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간의 온라인 수업이 남긴 것

by 김씩씩

지난주 금요일 하굣길, 아이들이 인쇄물이 담긴 두툼한 파일을 들고 나왔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월요일에 눈 많이 와서 학교 못 오면 하는 거란다. 뭐라고? 오늘은 금요일이고 월요일이 되려면 사흘이나 남았고, 일기예보 상으로 월요일에 눈이 오기로 되어있긴 하지만 지금 날씨는 이렇게 쾌청한데, 벌써부터 휴교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등록금 생각을 하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날씨가 계속해서 춥긴 했지만 일요일까지도 눈이 내리진 않아서 정상 등교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일요일 밤 11시가 다 되어 휴교 문자가 왔다. 결국 휴교로구나. 어차피 학교도 안 가게 된 마당에 조금이라도 더 잘 생각에 아침 알람을 끈 뒤 잠자리에 들었다. 컴컴한 아침, 분명 알람을 끄고 잤는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전날 밤, 내가 잠자리에 든 뒤에 휴교 문자를 확인했으면 답을 보내라는 문자가 와 있었는데 자느라 답을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친절하고 부지런하신 선생님의 모닝콜을 받고 잠에서 깼다. 휴교하는 것도 짜증 나는데 잠까지 깨우고, 아침부터 부글부글 속이 끓었다.


지난여름 비가 많이 와서 급작스럽게 휴교를 했을 때는 준비 없이 휴교를 했던 터라 과목별로 과제만 내주셨었는데, 이번에는 예정된(?) 휴교라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측에서도 이런 경험이 없다 보니 학부모 속 터지는 상황이 여러 번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온라인 수업은 학교와 소통하는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아이들은 계정이 없어 학부모 계정을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집은 아이가 둘인데? 남편이 출근하며 컴퓨터에 남편의 계정을 연결해 주고 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화상 연결이 되지 않았고, 결국 아이들은 둘 다 내 계정을 이용해야만 했다. 부랴부랴 컴퓨터에 내 계정을 연결하려고 했지만 컴퓨터에 연결을 하면 패드가 로그아웃, 다시 패드에 연결을 하면 컴퓨터가 로그아웃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재이는 거실에서 패드로, 시안이는 방에서 내 핸드폰으로 각각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들이 다른 포맷을 사용해 수업을 하시면 하나의 계정으로도 동시 접속이 가능했지만, 같은 포맷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충돌이 일어나 한 명은 쉬어야만 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처음 해보는 것이라 정보가 없어서 월요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핸드폰으로 수업을 듣는 시안이의 수업 볼륨이 작아서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텀즈 업 앤 다운을 하던 귀엽고 장한 박시안 어린이!) 볼륨을 키워주려고 에어팟을 연결해 주었더니 시안이가 ‘엄마 자꾸 헛것이 들려’ 하길래 에어팟을 처음 써봐서 그런 거라고 하니까 아니란다. 자꾸만 헛것이 들린단다. 대체 ‘헛것’이 무엇인지 들어봤더니 에어팟이 아이패드랑 연결돼서 거실에서 하는 재이의 수업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아 정말 블루투스마저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제 아이들이 웬만큼 커서 집에 있어도 둘이 알아서 잘 놀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별로 없는데, 온라인 수업은 수업 내내 옆에서 보초를 서야 해서 내가 너무 피곤했다. 휴교 왜 하냐고 뭐라고 했던 거 취소, 등록금 아깝다고 투덜거린 거 취소, 내가 투덜거렸던 모든 말들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은 심정이었다. 휴교해도 되니까 온라인 수업 하지 말고 놀게 해주었으면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동시에, 코로나 때 온라인 등교하던 시절을 겪으신 육아 선배님들은 대체 이 고난기를 어떻게 통과하신 것일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수업을 하루 경험해 보니 그 시절 선배님들께서 겪으신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끄덕끄덕)


다행인지 불행인지 월요일에 눈이 많이 와서 휴교는 화요일까지 이어졌다. 월요일에 다양한 경우의 오류를 겪어본 터라 화요일은 한결 여유 있는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월요일에는 거실과 방을 오가며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수업 연결이 끊어지면 선생님께 연락해 다시 전화해 달라고 요청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다. 화요일에는 그냥 느긋하게, 연결이 끊어지면 동시 접속해서 끊긴 거란 사실을 터득한 덕에 한 명은 쉬고 있으라고 했다. 내려놓으니 이렇게 편한데 그러지 못했던 어제의 내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슬쩍,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했다. 재이를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걱정이 되었던 것들 중 하나는 재이는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소통이 되지 않는 곳에서 지내며 표현하는 것에 더 소극적이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늘 수줍은 샤이 가이였던 재이가 일 년 사이에 엄청난 수다쟁이가 되어있었다. 수업 내내 쫑알쫑알 말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영어 실력이 늘어난 것도 신기했지만, 위계가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모습이 더 크게 와닿았다. 저런 모습이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걱정할 것 없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한국의 정적인 교실에서 너무 자유분방하게 행동해서 걱정하게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음, 그리고 우리 시안이는… 시안이 수업하는 동안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점심 먹고 난 뒤라 노곤노곤, 잠이 솔솔 쏟아졌다. 작정하고 자려고 한 것은 아니라 그냥 잠깐 머리만 좀 붙여볼까 하고 옆으로 슬쩍 기댔는데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Dr. Honey! My mom is sleeping!’ 아이의 명랑한 외침에 잠이 번쩍, 민망함에 잠이 홀라당 달아났다. 아니 대체 쟤는 수업 중에 저런 얘길 왜 하는 거야. 쟤는 누굴 닮은 거야. 원망하며 잠에서 깼다. 예나 지금이나 시안이는 걱정이 없다.


저녁에 핸드폰을 보다가 사진첩에 시안이 여자친구 사진이 무려 아홉 장이나 찍힌 걸 발견하고는 큰 웃음이 터졌다. 온라인 수업 중에 수업은 안 듣고, 선생님 안 보고, 여자친구 화면 찾아서 캡처하고, 캡처한 화면을 여자친구만 나오도록 정성껏 자르기까지. 내 아들이지만 얘는 정말 크게 될 인물이다. 수업 중에 크게 딴짓하다 크게 혼 날 인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귀여움 앞에 나는 오늘도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역시 시안이는 걱정이 없다.


이틀 간의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오늘은 정상 등교.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니 내게 평화가 찾아왔다. 고난기를 겪은 뒤에 찾아온 평화라 훨씬 더 소중하다. 오늘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볼까.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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