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가를 묻는 순간, 희생은 무엇이 되는가?

댓가를 바라는 모성을 바라보는 마음

by 이지영

익숙한 모성, 낯선 질문

어머니의 위대함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모성의 희생을 떠올린다. 자신의 욕망과 필요를 뒤로 미룬 채 자녀와 가족을 삶의 중심에 두고, 늘 참고 견디며, 시간과 건강, 때로는 자신의 꿈까지도 자식의 성장과 안녕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모습이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좋은 어머니’, ‘위대한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그려 왔다.


내가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어머니 역시 겉으로 보자면 이러한 전형적인 어머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많이 주고, 누구보다 먼저 움직이며, 가족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 분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그런 희생이 과연 가족들, 특히 자식들이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자기만족으로 완성된 모성도 과연 ‘희생’이라 부를 수 있는지, 나는 시댁에 갈 때마다 늘상 그 질문이 마음 속에 떠오르곤 했다.


이와 함께 모성에 관해 질문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희생의 댓가에 관련된 것이었다. 결혼 후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 시어머니에게 발견한 사실이 있다. 시어머니의 희생은 결코 아무런 조건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많이 베풀고 희생했는지를 마음속에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고, 그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어떤 응답을 기대하고 계셨다.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서운함은 곧 원망과 반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응답받지 못한 희생의 결과

여기서 말하는 ‘댓가’는 흔히 떠올리는 금전적인 보상이나 물질적 환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가장 중요한 댓가는 다름 아닌 인정과 감사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핵심이었다.


이 정도라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어머니의 호의와 희생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일은 마땅히 그래야 할 도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희생이 상대방이 원하지 않았던 방식일 때 발생한다. 원하지 않았던 호의 앞에서 인간은 감사보다 부담과 짜증을 먼저 느끼기 쉽다. 하물며 그 상대가 어머니라면,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으니 감정은 더 쉽게 날것으로 튀어나온다. 그 순간, 시어머니는 자신의 희생이 부정당했다고 느끼고, 그 억울함은 자식들에 대한 원망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나는 시어머니가 ‘내 희생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정에 유독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 희생이 상대가 원했던 것이었는지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시어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이만큼 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은 삶 전체를 흔드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말에는 종종 “내가 ~~에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평생을 내어주며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기대했던 응답을 받지 못한 마음의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생과 교환의 경계를 묻다

내가 생각하는 희생이란 본래 댓가와는 무관한 것이다. 감사의 표현이든, 물질적인 보상이든, 그것을 기대하는 순간 희생은 이미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댓가를 바라지 않아야 비로소 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희생이라기보다 교환에 더 가까운 행위가 된다.


물론 댓가 없는 희생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이기적인 요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정 많은 이웃, 희생적인 어머니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댓가를 바라는 태도 또한 모순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헌신이 진정한 희생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상대의 필요와 맞닿아 있어야 하고, 최소한 기대되는 보상의 목록 속에 상대를 가두지 않아야 한다. 인정받지 못해 상처 받는 마음은 충분히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 상처의 원인을 전부 타인에게 돌리는 순간, 희생은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라 갈등을 키우는 도구로 변할 수 있다.


희생이 인정받지 못했을 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보다, 상대를 원망하는 쪽이 훨씬 쉽다는 사실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댓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처음 존재했던 선의와 배려라는 긍정적인 기운들은 내면에서 원망과 미움으로 잠식되어 갈 것이다. 나는 시어머니를 통해, 진정한 희생과 선의란 결국 아무런 댓가도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그렇기에 희생하는 모성은 숭고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고 오래 기억해야 할 삶의 교훈으로 배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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