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암이라는데… 시어머니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여자의 불편한 동거

by 이지영

밥은 어떡하니 — 암 수술 앞에서 돌아온 한 마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이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 암 진단을 받은 며느리가 수술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건다. “어머니, 제가 다음 주에 암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두려움에 울음을 삼키며 겨우 꺼낸 말이다. 잠시의 정적 뒤, 시어머니는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네 남편이랑 애들 밥은 어떡하니?”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설마’ 하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공감했다. 시어머니 세대에게 며느리는 한 사람의 인격이기보다 가족의 생존과 유지를 책임지는 역할로 이해되던 시간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이 아프다는 말보다 가족의 밥상이 먼저였던 시간을 살아왔다. 그 삶이 무의식처럼 몸에 새겨졌고, 자신도 모르게 며느리에게 같은 시선을 드리우게 된다.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며느리에게도 그 방식을 요구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은, 아무리 오랜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며느리는 인격체인가? 도구인가?

“시부모를 내 부모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같은 논리라면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를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관계는 결코 대칭적이지 않다. 한쪽에만 요구되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린 의무에 가깝고 공평하지 않은 의무가 부과된 사람은 동의하기 어렵다.


명절이 길었던 어느 해, 명절 당일 시댁을 방문한 시댁쪽 어른이 나에게 한 말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명절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며칠 더 있어도 되겠네.” 나는 듣자마자 화가 나서 발끈하고 말았다. 평상시 같으면 대화도 잘 나누지 않는 분이었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입에서 “저도 친정 가야죠. 앞으로 며느리 보실 분이 그런 말씀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분은 당신은 평소 어른을 공경하고 경우 바르게 살고 있다 스스로 믿는 분이었다. 다른 관계에서는 충분히 배려를 보여주면서도 왜 며느리에게는 그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는지, 그 점이 아쉽고 마음 한켠이 서운하게 남았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엄마같은 시어머니가 없는 것처럼

한때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환상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과 엄마 사이도 끊임없이 부딪히고 다투지만, 혈연이라는 끈이 그 관계를 다시 이어준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남남이기에, 한 번 생긴 앙금은 쉽게 흘려보내지지 않고 오래 남는다.


이해보다 ‘거리’가 필요한 관계

나는 시댁에 다녀올 때 마다 도데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관계인가를 생각해본다.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니고 나를 낳거나 길러준 부모도 아니지만 각자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이 관계는 결국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이 한 집안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내는 ‘생활의 긴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내 부모에게는 쉽게 할 수 있는 투정이나 조언, 불만을, 시어머니에게는 쉽게 꺼내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조금씩 양보하고 조금씩 참아내며 관계를 이어간다.


이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다 ‘견딤’에 가깝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표현이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남도 아닌 사이. 서로의 삶에 깊이 영향을 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관계, 그것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본질에 가깝다. 서로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에 지금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시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한다.


며느리였던 나, 시어머니가 될 나

나 역시 아들을 둔 입장에서, 앞으로 어떤 시어머니가 될 것인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며느리의 성장 과정에 아무런 기여를 한 적이 없다. 기저귀 하나 사준 적 없고, 학비를 보탠 적도 없다. 그런 내가 ‘며느리’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른다. 내 자식에게 도리를 말할 수는 있어도, 며느리에게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내 자식을 아껴주는 마음뿐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결국,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적당한 거리' 속에서 유지되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가까워지려 할수록 상처가 깊어지고, 그렇다고 완전히 남처럼 지낼 수도 없는. 그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서 관계는 이어진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경계를 인정하고 기대를 조금 내려놓는 것. 감사할 수 있는 부분을 작게라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이 관계를 오래 이어가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이 관계는 어쩌면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완전히 용서하지 못해도, 그럼에도 다음 명절에 또 밥상 앞에 마주 앉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답일 수 있다.


견디는 관계라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견딤 속에도 온기가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챙겨준 국 한 그릇, 서투르게 건넨 용돈 봉투,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냥 옆에 있어준 시간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어색하고, 남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나눈 사이. 우리는 아마 끝까지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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