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양울기 원정대
다시 몽골에 온다면 그땐 꼭 가장 서쪽까지 가보리라 생각했던것이 진짜 현실이 되어버린,
운전 14년 중 단기간 가장 많은 거리를 운행하게 된,
평생 처음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도 아닌 7월에 벌벌 떨며 첫눈을 맞이했던,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고도까지 네발로 기어서 올라갔던,
그런 여행을 다시 기억하며 기록으로 남겨봐야겠다.
몽골 나담연휴가 '월화수목금'이라는 환상적인 스케줄로 맞춰지는 2022년에 몽골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 운이 좋은 사람들. 주말 포함 9일의 연휴가 생겼고, 이 행운을 놓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바양울기 여행 파티원을 모집하고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우선 바양울기 파티원은 조지, 레지나, 그레이스, 태양 이렇게 4명으로 확정! (앞으로 이들을 바양울기 원정대라고 하겠다) 이들은 당연히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바양울기 아이막까지 이동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코로나 이후 국내선 비행기가 랜덤하게 합리적이지 못한 가격으로 운항하고 있었다. 국내선 일정도 맘에 들지 않았을 뿐더러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항공편에 투자하기에는 연휴가 꽤 길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연찮게도 바양울기 친구들 4명 중 3명이 몽골에서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면허증과 자차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바양울기까지 운전을 해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엄청난 모험의 서막이었다.
울란바타르에서 바양울기까지는 약 1,700km.
9일의 연휴 중 왕복 4일은 이동하고, 4박5일동안 알타이 타왕복드를 여행하기로 했다.
[이동내용]
[여행일정]
Day 1. 울란바타르-> 알타이 (고비알타이 아이막) 1,030km
Day 2. 알타이 -> 바양울기 663km
Day 3~7. 알타이 타왕복드 여행 (4박5일 현지 가이드/푸르공 이동)
- day 3. 알타이 타왕복드 국립공원 이동
- day 4. 알타이 타왕복드 말칭 산 등반
- day 5. 우유호수, 석인, 암각화 구경
- day 6. 투르겐 계곡, 매 구경, 눈 내림
- day 7. 바양울기 도시 이동, 카두네 집 방문
Day 8. 바양울기 -> 바양홍고르 1.044km
Day 9. 바양홍고르 -> 울란바타르 626km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조지의 FORD ESCAPE로 여행하기로 결정!
여행 하루 전날..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새벽에 공항에 누굴 데려다주다가 길에 있는 연석을 박아서 왼쪽 앞바퀴 플라스틱이 내려앉는 일이 발생했다. 하......... 당장 연휴 전날이라 이걸 바로 교체할 수도 없고,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 이래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있는 박스테이프로 차 본체와 플라스틱을 꼼꼼히 이쁘게 붙여버렸다 ^^ (아직까지 잘 붙어있다..)
차에 이상이 생겨서 여행에 차질이 있으면 어쩌나, 그리고 여행중에 차가 잘못되면 어쩌나 이래저래 신경이 좀 쓰이긴 했지만 레지나 에그치 말대로 여행 전에 액땜했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는 말에 신기하게 걱정도 한시름 놓이고 감사하게도 별일 없이 잘 다녀왔다!!
여행당일은 새벽에 출발해야했기 때문에 전날 짐을 싣는중 ㅋㅋ
각자 배낭에 침낭에.. 차 뒷자석에서는 여행 끝날때까지 다리를 밑으로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
코로나 이후 간만의 긴 연휴다.
다들 비슷한 시간에 여행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새벽 5시 전에 출발한 것 같은데 외곽으로 나가는 길에 차들이 벌써 많다..!
구글맵 990키로 실화냐 ㅋㅋㅋㅋ 처음보는 네비게이션 거리 ^^
그리고 우리의 그레이스가 아침부터 준비해준 계란 샌드위치! 진심 파는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서 남은것도 내가 다먹었다 껄껄
달리고 달려도 지평선만 끝없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 꼭 운전을 해보고 싶었더랬지! 그리고 그 꿈(?)에 미련남지 말라고 이렇게 하루종일 달리고 또 달렸다. 중간중간 내려서 다리도 좀 펴고, 점프샷도 찍으면서 이동!
어느새 우브르항가이 아이막에 진입 후, 주도인 아르바이헤르 도착!
구글 맵으로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고(메뉴와 사진은 영상으로만 남아있어서 영상에 추가함) 무려 몽골, 그것도 시골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았다!
