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이 예의인 건 알고 있습니다만

by 김씩씩

지난주부터 중국어 과외를 시작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온라인으로 선생님을 찾아서 한 번 만나봤는데 좋으신 분 같더라며 내게도 같이 수업을 들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승낙했다. 집순이로 지내는 터라 현지인과 대화할 기회가 전무했던 나에게 원어민과의 수업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중국어 내공이 좀 쌓이면 현지인과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혼자 하는 공부로는 내공이 쉽사리 쌓이지 않아 그날이 언제 올지 까마득한 상태였던 차에 언니의 제안이 무척 기쁘고 반가웠다.


언니가 선생님을 만나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기혼 여성이며 고등학교에서 중국어 교사로 일하다 휴직 중인 상태라고 했다. 언니는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나에게 소개하는 것이 괜찮을지 걱정했는데, 나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설령 그녀가 중국어 교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원어민인 것만은 확실하니까.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중국어를 잘하는 한인들한테 듣자 하니 이곳 사람들이 허난성 사투리가 심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혹시나 나의 선생님이 사투리를 쓰는 분이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티브이에 나와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던 외국인들이 스치며 아찔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별 수 없지 뭐. 사투리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처지이니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첫 수업에 가는 길, 수업료도 내지 않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마음이 찜찜했다. 오래전 사교육 시장에서 일할 때 과외비가 입금되지 않으면 혹시나 수업료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하곤 했던 게 떠올랐다. 중국은 과외비를 후불로 지불해도 괜찮은가? 아니면 선생님도 옛날의 나처럼 불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 건 아닐까? 수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첫 수업을 맞이했다.


중국인 선생님과의 수업은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한때 가르쳐본 입장에 서 봤던 자로서 선생님의 경력은 틀림없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원어민의 입장에서 기초 회화는 날로 먹으려고 들면 꿀꺽 삼켜버릴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수준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빼곡하게 수업 준비를 해 오셨다. 외국인의 날 선 의심이 미안할 정도였다. 선생님의 서툰 영어와 우리의 서툰 영어가 힘을 합치고, 번역기의 도움까지 함께 하니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는 본문의 회화 내용을 읽어 매일 위챗 음성 메시지로 보내는 숙제를 내주셨다. 중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음성 메시지를 편하게 사용하는 것에 반해, 음성 메시지를 사용이 어색하고 수줍은 한국인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과제였다. 어쨌거나 숙제이니 본문을 읽어 보냈는데,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보낸 음성을 끝까지 들으시고 하나하나 발음 교정을 해주셨다. 채팅방에서 문자를 쓰지 말고 음성으로 보내라고 하셨을 땐 열여덟 철부지처럼 응석을 부리고 싶을 만큼 숨이 턱 막혀왔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겐 중국어로 응석을 부리는 일이 더 어려웠으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번역기를 돌려 복사해서 채팅창에 붙여 넣기 하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번역기의 발음을 듣고 따라 하며 몇 번씩 연습하고 보내도 내 발음은 미숙할 수밖에 없었고, 선생님께서는 내가 보낸 문장을 제대로 된 발음과 성조로 다시 읽어 보내주셨다. 아니 수업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서 피드백을 주신다고? 듣자 하니 중국 선생님들은 수업 후에도 이렇게 음성, 영상을 보내는 숙제를 내주시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해주신다고 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 말로 들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중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 한인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수업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언니는 아이의 중국어 과외비도 후불로 드린다고 했고, 중국 거주를 오래 한 친구도 과외와 같은 개인 레슨인 경우는 수업료를 후불로 드린다고 했다. ‘한국은 선불이잖아요?’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다들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며, 아차 싶은 표정이었지만 그 뒤에 따르는 반응은 모두 같았다. ‘그런데 뭘 믿고? 어떻게 믿고?’ 웃음이 났지만, 내 마음도 같았다. 한국에 있으면 애초에 이런 의심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텐데, 후불은 약자의 본능이 택한 방식이었다. 나 역시 완벽한 선불은 자신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수업 전에 수업료를 드리면 내 마음도 편하고 선생님도 기쁘실 것 같아서, 다음부터는 수업 가는 길에 수업료를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수업 전 날, 미리 예습을 좀 하면 좋을 것 같아 수업 진도를 여쭈었더니 생뚱맞게 벚꽃이 만개한 곳에서 찍힌 선생님의 독사진이 왔다. 음성 메시지를 들어보니 ‘선생님은 일본에 왔다.’ 나는 사진을 보자마자 미친 거 아닌가, 이런 것도 문화적 차이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어떻게 미리 한마디 말도 없이, 와 진짜 미쳤네. 내 머릿속은 험한 생각들로 가득했는데, 함께 수업을 듣는 언니는 나와 다르게 때 묻지 않은 구석이 있어서 계속 나에게도 ‘설마 그랬으려나? 진짜 일본 갔으려나?’ 하더니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진짜야? 너 지금 일본이야?’ 나는 언니가 서툰 중국어로 남긴 음성을 듣고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분노하기 급급했는데, 언니에게는 나에게 없는 인류애가 느껴졌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뜨겁게 스치고 간 생각은 수업료 선불로 안 줘서 진짜 다행이란 거였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 순간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인류애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 돈.


한참 뒤에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명랑한 목소리로 깔깔 웃으며 ‘조ㅑ킹’이라고 말하는데, 너무도 기가 차서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다. 아니, 조킹이라뇨. 선생님? 우리가 농담 따먹기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요? 와, 이것도 문화적 차이인가? 이 죽일 놈의 문화적 차이는 대체 어디까지인 건가.


어제는 두 번째 수업을 다녀왔다. 수업은 역시나 만족스러웠고 훌륭했지만, 조킹 러버 선생님을 품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 작아서. 이번에도 수업료는 후불로 드리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수업료는 후불로 드릴 수밖에 없지만,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생님께 가득 찬 보람을 드릴 것을 약속드릴게요. 짜이요!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