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관계는 처음이라

by 김씩씩

중국행이 결정되었을 때, 주변 지인들에게 정저우에는 한인들이 얼마나 살고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는 도시인 것 같더라 답하면, 다들 힘들겠다고 걱정했다. 그래도 가서 꼭 한인 커뮤니티를 찾아보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웃음으로 넘기며 흘려버렸다. 나는 혼자인 것도 좋아하고 외로운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인 커뮤니티에 속해 피곤한 관계를 만드는 게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에 온 지 열흘 만에 깨달았다. 그건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열흘 동안, 말도 통하지 않고 심지어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바보처럼 지내다가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신입생 환영회에 갔다가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말로 대화를 하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는 걸 꾹꾹 누르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한인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싫은 것이 많아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이래저래 싫은 게 많아서, 나는 내가 만든 좁고 안전한 관계망 속에서 고요한 삶을 사는 것을 추구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심지어 적지도 않은 나이에) 완전히 새로운 관계망 속에 유리알 같은 나를 던져두려니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나에겐 한인 커뮤니티가 절실했으니까.


듣던 대로 정저우에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고, 내가 속한 커뮤니티 역시도 열 명도 안 되는 한인들이 모여 교류하고 있었다.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와서 살고 있는 이들이,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는 게 참 든든하면서도 신기했다. 보통 만남이 거듭되면 누군가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로 인해 관계의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게 일반적인데 이상하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불현듯 ‘진상 불변의 법칙’이 떠올랐고, 어쩌면 이 모임의 진상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한국 친구들을 만나니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는 것도 있지만, 실제 중국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보니 이곳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사소하게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는 맛집 추천부터, 현지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건강 보험 팁까지, 생활에 필요한 많은 조언을 얻었다. 이곳에서 한인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과 친구가 되지 않았더라면, 장담컨대 내 생활의 퀄리티는 현저히 떨어졌을 것이다. 한국 친구들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조언도 얻고, 이따금 만나 한국어로 속 시원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무탈하고 건강하게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최근 친구들의 이주 계획을 연달아 들으며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보통 관계 속의 누군가가 헤어짐을 통보해 올 경우, 그것은 기껏해야 동네 간의 이동이거나 멀어져 봤자 도시 간의 이동이니 아쉬워도 견딜만했는데, 이번에는 스케일이 달랐다.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에는, 그와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 먼 경우도 있었다. 성별도,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른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생각이 드니까, 자꾸 서글픈 마음만 쌓여갔다. 함께 보낸 시간은 짧지만, 관계의 밀도가 높다 보니 인생의 그 어느 때에 만난 인연보다도 애틋함이 큰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이토록 허무한 이별이라니. 살면서 이런 관계를 맺어본 게 처음이라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속상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러니까 해외 생활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빠지면 안 된다’며 조언도 아니고 위로도 아닌,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 한 말을 건네는 남편을 보니 벌컥 화가 치밀었다. 받기만 하는 거 힘들어하는 성격인데 여기 와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늘 도움을 받기만 해서 마음이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너무 고마우니까, 맛있는 밥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심지어 내겐 밥을 사는 그 쉬운 일마저 어려웠다. 이곳에선 주로 어플로 주문을 하고 결제를 하는데, 나는 까막눈이라 메뉴를 읽을 수도 없고 직원과 중국어로 소통할 수도 없어서 밥을 살 기회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다들 웃으며 다음에 사달라고 할 뿐이었다. 이토록 고마운 이들에게 ‘너무 빠지지 않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는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겐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나의 마음을 아낌없이 모두 쏟아부을 작정이다. 이별 뒤에 남겨질 슬픔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적어도 아쉬움만큼은 남지 않도록 남은 시간을 단단하게 빚어갈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꺼내보아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