차에는 기름 넣어주고, 바양울기 원정대에게는 커피수혈 찐하게 해주고 다시 출발!
중간중간 운전 번갈아가면서 하면서 바양홍고르 아이막에 진입.
분명 바양울기까지 아스팔트 길이 잘 깔렸다고 들었는데... 아직 공사가 진행중인 구간이 있었다 ^^
매드맥스 2 찍는것 마냥 오프로드를 먼지나게 열심히 달린 끝에 드. 디. 어. 첫날 숙소가 있는 Altai에 도착!!
전날 짐싸고 뭐 이것저것 하느라 다들 잠도 푹 못자고 출발하기도 했고, 배도 많이 고픈 상태여서 숙소에 짐 풀자마자 바로 나와서 삼겹살이랑 비빔면 먹음 ㅋㅋㅋ
사실 울기원정대는 여름에 시원한 맥쥬를 즐겨하시는 분들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운전하느라 아예 맥주는 사지도 않(못)아서 ㅎ.. 마을에 들어오며 맥주 한캔씩 사서 아주 시이이이원한 맥주 한캔이랑 삼겹살에 비빔면을 뙇!! 크~
암유 말이 필요없쥬!!
첫날에는 머리를 대자마자 10초도 되기 전에 잠에 들어버렸다. (숙소사진 따위..ㅎ)
다시 떠나는 여정.
천키로 넘게 달려와서 그런가, 주위에 보이는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초반에는 거친 황야와 돌로 이루어진 산들 뿐이었는데, 조금 더 지나니 그마저도 사라지고 온통 평야만 펼쳐진다. 그리고.. 길이 정말 좋았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은 곳이어서 그런가, 새 도로여서 그랬나? UB 및 인근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no 패임, no 훍/돌/먼지의 깔끔한 아스팔트 2차선 길이 끝없이 뻗어 있었다.
건물도, 나무도, 아무것도 없으니 속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속도 계기판이 쭉쭉 올라간다.
더 좋은 차였으면 진심 200까지도 달렸을 것 같다.
이쯤 오니 길이 하나라 딱히 네비게이션을 보지 않아도.. 길을 찾아 갈 수 있다ㅋㅋ
그리고 달리다보니 시간이 오락가락한다. 자동차 계기판 시간, 핸드폰 시간, 애플워치 시간이 각기 다르다- 이 때문에 우린 종종 혼란스러웠다 후후
달리다보니 어느새 헙드에 도착!
마침 헙드 외곽에서 나담경기 중 하나인 말 경주가 열리고 있었다.
나담축제동안 열리는 말 경주는 미취학 학생들(약 7살 이하?)이 10~20km를 달리는데, 여기서 우승하면 매우 큰 명예와 부(우승마는 종자가 우수하기 때문에 그 새끼들이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한다)가 주어진다고 한다. 출발선에서부터 결승선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 실제로 결승전에 들어오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었는데, 우리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서부터 흙먼지를 날리며 아이들이 들어오는게 보인다!
저 째깐한 아이들이 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보니 왠지모르게 더 대견하고 멋지다! 크~
우승자도 가려졌으니 나담 호쇼르를 사서 헙드 시내로 들어갔다.
헙드에서 잠시 점심을 먹고 바양울기로 출발하기로 함.
그레이스가 이전에 와 본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크~ 역시 믿고 따라가는 그레이스 투어!
강가로 들어가는 길목까지만 해도 뭐 강이 있겠거니~ 했는데..
세상에 마상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헙드는 좋은 곳이었따..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담기지 않아 다 보여줄 순 없지만 내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남아있다구여 :D
가자마자 발 좀 담그고, 돗자리 펴고 컵라면과 맥쥬(운전자는 마사지 않았다)를 꿀꺽꿀꺽
이런게 여행인가요..!
밥 먹고 비누방울도 좀 날리고, 옆 게르에 옷 다 벗고 돌아다니는 아기들한테 과자도 좀 나눠주는데
저 멀리서부터 천둥번개가 몰려오더니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좀 아쉽긴 하지만, 우린 아직 갈길이 멀기 때문에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오예 세차 개이득!
떠날 채비를 마치고 헙드에서 기름을 넣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천둥번개 때문인지 헙드 시내가 전체가 정전이라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시전체가 정전된 것은 또 처음.. ㅎ 하지만 이런것에 우린 당황하지 않지.
