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자주 우는게 어때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말 한마디 제대로 걸어본 적 없는 친구의 형을 좋아한 적이 있다. 하루는 할아버지께 같은 조씨끼리도 결혼을 할 수 있냐고 여쭤봤는데(그 오빠는 나와 같은 조씨였다), 할아버지께 들은 답변은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다'였다. 심지어 나보다 두 살 위였던 그 오빠와 나는 나이 차이도 별로 좋지 않다고 덧붙였던 할아버지. 초등학교 3학년 어린 소녀에게 할아버지의 대답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이지 필요 이상이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짝사랑하는 그 오빠가 당신의 손녀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걸 모르셨나. 아니면 아시고는 그렇게 먼저 약을 치셨나. 아무튼 나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이 떠나가라 울었던 어린 내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오늘까지 나와 같은 조씨 성을 가진 이성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후에 조씨 성을 가진 이성을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그 사람과 내가 결혼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 따위는 아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나는 같은 조씨야'하며 그때처럼 엉엉 울 일도 없을 테고.
또 한 번은 그런 적도 있다. 할아버지 댁에는 꽤나 멋진 족보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족보를 내게 가끔 보여주시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할아버지 성함도, 아빠의 성함도 적혀있었는데 내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왜 내 이름은 없냐 여쭈니, '정희는 시집가면 더 이상 우리 집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또 그게 너무 섭섭해서, 나는 무슨 낙동강 오리알 신세 같아서, 그게 그렇게 서러워서 눈물을 쏙 빼내었던 적.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너는 참 울 일도 많다'라는 말을 많이 하시곤 했다. 나는 정말 슬퍼서 우는데, 엄마는 왜 내가 우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까. 내 슬픔은 타당한 슬픔이 아닌 걸까 하는 생각에 더 서럽게 울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나 정말 울 일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눈물이 많지만 이제는 그 시절의 어린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조씨라는 이유로 울지는 않는다. 우리 집 족보에는 더 이상 관심도 없고.
언제부터 엄마는 훌쩍 커버린 내게 더 이상 '너는 참 울 일도 많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이제 더 이상 그런 일로 울지 않는다는 것, 울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 이유를 내가 그 시절의 순수함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의한다면 울 일도 많다는 건 꽤나 낭만적인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