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끝난 뒤, 왜 우리는 늘 불편할까?
어김없이 해마다 명절은 찾아온다. 돌이켜보면 명절이 즐거웠던 기억은 결혼 전까지였던 것 같다. 며느리라는 역할이 생긴 이후 시댁과 친정을 오가는 일정을 반복하며 어느새 20년이 넘는 명절을 보내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명절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은 항상 뭔가 찜찜하고 불편했다.
명절날 제사를 지낼 때 만큼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크게 도드라지는 경우가 있을까? 절 하는 것 말고는 상차림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 남자들이 밥을 먹고 몸만 쏙 빠져 나가 상치우기와 설거지 또한 나몰라라 하는 모습은 흔한 명절 풍경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어머니를 비롯한 윗세대 어른들 이었다. 나는 제사준비를 할 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사를 지내는 조상은 결국 아들과 아버지의 조상일 텐데, 왜 준비와 노동의 대부분은 며느리와 어머니의 몫이 되는 걸까.?"
명절에 제사를 지내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 어머니 세대는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해 왔다. 명절의 일상을 그냥 당연하게 느껴온 사람이라면 저절로 제사상이, 밥상이 차려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한 끼를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음식을 준비하고 다시 치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명절이야말로 일 년 중 가장 부담스러운 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여성의 노동 문제만이 명절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일상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이어지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안부를 묻는 말들은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쉽게 비교로 바뀐다. 누군가는 집값이 올랐다거나 주식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가볍게 꺼내기도 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박탈감이 들 수 있다. 자식들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는다. 어느 대학에 갔는지,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결혼은 했는지 묻는 말들은 겉으로는 안부처럼 들리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때로는 비교와 유쾌하지 않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젊었을 때의 나는 가부장적인 제사 문화와 여성에게 집중되는 역할이 명절에 대한 불만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집에서도 그런 모습은 많이 완화되었다. 그러나 명절의 본래 의미인 가족 간의 친목과 화합이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누군가는 더 많이 희생했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감정들은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잠시 한자리에 드러난다. 큰 말다툼으로 번지지 않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내 불편하고 찜찜한 마음을 안고 가는 일이 적지 않다. 그렇게 명절은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관계의 균열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한 채, 해마다 비슷한 장면을 반복한다.
몇 년 전 우리 집에서는 장남의 결정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변화를 솔직히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준비 과정에서의 부담이 줄어들었기도 하지만, 사실 제사라는 행사에 내가 어떤 가치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마음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제사에 대해서 먼저 큰아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기셨기에 반발은 하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을 멈추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변화일 것이다. 겉으로는 반발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당연할 뿐만 아니라 나의 책무라고 생각해왔던 일들이 사라지는 상황은 당사자인 시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명절이 되면 당연히 시어머니를 뵈러 모인다. 예전처럼 제사를 지내거나 많은 친척이 모이지는 않지만, 제사가 없어지면서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일은 많이 줄었고, 나 역시 예전보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훨씬 편안한 명절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명절이라는 시간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 함께 모이면서 얻는 좋은 점도 분명 있지만, 동시에 불편함과 갈등이 생기는 순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누군가는 더 많이 애썼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섭섭함을 느끼며, 잘된 친척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지는 일들이 반복되곤 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조상님들이 명절을 만든 원래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게, 가족의 화목을 돈독하게 하고, 그 누구도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지 아직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식구들끼리 딱 한 끼 식사를 함께 하고 차를 마시며 안부를 나누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그 식사마저도 누군가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밖에서 가볍게 하는 것이 좋겠다. 거창한 의식이나 성대한 상차림이 아니라, 그저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나누는 시간만으로도 명절의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명절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시끌벅적하게 보내야만 화목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운 보람을 꼭 그런 방식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부담을 덜 주는 명절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직도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