전기가 없는 주유소에서 한시간쯤 기다렸나.. 저 앞 어딘가에 있는 주유소에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가서 기름넣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서쪽으로 계속 가야하는데, 네비를 잘못찍어 북쪽으로 다녀오는 바람에 30km 정도를 돌아갔다았다 허허허
계속해서 달리고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저 멀리 만년설이 덮인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주위에 차들은 거의 없고, 간혹가다 앞서가거나 마주오는 차들이 보인다.
우리가 진짜 타왕복드를 향해 가고 있긴 했구나!! ㅋㅋ
갑자기 실감이 나면서 바양울기가 가까워진 것 같아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장 차를 세워두고(비록 눈으로 보는 것처럼 잘 담기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었다. :)
만년설산을 보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저 아래 호수가 보인다.
몽골에는 호수도 계곡도 많지만, 여긴 그냥 호수가 아니다... 맑은 하늘이 실크 표면마냥 잔잔한 호수에 그대로 반사되어 마치 하늘이 두개 있는듯한 착시현상을 보이며 하늘과 땅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 호수가 톨보 호수(Tolbo Lake). 호수야 언제고 그대로 있겠지만, 이 날씨에 이런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장 큰 감동을 일으키는건 언제나 자연이다.
어디서 들었는데, 사람은 찐한 감동을 받을 때 엔돌핀보다 4천배 강력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한다. 마약보다 더 강력한 중독이다.
이래서 내가 매번 홀린듯이 나돌아다니는가보다.
역시 울기는 다르다며 몽골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하다보니 어느새 표지판에 우리의 목적지가 보인다. 후후후
울기도 울란바타르마냥 산에 둘러쌓인 분지 형태의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특별히 이국적이지는 않지만, 울기에 사는 사람들의 70%가 카자흐스탄 사람들이라고 하니 확실히 언어도 다르고 간판에 낯선 글씨들도 많이 보인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타왕복드 여행에 함께할 카두를 만나 저녁을 먹으러갔다.
몽골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을 음식일 줄 알았는데, 카작 음식은 종류도, 맛도 좀 다른데.. 맛있다. 허허 (사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맛있었던것 같음 ㅎ)
배빵빵하게 두들기면서 울기 도시 여행(이라고 쓰고 산책이라고 말하는)을 하고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조금 더 샀다. 카작 사람들이 대부분 이슬람교라서 그런지 히잡(?) 쓰고다니는 여성들도 많이 보이고, 이슬람 사원도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띈다.
카작 수공예품들 - UB에 있을때 기념품 가게에서 많이 보던 것들이라 크게 낯설지는 않은데, 각 아이템별로 색깔 등 종류가 다양하다 :)
동지들과 이틀동안 무사 울기 입성을 축하하며 맥주를 한캔 따고, 랜덤 영화를 틀었다.
제목이 [20살의 사랑]이었나..무슨 프렌치 흑백영화가 당첨되어 말도 못알아 듣겠고 내용도 더 알수 없는 단편영화들을 좀 보다가.. 오늘도 역시 머리를 땅에 대자마자 잠에 들어버렸다.
맨 처음 직접 운전하는 로드트립을 계획했을 때에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운전해서 울기까지 가다니..!!! 대박 너무 재밌겠다!!!!!!!' 에서, 자동차에 이래저래 이상한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니 '하.. 이거 괜찮을까, 괜히 차에 이상이 생기면 여행에도 지장이 생길테고, 그럼 스스로 자책하다가 괜히 같이 가는 일행들한테도 예민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특히나 몽골 여행은 가이드와 운전 기사 다 준비해서 나는 하는 것 없이 몸만 가도 쉽지 않은데, 저 엄청난 짐이 될 수도 있는 차를 끌고 가겠다고..!!!!
하지만 우리 울기 원정대여서 그른가 나의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
여행 가이드랑, 맛집 검색까지 다 도맡아서 책임져준 사람도 있고, 이동하는 내내 텐션 절대 떨어지지 못하게 텐션 지켜주는 사람도 있고, 뭔가 필요하다 싶을때 어디선가 찾아서 챙겨주고, 뭣보다 꽤 힘들었을 수면시간을 잘 견뎌준 사람도 있었다. 캬캬캬
울기까지의 1단계 모험을 아주 잘 통과했으니, 앞으로도 느낌이 좋았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