅스에서 직원에게 테이블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면, 테이블 위에 있는 컵들만 들고 가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끝이라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내가 직접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물티슈로 테이블을 닦아 사용하곤 했다.


내 눈앞에 남겨진 동그란 물 자리를 보며, 이게 지금 테이블을 정리해 주고 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갑갑해졌다. 역시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돈 쓰고 스트레스받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때 직원이 행주를 들고 와서 테이블을 닦아 주었다. 여기서는 테이블 닦아주는 카페를 보는 게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역시 소문난 커피 맛집의 서비스는 다르다고 생각하던 차에 직원의 손에 들린 행주가 눈에 들어왔다. 자고로 테이블을 닦는 행주라 하면 깨끗하게 빨아서 물기를 꽉 짜낸 것이어야 하는데, 저게 지금 무엇인가? 마른행주도 아니고, 물기가 20% 정도 남아있는 행주의 꼴을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순간 코끝을 스치는 쿰쿰한 냄새…


직원이 테이블을 정리해 주고 간 뒤, 화장실에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말끔하게 정리된 테이블을 보며 기분 좋게 자리에 앉던 그가 킁킁거리며 물었다.

- 이게 무슨 냄새야?

- 테이블 정리해 주고 간 냄새

남편은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티슈를 들고 세면대로 가 물을 적셔와서 꼼꼼하게 테이블을 닦았다. 테이블 냄새를 맡더니 다시 또 닦고, 마른 티슈를 가져다 남은 물기를 닦은 뒤, 티슈를 테이블 위에 두지 않고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렸다. 역시 마지막까지 내 마음에 쏙 들게 일 잘하는 코리안을 보니 흡족한 웃음이 지어졌다.


남편이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아준 덕분에 잠시 집 나갔던 입맛이 돌아와서 커피를 맛있게 마셨다. 정저우에서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커피 맛에 감탄하고 있는데… 린넨으로 유리컵의 물기를 닦고 있는 직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린넨은 과연 괜찮을까? 차라리 닦지 말지, 자연 건조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다시 머리가 복잡해져서 마시던 커피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소문난 커피 맛집과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마음에 안 드니까 안 가면 그만인데 기분이 씁쓸한 건 몇 안 되는 선택지를 또 하나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딜 가서 무얼 먹든 마음에 쏙 들게 만족스러운 적이 별로 없다 보니 자연스레 기대가 줄어들며 의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기껏 힘을 내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또 허탈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중국 냄새나지 않는 말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맛있는 커피집도 막상 가서 뚜껑을 열어 보면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오는데, 더 이상 무얼 기대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한데 어디 가서 답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렵다, 어려워. 예민한 한국인의 중국살이는 참말 고단하다. 무얼 상상하든 상상 이상으로 마음이 고단하다. 목놓아 울고 싶을 만큼.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