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숨구멍

by 김씩씩

이번 주부터 아이들 봄 방학이 시작되었다. 금요일이 중국 연휴 중 하나인 ‘청명절’이라 가족과 함께 좋은 날씨를 즐기라고 준 방학인 것 같은데, 하나도 반갑지 않다. 등록금도 많이 받으면서 툭하면 방학이라니.


이젠 아이들이 좀 커서 둘이 알아서 잘 노니까 방학이라고 내가 크게 해 줄 건 없다. 밥이랑 간식만 챙겨주면 되는데, 힘든 점은 너무 시끄럽다는 거다. 우리의 열 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침대와 소파(베드)와 식탁이 차례로 놓여 있다.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아이들이 침대를 점령하면 나는 식탁을 쓰고, 아이들이 식탁을 점령하면 나는 침대를 쓴다. 좁은 공간에서 답답하게 지내는 아이들도 안쓰럽지만, 나는 나도 참 안쓰럽다.


그래서 오랜만에 남편을 달달 볶았다. 대체 큰 집으로 언제 옮길 수 있느냐고.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책임자 격인 선임 연구원이 남편에게, 큰 집을 둘이 같이 쓰고 있는 연구원들이 있는데 그 둘이 집을 같이 쓰기 싫어하니까 그들이 살고 있는 집과 우리 집을 바꾸면 된다고 얘기했단 걸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집을 바꿔 쓰라고? 집을 바꾸는 게 짐 가방 하나 챙겨서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가?


아무튼, 큰 집을 쓰고 있던 A와 B는 결국 따로 살게 되었다. B가 A와 같이 살 수 없다고 난리를 쳐서 B는 원룸으로 독립하게 되었고 A는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작년 말, A는 이래저래 문제가 많아 연구소에서는 A와 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1월까지 집을 비울 것을 통보했다. 남편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A가 집을 비우면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고 했다. 엥? 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계약도 하지 않은 이에게 집부터 제공하고, 그냥 나가라고 하기 미안하니 내준 집에서 좀 더 살면서 다음 직장을 구하라고? 체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중국의 방식이 너무 어처구니없어 기가 막혔다.


어느덧 4월, 그래서 A는 집을 비웠느냐? 아무도 모른다. 며칠 전 남편이 집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거냐 물었더니 선임이 자기는 A랑 대판 싸워서 연락이 안 되니까 남편이 직접 A에게 연락해 보라고 했단다. 뭐???????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국가 기관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중국에 와서 살며 이곳의 일 처리 방식을 보면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건 최악이었다. 남편과 나, 우리 둘 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하고 아쉬운 소리 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 성격인데, 우리 같은 성격은 정말 중국에서 살기 힘든 것 같다. 중국에 와서 한인 친구들에게 누누이 들었던 말이 ‘중국에서는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해야 한다, 계속해야 한다, 들어줄 때까지 해야 한다’였는데, 이곳이 그런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스트레스.


공교롭게도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는 첫날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온 북클럽의 줌 모임이 있었다. 방학은 생각지 못한 변수였는데, 아침 8시부터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의자를 가지고 부엌에 들어가 싱크대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고 모임에 참여했다. 부엌에 문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날 이후, 아이들과 있다가 소음이 너무 피로하게 느껴지면 책과 에어팟과 의자를 들고 부엌으로 가 조용히 문을 닫는다. 이렇게 짠하게, 숨구멍을 찾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나는 언제쯤 번듯한 숨구멍을 가질 수 있을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