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와서 7개월을 살았고, 이제 막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듣던 대로 중국에서는 정말 영어로 소통이 불가능했다. 점원이 내가 뱉은 쉬운 영어 단어 하나 알아듣지 못할 때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곳에서는 영어보다 석 달 배운 왕초보 수준의 중국어가 훨씬 더 쓸모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내다 보니 그 힘듦도 적응이 되고 생활의 눈치도 생겨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게다 요즘은 번역기가 워낙 좋아서 번역기 사용에 익숙해지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번역기 사용이 익숙해지면서 중국어 공부를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도 번역기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괜찮다고 지낼만하다고 마음을 놓으면 꼭 한 번씩 일이 생긴다. 얼마 전 과학관으로 체험 학습을 갔던 큰아이가 얼굴에 커다란 멍이 들어왔다. 신나게 돌진하던 친구가 가만히 서 있던 아이의 얼굴을 들이받았다고 했다. 친구의 정수리와 아이의 광대뼈가 부딪혀서 아이는 정통으로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눈 밑에 시퍼런 멍이 들어왔다. 선생님께서 아이의 사진을 보내셨는데, 사진으로 본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 눈 아래는 시퍼런 멍, 부딪힌 직후라 붉게 부어오르기까지 해서 더 딱했다. 부아가 치밀어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에 내 망할 손가락이 사진에 하트를 눌러버렸다. 야 손가락 너 미친 거 아니냐.
(아이는 중국에서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어 선생님들과는 영어로 소통을 한다.)
문자로 아이가 괜찮은 게 맞는지 확인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사실 한국에 있어도 이런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선생님께 드릴 수 있는 말씀도 뻔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화가 가득 들어차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는 마음으로 하교시키러 갔더니 선생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셨다.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해 주시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주셨다. 선생님 잘못도 아니고 사고였을 뿐인데 거듭 사과하시는 모습을 보니 국제적인(?) 짠한 마음이 들어,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인사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걸까.
나는 아이가 다친 것도 화가 나지만, 나의 무능한 모습에 더 크게 화가 난 것 같았다. 아이가 다쳐 정신이 아찔한 상황에 머릿속에 있는 말을 하나씩 주섬주섬 가져와서 영어로 답장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화를 내고 걱정을 하는 것도, 생각을 해야 가능했다. 본능적으로 좌르륵 떠오르는 말들을 누르고, 내 마음을 영어로 옮겼을 때에도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간략하게 바꾸었다. 그 과정이 번잡스러워 짜증이 났다. 내가 지금 아이가 다친 것만으로도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돼? 짜증 나 죽겠는데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언어 장벽이 너무도 높고 두터워서 대충 부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중국어는 배움의 끈이 짧아 아는 게 너무 없어 뭘 써먹을 수가 없고, 영어는 그토록 긴 시간을 들여 공부해 놓고도 정작 필요한 상황에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는 게 화가 난다. 해외 살이의 힘든 점을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 아무리 번역기가 좋아도) 제일 힘든 건 언어 장벽이 아닐까? 그저 나의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게 삶의 행복과 연결될 거라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일이기 때문에, 언어에서 느끼는 불편함 때로는 무력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무탈한 일상을 지내고 있으면 지낼만하다가, 한 번씩 사고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느껴지는 언어 장벽. 그렇다면 공부를 하면 되는데, 언어 공부라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시나브로 쌓이는 것이라 지금 당장의 속 터짐을 해결할 수 없으니 자꾸만 작심삼일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기서 한 석 달 살고 다시 훌쩍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오늘도 그 작심삼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의 시간을 쌓는 수밖에. 언젠가는 늘겠지 하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