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저우 시즌1’을 마무리 하며

by 김씩씩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한국에 가는 것조차 흥이 나질 않았다. 한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잘 지낸다고, 중국도 뭐 나름 지낼만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정말 손톱만큼도 괜찮지가 않아서 ‘괜찮은 척’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하는 것도 싫고, 안 괜찮다고 말하는 건 더 자존심이 상하는 나의 오만함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분명 그랬는데, 정말 힘들어서 못 견딜 것 같았는데 어느샌가 스르륵 괜찮아졌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지내는 모습, 나를 위해 애써주는 남편의 행동과 주변에서 건네받은 크고 작은 마음들이 나를 일으켰다. 한번 괜찮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이 괜찮아져서 급기야 며칠 전에는 여기서 쭉-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2024년 7월 31일부터 시작된 ‘정저우 시즌1’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중국 생활 1년 차 병아리의 소회를 풀어볼까 한다. 내가 느낀 정저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정저우는 깨끗한데 더럽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보겠다. 얼마 전 다섯 살 둘째와 함께 말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쇼핑몰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음료를 주문하며 아이에게 빈자리에 가서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테이블로 총총 달려가 앉으려던 둘째가 ‘엄마, 여기 너무 드러워!!!!!’하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마음이 바닥을 칠 때 같았으면 짜증이 확 치밀고 올라왔겠지만, 모든 걸 받아들인 상태라 역시 정저우 답구나 싶어 힘 빠진 웃음이 났다. 정저우는 중국 최대 곡창 지대인 허난성의 성도로 인구 많고 낙후된 농업 지역이었는데, 최근 개발되면서 부쩍 도시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도시답게 도시의 외관은 중국스럽지 않은(?)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하드웨어는 갖췄지만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낙차, 나는 이곳에 지내면서 그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만, 그러니까 더러운 것만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이곳 생활도 그럭저럭 살만할 것 같았다. 한국인이 많지 않아 사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다행히 몇 안 되는 한국인들끼리 마음이 잘 맞아 서로 의지하며 지내니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은 없고, 메이드 인 차이나에는 물욕이 크게 동하지 않아 불필요한 소비 하지 않아도 돼서 좋고, 부모님들께는 그저 건강히 잘 지내주는 것만으로도 효도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그 와중에 공부까지 잘하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 같았다.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면 되는 단순한 생활, 나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게다 이틀 뒤면 아이들 여름 방학을 맞아 두 달간 한국에 가는데 한국에 가는 기분이 그 어떤 해외여행을 갈 때보다 설렌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한국에 가는 것 또한 무척 기쁘다. 어딜 가볼까, 무얼 할까, 무얼 먹을까. 한국에서의 맛집은 말해 뭐 해, 기절하게 맛있겠지 뭐. 정말 아무런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 여행자의 신분으로 한국에 머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난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 뭐야 이거 너무 좋잖아?


두 달간 정저우를 떠나 있을 예정이라 이번 주는 무척 바쁘게 지냈다. 방학 전 마지막 수업을 하며 중국어 선생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정저우를 떠나는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두 달간 못 만나게 될 한국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도 방학 동안 못 볼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신나게 놀고. 정신없는 일주일을 지내고 보니, 내가 이곳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게 실감이 났다. 열심히 관계 맺고 부대끼며 살았던 것 같아서 뿌듯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노느라 바빠 한국 갈 때 가져갈 선물 주문하는 것도 까먹었을 정도.)


아무튼, ‘정저우 시즌1’을 마무리하는 마음이 가벼워서 기분이 좋다. 일 년 간 쌓은 내공으로 ‘시즌2’는 한결 수월하게 보낼 수 있을 거란 기운찬 마음까지 든다. 일 년 간 훌쩍 자란, 기특한 나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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