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잔소리의 경계는 무엇일까?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다만 그 강도와 방식은 집집마다 다르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니의 가장 큰 차이는 ‘잔소리의 밀도’ 였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거의 듣지 않고 컸다. 두 분 모두 간섭보다는 방임에 가까운 스타일이었고, 웬만한 일은 내 선택에 맡겨주셨다. 반면 시어머니는 자신만의 기준이 매우 분명한 분이다.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으신다.
우리 시댁 부엌에는 의자가 하나 있다. 나는 속으로 그것을 ‘잔소리 의자’라고 부른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든 딸이든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그 의자에 앉아 이래라저래라 말씀을 시작하신다. 내가 요리를 할 때면 늘 비슷한 말씀이 따라온다. “파는 넣었냐, 마늘은 넣었냐, 그렇게 썰면 안 된다.” 듣고 있으면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어느 날은 무심코 “그러면 어머니가 하시지요”라는 말이 튀어나온 적도 있었다. 살림 경력 수십 년인 딸이 음식을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딸은 참지 못하고 “좀 가만히 계세요”라고 받아치고, 부엌은 늘 작은 전쟁터가 된다.
기억에 남는 잔소리도 많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안경은 벗고 자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이런 것 까지 잔소리를 하시나 황당했다. 세수하고 크림을 바르는데 “여름에 무슨 크림이냐”는 잔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 생활방식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데, 무조건 자신의 기준을 들이대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심하다는 사실은 가족들 모두가 인정한다. 자식들조차 “엄마,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시어머니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내가 무슨 잔소리를 많이 하냐? 난 안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남편은 곧바로 “엄마, 그건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가장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잔소리 없는 사람’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며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마음속에 훨씬 더 많은 잔소리를 품고 사는 분이었다. 실제로 입 밖으로 나오는 잔소리는 그 일부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러니 본인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반의 반도 안하는데 무슨 잔소리가 많지 ’라고 느꼈을 것이다. 아마 잔소리가 많은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잔소리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만의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시댁 식구들 전반에는 그냥 넘겨도 되는 사소한 일에 잔소리를 하거나 자신의 기준을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강요하는 문화가 마치 유전자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듯 보인다.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고 간섭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그게 부모 역할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자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포장한다. 그것을 간섭이 아니라 조언이고 충고라고 믿는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잔소리는 어쩌면 자식을 완전히 믿지 못한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자식을 아직 지도해야 할 아이로 여기기에 말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자식을 어른으로 믿고 인정한다면, 굳이 부모가 무언가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는 확신이 있어야 잔소리는 시작된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그 확신은 때로 오만이 된다. 오히려 자식이 더 잘 알고, 더 현명한 경우도 많다.
잔소리의 효과 역시 의문스럽다. 과연 잔소리를 듣고 자식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 내가 잘못했구나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고쳐야지"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마음의 문을 닫고 더 멀어질까. 나는 대개 후자라고 생각한다. 잔소리는 깨달음보다는 피로를 남기고, 이해보다는 거리를 만든다.
물론 모든 잔소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존중과 배려가 담긴 말은 시간이 지나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 말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잔소리는 감정이 앞선 상태에서 반복되고, 결국 상대에게 상처만 남긴다.
우리는 정말 자식을 위해 잔소리를 하는 걸까. 아니면 내 불안을 견디지 못해 말을 쏟아내는 걸까. 보고만 있자니 답답하고, 가만히 있자니 불안해서 결국 한마디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잔소리를 안 하는 쪽이 훨씬 더 어렵다.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는 일은 큰 인내를 요구한다.
나는 특별한 교육 철학이 있어서 잔소리를 적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다. 내 삶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서, 심지어 자식일지라도 남의 삶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에너지가 넘칠까 신기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 역시 부모이기에 잔소리를 한다.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나는 내가 시어머니에게 가졌던 반감을 떠올리며 "내 아들을 믿자. 그리고 내 기준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도 말자." 이렇게 다짐하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잔소리를 집어 삼키곤 한다.
잔소리를 줄인다는 것은 말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더 가깝다. 결국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자식을 향한 신뢰와 스스로를 향한 절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에게 "잔소리 안하는 엄마"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믿어주려고 애쓴 사람으로 남고 싶다. 말 대신 기다림을 선택하고, 간섭 대신 응원을 건네는 부모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글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