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와서 지내며 좋은 점 중 하나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분리수거는 물론이고 종량제 봉투도 없어서 음식물, 일반 쓰레기, 플라스틱 등을 아무렇게나 한 데 모아서 버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여기도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를 버리는 통이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지켜서 버리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쓰레기 차도 그 둘의 내용물을 구분하지 않고 한 번에 싣고 간다. 처음에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무척 편리할 것 같았는데 지내다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중국 생활 일 년이 넘은 지금, 우리 집에서는 나름의 분리수거를 하며 지내고 있다. 우선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으니 봉투를 가득 채워야 할 것 같은 소시민적인 의무감이 없어져서 봉투가 가득 채워지지 않아도 쓰레기를 버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행복했다. 뚜껑이 없는 쓰레기통에 비닐을 씌워서 쓰고 쓰레기통을 자주 비우니, 쓰레기를 버릴 때도 편하고 쓰레기통을 비울 때도 편하고 이래저래 편리한 점이 많았다. 단점은 쓰레기통이 작다 보니 부피가 큰 재활용 쓰레기를 같이 버릴 수가 없다는 건데, 그건 재활용 쓰레기를 따로 모아 버리면 되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집도 좁아서 몇 발자국만 가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고, 분리수거는 한국에서도 늘상 해오던 일이니까. 큰 비닐 봉투에 플라스틱, 유리병, 캔, 종이 등 재활용이 되는 것들을 한데 모아 버린다. 이것들을 각각 분리하지 않고 그냥 가져다 버리면 되니까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하면 이쯤이야 뭐. 이렇게만 얘기하면 중국에 와서 굉장히 성실하게 분리수거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배달 음식을 먹고 난 뒤에는 음식물, 일반 쓰레기, 재활용품을 분리하지 않고 야무지게 한 데 모아서 버린다. 중국 살이의 특권(!)을 놓칠 수 없으니까.
벌써 새 집으로 이사 온 지도 석 달쯤 되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관리인들이 많아서 무척 깔끔했는데, 이사 온 아파트는 평균 연령도 높고 이전에 살던 곳만큼 관리가 잘 되는 곳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좀 지저분한 감이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보니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어르신 몇 분이 눈에 띄었다. 어르신들이 맨손으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헤집어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중 한 할아버지께서는 아예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면 바로 가서 쓰레기를 확인하셨던 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었는데, 이번 주 들어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 탓에 누워계시는 일은 멈추신 것 같았다. 어제 하교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할아버지께서 내게 너네 집에 병 있냐고 물으셨다.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병이 있냐는 물음을 들은 찰나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없다고 답하고 집에 들어와 보니 분리수거 봉투 안에 유리병 두 개와 플라스틱 생수병 서너 개가 보였다. 들고 내려가서 할아버지께 드릴까 하다 마음을 접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재활용품만 분리해서 버리는 우리의 생활 습관을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는데, 괜히 한 번 드리기 시작했다가는 앞으로 더 피곤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활용품을 따로 모아 버리는 것은 내 생활의 편리에 따른 것도 있지만, 쓰레기통을 뒤져 재활용품을 꺼내가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불편해서 나라도 깨끗하게 버리자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두 번째 마음은 위선이었던 것 같다. 또,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에 마음이 붙잡혔다. 그냥 흘려버리면 될 일인데 그러지 못하고 자아 성찰까지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그냥, 툴툴 털어버리려고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좀 괜찮아진 것 같다. 사실 내게는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으면 일기가 쓰고 싶어지는 고질병이 있다. 나는 어젯밤부터 황정은 작가님의 <작은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모든 게 황정은 작가님 덕분이다. 마저 읽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