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오게 된 건, 불가항력적인 결정이었다. 남편은 인생의 절반을 한 곳만 바라보며 달려왔는데 우리나라의 사정이 좋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그를 받아줄 곳이,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줄 곳이 없었다.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그가 연구하는 분야는 직격탄을 맞았고 국내에서는 더 이상 연구를 이어갈 수가 없어 중국의 연구 기관으로 오게 되었다.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원망스러웠다. 내가 마음 편히 탓할 수 있는 곳이 남편밖에 없어서 그를 원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이따금 생활에 우울감이 찾아올 때에도, 나는 남편이 미웠다. 한 번씩 감정이 요동치는 날이면 목청껏 소리 내 울며 그의 속을 뒤집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 근무하는 그에게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힘듦이 있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람을 내가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자꾸만 그를 궁지로 몰아세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했다. 내 마음도 자꾸만 벼랑 끝에 몰리니 나 조차도 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들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마음이 잠잠한 날에는 그 커다란 덩치가 그렇게 가엾을 수가 없고, 그의 뒷모습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는데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가 없었다. 그가 와락 무너져 버릴까 봐. 내 한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덜컥 그를 받아들일까 봐. 더 이상 탓할 곳이 없어질까 봐. 별 시답잖은 것들이 두려웠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척,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았다.
폭풍이 수차례 지나가고 나니, 잔잔한 날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고요해진 마음으로 시를 읽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조용히 소리 내어 시를 읽는 시간이 주는 분명한 위로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달게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난생처음 시를 읽다 펑펑 울어버렸다. 눈이 뜨겁게 차오르고 목이 메더니 결국에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하염없이 펑펑…
그를 불쌍히 여겨봐
가엾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해봐
불쌍한 마음을 데려와
불쌍하게 생긴 마음이 그의 온도라고
불쌍함의 크기가 그의 덩치라고
불쌍한 냄새를 풍기는 게 그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면,
생각만 하면
불쌍한 마음이 강처럼 도착하지
ㅡ 박연준, 「미운 사람과 착함 없이 불쌍함에 대해 말하기」 中에서
내 옆에 있는 불쌍한 사람이 떠올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짊어진 가장의 무게를 생각하니 가엾은 마음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내색 없이 매일을 묵묵히 살아가는 그가 너무 불쌍해서, 그의 힘듦을 모른 척 한 내 마음이 너무 형편없어서, 화가 났다. 이 모든 슬픔의 원흉인 중국 생활이 너무도 미웠다.
내가 덜 예민한 사람이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내 마음이 뾰족하지 않았더라면, 둥글게 둥글게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너른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나는 중국 생활을 하며 아주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났고, 짜증이 더해지면 화가 났다. 차곡차곡 쌓아둔 화는 온전히 그의 몫이 되었다. 사실 그건 그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그걸 이제야 깨달은, 알면서도 모른 척 덮어둔 나에게 화가 났다. 감정의 파고가 높이 치솟아 이번에는 이것밖에 안 되는 나를 죽도록 미워하고 싶지만, 정신 차리자. 나의 화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당연한 거다. 당연한 감정이다.
화장실이 더러운 것을 견디지 못하고, 식당의 위생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비위가 상하고, 식재료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는 데에서 큰 무력감을 느끼고. 까다롭고 예민하게 태어난 이상, 남들보다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다. 해외 생활에 따르는 당연한 불편을 수긍하지 못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 나의 문제가 컸다.
처음 해보는 해외 생활이 두렵고 걱정됐지만, 막상 시작되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오만함의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다. 처음 겪는 해외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예민한 사람이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참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낯선 곳에서도 똑 부러지게 아이들 키우고,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멋지게 으쌰으쌰 하고 싶었는데, 내 마음밭이 좁아서 초반 농사를 말아먹고 말았다.
시무룩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때맞춰 봄이 왔다. 다시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 이곳에도 왔다. 봄에는 더 극진하게 내 마음을 살펴 줄 작정이다. 내가 항상 고요한 상태로 지낼 수 있도록. 짜증 내지 않고, 화내지 않고, 가엾은 덩치를 아껴주면서, 평온하게. 정저우의 첫 번째 봄을 마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