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와서 만난 한인들의 삶을 보면 대체로 풍족했다. 한중 부부는 유학 중에 만나 결혼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 유학까지 보낼 정도면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집안인 셈이라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주재원으로 온 경우에는 집과 자녀 학비 등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부분이 많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어 보였고, 중국에서 일을 하는 한국인의 경우에도 외국인은 현지인들보다 많은 급여를 받기 때문에 생활이 넉넉한 편이었다. 중국의 연구 기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남편의 경우에도 현지인들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기관에서 자녀 학비를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에 버는 돈이 고스란히 아이들 학비로 쓰인다는 것이다.
중국에 오면서 가장 고민됐던 부분이 아이들 교육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상태였고 둘째는 유치원생이었는데, 나는 아이들을 중국의 공립 교육 기관에 보낼 자신이 없었다. 초등의 경우 한 반에 5-60명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교사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숫자인지 의심스러웠다. 아이가 그곳에서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른인 나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아이에게 시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립학교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 아이들만으로도 포화 상태라서 외국인 자녀는 공립학교에 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립학교의 경우는 공립학교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은 것 같았으나, 외국인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중국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다닌다는 이중 언어 학교도 고려해 봤지만 중국어와 영어 둘 다 할 줄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중 언어 학교는 언어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라 선택에서 제외되었다. 그러고 나니 남는 것은 국제학교뿐.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저우에 있는 국제학교는 중국 내 다른 국제학교들에 비해 학비가 저렴한 편이라, 우리는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입학한 뒤 상황을 살펴보니, 이곳은 국제학교임에도 중국 아이들이 90%였다. 하교할 때 가 보면 아이들을 데리러 온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셰 같은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처음 봤을 땐 이게 웬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동네 부자들은 여기 다 모인 느낌이었다. 아이 둘을 정저우 최고 부자들과 같은 학교에 보내고 있는 우리집의 뚜껑을 열어보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 기관에서 급하게 제공해 준 집은 신축 아파트의 하얗고 깨끗한 원룸이었다. 원래 연구원 한 명에게는 원룸, 연구원 두 명이 같이 쓸 경우에는 투룸 이상을 제공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너희는 가족이 왔으니 일단 거기서 지내고 있으면 큰 집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했는데, 8개월이 넘도록 ‘일단’의 상태이다. 중국에 와서 중국 사람이 쓰던 (더러운) 집을 쓸 자신이 없던 나는, 작아도 새집인 우리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으나 이제는 좀 힘들다. 혼자 편히 숨 쉴 구멍조차 없이 작은 집에서 넷이서 북적북적. 지내다 보니 어찌어찌 적응은 되었지만, 조용히 큰 숨을 내 쉬고 싶을 때면 벌컥 화가 치밀곤 한다.
네 가족이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호출 택시 중에서도 제일 싼 옵션의 택시를 불러 늘 꼬질꼬질한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아이 둘을 정저우에서 가장 비싼 학교에 보내는 탓에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상대적 박탈감이 따라붙는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누리고 사는 것, 이를 테면 크고 좋은 집에 살며 가정부를 쓰면서 이곳의 저렴한 물가를 즐기며 사는 것을 볼 때는 허탈한 마음마저 든다. 중국에 살면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생활의 이점조차 내겐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라니.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아이 둘을 낳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내 살림에 손을 대는 게 싫어서 산후 도우미조차 부른 적 없는 예민과 까칠함의 아이콘 아니겠는가. 아무리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해도 낯선 중국 사람을 집에 들인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게다 나는 알뜰살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가치 없는 일에 돈 쓰는 것을 극도로 아까워하는 사람. 이곳은 택시비가 2-3천 원, 먼 곳을 가도 5-6천 원이면 해결될 정도로 무척 저렴한 편이다. 그렇지만 혼자 커피라도 마시러 나가볼까 싶으면, 왕복 택시비에 커피 값까지 더하면 만원이 훌쩍 넘는다. 한국에서 다니던 것 생각하면 쓸 수 있는 돈이지만, 여기서는 ‘굳이’ 쓰고 싶지 않다. 비싼 카페에 가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는 있지만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며 생기는 여러 피로감을 생각하면, 호쾌하게 만원이 넘는 돈을 쓸 가치가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곳의 물가가 한국에 비해 저렴하다고 해도 여기서는 돈을 쓰는 일에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돈을 못 쓰는 것도 있지만, 돈이 많다고 해도 굳이 이곳에서 돈을 쓰고 싶을까? 나는 그냥 아껴뒀다 한국 가면 쓰고 싶을 것 같다.
