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세인트존 멘델의 장편소설 <스테이션 일레븐>을 읽고 생각이 많아졌던 적이 있다. 이 책은 ‘조지아 독감’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순식간에 종말을 맞이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문명의 종말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간 누리며 살던 것들을 모두 잃게 된다. 의식주와 같이 기본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전화, 교통수단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 원초적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이 책을 읽고, 나는 중국에 와서 지내는 나의 삶이 이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테이션 일레븐>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시부모님께서 중국에 오셨다. 오시면서 한국에서 이런저런 물품들을 가져오셨는데, 그중 맥심 믹스 커피도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믹스 커피를 크게 즐기지 않는 편이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한 잔 타서 마셨는데, 아니 이게 이렇게 맛있었단 말인가? 믹스 커피를 마셨을 때의 내 기분은 마치 <스테이션 일레븐> 속 등장인물들이 문명 종말 이후에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찾기 위해 빈 집을 찾아 헤매다가 통조림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 같았달까? 시부모님께서 가져다주신 한국 먹거리들이 구호품처럼 느껴져 더없이 소중했다.
하루아침에 내가 누리던 익숙한 것을 모두 잃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것. 그것은 막연히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피로하고 서글픈 일이었다. 중국 살이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건 아마도 음식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중국 음식도 입에 맞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라 거의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도 먹는 것이 힘든 이유는 식재료가 달라서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아니라 음식을 먹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중국은 워낙 땅이 넓어서 그런지 같은 작물에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다양한 맛이 존재했고, 대부분은 입에 맞지 않았다.
하나둘씩 먹을 것이 줄다 보니 자꾸만 내가 아는 맛, 익숙한 맛을 찾게 되었고, 결국에는 역시 한국맛이 제일이었다. 정저우에 있는 마트에는 한국 식자재가 많지 않아서 주로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곤 하는데, 타오바오에 검색하면 웬만한 한국 제품은 대부분 구매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우리집 요리사인 남편의 출장으로 며칠간 내가 요리를 담당하게 되어 유부 초밥과 김밥 재료를 주문했다.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유부초밥을 맛본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엄마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한국에서 산 세월이 고작 4년, 7년밖에 안 되는 아이들에게도 역시 한국맛이 최고였다. 유부 초밥 너무 맛있다며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짠하고 예쁘던지. 그래서 다음날은 김밥을 쌌다. 큰 아이는 김밥을 먹더니 눈을 감고 기절하는 연기를 선보이며 슬며시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고, 작은 아이는 식당보다 맛있다며 엄마 식당 차려야겠다고 김밥집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김밥, 그게 뭐라고.
별 것 아닌 것의 소중함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비록 문명 종말까지는 아니지만, 삶의 송두리가 바뀐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매일매일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곽미성 작가님의 책 <언어의 위로>에서 ‘외국에서의 삶의 질은 다름 아닌 외국어 능력으로 달라졌다.’는 문장을 만나 마음에 새기고, 이곳에서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러니 내일은 분명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다. 나는, 그런 희망으로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