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에 행복한 것이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방법을 검색해보거나 관련 책을 읽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감사하며 살아라”라는 문장이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면 쓸데없는 욕망에 덜 휘둘리게 되고, 크지 않더라도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의 ‘부족함’보다 ‘존재 자체’에 시선이 머물면서, 불필요한 미움이나 원망에 오래 붙들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감사함을 지닌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삶과 관계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내가 보기에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의 삶은 조건만 놓고 보면 크게 부족함이 없다. 예순 무렵 남편을 잃고 홀로 삼십 년 넘게 살아오셨지만, 자식들 모두 제 몫의 삶을 꾸리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큰 걱정은 없다. 사업을 하는 큰아들이 생활비를 넉넉히 챙기고 있어 돈 걱정 없이 지내시고, 체면을 중시하는 성향에 맞게 여기저기 관계를 이어가며 손자·손녀들에게 때맞춰 용돈을 주는 일도 무리는 아니다. 젊은 시절 가난한 집에 시집와 돈 한 푼 마음 편히 써보지 못했고, 자식들을 충분히 교육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삶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형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시어머니를 보며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점은, 정작 본인은 자신의 인생을 행운이나 감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기대와 성에 차지 못한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누군가는 이를 ‘복에 겨운 노인의 투정’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만 하기도 어렵다.
시어머니 삶의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큰아들의 경제적 성공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스스로 일궈낸 자수성가의 삶이고, 그 성과를 시어머니를 포함해서 다른 가족과 나누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시집온 이후 지금까지 시어머니가 큰아들을 향해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부모가 해준 것 없는 상황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칭찬해줄 법도 한데, 그런 말은 늘 빠져 있었다.
한번은 시어머니 생신에 있었던 일이다. 가족들이 모여 미리 생일을 챙긴 뒤, 생신 당일 아침에는 큰아들 내외가 출근 전에 들러 함께 아침밥을 먹고 가겠다고 했다. 딸은 전날 미리 미역국을 끓여두었고, 우리 부부도 시간을 맞춰 전날 밤 시댁에 갔다. 아침에 모두 함께 밥을 먹은 뒤, 큰아들은 평일 출근을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때 시어머니가 던진 말은 “불쑥 와서 아침만 먹고 바로 갈 거면 뭐 하러 와”였다. 생일날 혼자 밥을 먹게 둘 수 없어 잠깐이라도 들른 아들의 마음보다, 기대에 못 미쳤다는 감정이 먼저 나온 말처럼 느껴져 나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서 큰아들과 큰며느리에 대한 칭찬보다는 서운함을 더 많이 들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시어머니에게 큰아들은 가장이자 삶의 중심에 가까운 존재였을 것이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해온 만큼, 기대와 다른 자식의 말과 행동 앞에서 상처를 더 크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 부모로서 불필요하거나 어색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오랜 세월 자식들과 떨어져 버티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홀로 남겨졌다는 박탈감 같은 감정이 감정이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를 보며 감사함은 의식적으로 연습하고 반복해야 유지되는 하나의 기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사하는 능력이 퇴화되면 삶은 점점 불행 쪽으로 기운다.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 사실을 절감한다. 이미 가진 행운을 알아보지 못해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드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서 내가 시어머니에게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이미 지나온 자신의 삶 그 안에서 스스로의 행복과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발견할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의 중요성은 시어머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으로 확장될 수 있다. 감사하지 못한 삶은 반드시 불행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가진 것들을 스스로 밀어내며 점점 고립되어 간다는 점에서 불행해진다. 그래서 이 글은 시어머니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 나 역시 맞이할 노년을 향한 경고이자 다짐이기도 하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더 주지 않더라도, 이미 받은 것들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여기에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