이렇게, 여러모로 까탈스럽고 피곤한 내게도 드디어 행복이란 것이 찾아왔다. 요즘 나는 버스비, 1위안(=200원)의 행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중국에서 돈과 관련된 결제는 알리 페이와 위챗으로 모두 가능했는데 딱 한 가지 불가능한 게 버스였다. 정저우는 외국인이 별로 없는 도시라서 그런지, 중국 내 다른 도시에 거주 중인 한국인들이 알려주는 정보로는 버스 이용이 불가능했다. 이곳에서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은행 계좌가 있어야 했고,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직업이 있어야 했다. 직업이 없는 외국인은 버스 이용이 어려웠다. (지하철은 되는데, 대체 왜 버스는 안 되는 것인가!) 한국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어봤는데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유일한 중국 사람, 친구 남편이 인터넷으로 교통 카드를 주문해 주었다. 요즘은 실물 교통 카드를 쓰지 않아서 다들 어디서 충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지하철역에 들고 가서 물어보면 무슨 수가 생길 테니, 일단은 너무 고맙고 너무 든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옆집에 사는 인도 청년에게 위챗으로 버스 탈 수 있는 법을 배워왔다. 남편과 인도 청년은 은행 계좌가 있는 외국인이라 굳이 필요 없는 정보인데, 이 친구는 이걸 어떻게 알았지?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봤는데, 된다! 드디어 내 위챗에도 버스 코드가 만들어졌다. 위챗 계좌에서 자동으로 결제되니 카드를 충전할 필요도 없었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버스를 타 봤다. 우리집 앞에 오는 버스가 딱 한 대 있는데, 노선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카페도 가고 우리가 자주 가는 쇼핑몰도 간다. 이번 주에는 버스를 타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버스가 아이들 학교까지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환승을 해야 하지만, 나는 환승을 하지 않고 일부러 30분 정도 거리에서 내려 산책을 했다. 뾰족했던 마음에 1위안이 주는 행복감이 아주 커다랗게 들어찼다.
지하철을 처음 탔을 때 지하철 요금이 2위안인 걸 보고도 놀라긴 했지만, 집 앞에 지하철역이 없어서 생활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가끔 주말에 아이들과 재미로 한 번씩 타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버스는 며칠 만에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게 느껴진다. 이제야 중국의 저렴한 물가를 제대로 누리고 사는 기분이랄까. 이런 데서 행복감을 느끼는 내가 너무 소시민 같아서 짠한 마음마저 들지만, 소시민이라 그런 걸 어쩌겠나 싶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내 생활에 버스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는데,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지경이 넓어진 기분이 든다. 밖에 나가 장도 보고 커피라도 사 마시며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야 중국어가 조금이라도 늘 텐데, 불필요한 돈을 쓰는 게 아까워 매일 집에만 있으니 계속해서 고여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버스 타는 방법을 알아보았더니 결국 길이 생겼다. 하루하루 새롭게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스스로가 기특하던 차에, 안미옥 시인의 시를 읽다 마음이 울컥. 마음이 붙잡혀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매일 연습하고 있다
어제와 다른 맛이 난다
ㅡ 안미옥, 「굳은 식빵을 끓여 먹는 요리법」 中에서
나는 오늘도 람보르기니가 부럽지 않은 1위안짜리 버스를 타고, 씩씩하게 30분을 걸어서, 정저우에서 가장 비싼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것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다. 버스를 타기 딱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