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마음

by 김씩씩

한국에서 보낸 8주간의 여름 방학이 끝나고, 정저우 시즌2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새 학년이 시작되었고 다행히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저우 시즌2가 시작된 지 벌써 3주가 지났는데, 다행히 내 마음에도 큰 이상 없이 무탈한 생활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에 오래 다녀오면 다시 이곳 생활에 적응하는 게 좀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적응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지난 일 년 간, 정확히 말하자면 10개월 동안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온전한 나의 생활로 자리 잡혀있었기 때문에 다시 중국에 왔을 때 어떤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중국에 온 다음 날, 큰 아이마저 한국에서 있었던 시간이 진짜인 것 같지가 않다며 그냥 꿈꾼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우리는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여름 방학에 한국에서 둘째 시안이의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가 있었다. 겨우 2주 지내고 부러져서 여름 내내 통깁스를 감고 신나게 놀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 바람에 중국에 오기 이틀 전에 통깁스를 푸르고 올 수 있어 한시름 놓았다. 다 끝난 거라 생각했는데 중국에 온 둘째 날 시안이의 발꿈치에 욕창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아니 이걸 왜 이제야 발견한 걸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직 뼈가 완전히 붙지 않아서 반깁스를 2주 더 해야 한다고 했는데 욕창까지 생겨서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중국 병원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도 난감했지만, 더 난감한 것은 이 상황이 번역기에 의존하여 의사와 소통할 수 있는 간단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국 중국어에 능통한 가까운 지인에게 병원에 동행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때마침 그는 중의학 박사님. 상황 설명을 들은 그가 우리집에 와서 시안이의 상태를 보더니 아직 초기라 병원에 가지 않고 약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연고를 처방해 주고 갔다. 친히 왕진까지 해주신 명의 선생님의 지침대로 매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었더니 욕창은 금세 회복세를 보였고, 3주가 지난 지금은 말끔히 나아서 깨끗해졌다.


만약 시즌1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 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관계를 맺은 귀한 인연들 덕분에 시즌2가 수월한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작년에는 모든 게 처음이라 시작부터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중국어를 못하는 채로 중국에서 생활하는 것도 익숙하고, 영어를 못하는 채로 국제학교에 보내는 것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크게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게다 시즌1에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을 일밖에 없어서 그 마음도 무척 불편했는데, 올해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여전히 도움 받을 일 투성이인 것은 맞지만, 이곳에 있는 몇 안 되는 한인들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이라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했던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나는 나대로, 내 방식대로 보듬고 사랑하고 의지가 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관계의 축이 새롭게 정비된 기분이 든다.


한국에 가서 보냈던 두 달의 시간이 정말 좋았다. 비록 시안이가 아파서 마음 고생, 몸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애초에 중국에 와서 지내는 것 자체가 내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데다, 와서 지내보니 불만족스러운 것들이 너무도 많아 내 삶이 불행한 것 같아 힘들었다. 불필요한 불행을 겪고 있는 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니, 우리는 모두 저마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디에 있든 마냥 좋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생활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듯했다. 더러운 것만 좀 참으면, 음식 힘든 것만 좀 참으면, 다른 일 신경 쓸 것 없이 하루에 아홉 시간씩 온전히 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이곳의 삶도 썩 괜찮게 느껴졌다. 게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경험, 간접 체험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타국 생활의 경험을 통해 내 지경이 넓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귀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또 열 달 동안 살면서 더러움에 지치고 한국 음식이 그리워 미칠 것 같을 때면, 방학이 찾아올 테니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단 씩씩한 기운이 생겼다.


정저우 시즌2를 시작하며 달라진 마음이 있다면, 이제는 중국어 공부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는 것이다. 시즌1 때도 중국어 공부를 하긴 했지만, 공부를 취미로 하다 보니 눈에 띄는 진전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라면 이곳에서 2년, 3년을 살아도 크게 차이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중국어 공부를 메인에 두고 하루를 산다. 단순한 취미에서 본격적인 취미로 바뀌었다. 이왕 중국에서 사는 거, 중국어라도 배워가면 내 삶에도 남는 게 생기는 거니까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중국어 실력과 함께 조금씩 높아질 삶의 질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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