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 실험과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나?

블록체인 스타트업 창업가에서 조력자로 전환을 시도하며 남기는 궤적

by 임혜수

창업, 기술 그리고 나


성균관대에서 'BIM and Blockchain : BIM as a Database vs Data-driven Infrastructure'를 강의하던 시기, 4년간 4번의 스마트 시티 스타트업 세미나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이 현실의 세계에서 어떤 방식과 논리로 동작할 수 있을지를 증명하고 싶었다. 건설산업이라는 오래되고 낡은구조가 선진 국가에서 AEC/FM 산업으로 정의하여 글로벌 표준을 리드하는 것처럼, 국내에서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키는 PoC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는 진심이었다. 연구실 안이 아닌 실제 현장과 고객을 찾아다니며 제품화 가능성을 시험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작지만 의미있는 매출도 나왔다. 그 순간은 창업가로서의 나에게 뚜렷한 성취의 순간이었고, “기술은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며 이 당시까지만 해도"기술의 효용성을 입증하면 시장은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기술의 효용을 증명하는 것과 지속가능한 사업을 만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매출은 발생했지만 그 이후 발생한 행정적, 법무적, 운영적 문제에 대비할 리소스가 부족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이 역시 창업의 본질이었다. 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한계에 맞닥뜨리면서, 나는 ‘기술을 실험하고 시장에 내 자신을 던지는 경험’에서 한 걸음 물러나 창업이란 무엇이고, 나는 왜 창업을 했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다. 기술이 아닌 나 자신의 내면으로부터의 성찰을 통해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사업을 바라보려는 통찰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디에서 무엇부터 나를 보완해 나갈지 결정해야 했다. 결국 나는 기술의 실험자에서, 다른 역할로 스스로를 재정의하며, 이후 실행 단계에서는 단지 또 다른 창업을 택하기보다, 실패와 통찰을 자산 삼아 다른 창업가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창업 생태계의 조력자가 되기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AC/VC 직무에 관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피봇, 무너짐의 경험 그리고 실패로부터 배우기


2021년 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대로 가면, 우리 제품은 그냥 SI 프로젝트처럼 끝나겠다’는 위기감. 동시에, 크립토 VC의 제안을 계기로 “진짜 블록체인의 철학”을 담은 제품을 만들어보는 피봇을 하게 되었다.


두 가지를 결심했다.

"남의 요구에 맞춰 커스터마이징만 하는 팀이 아닌, 우리가 정의한 문제를 해결하는 팀이 되자"

"블록체인을 이야기하면서 암호화폐를 다루지 않는 건 비겁하다. 암호화폐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자"


그리고 모든 것을 걸었다. 매출수익을 재투자하고, 기술 스택을 바꾸고, 팀을 재구성하고, 나의 개인재정도 올인했다. 진정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하고 다짐하며.. 하지만 전략적 사고와 체계적인 분석과 준비를 바탕으로 진입했어야 하는 크립토시장에서 기술과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너무나 높았고 나는 교만했다. 또한 타이밍이 좋지 않게도 시장은 크립토 겨울이라는 하락장으로 급변했다. 테라/루나사태와 3AC 사태까지, 업친데 덮친 격이었다. 결국 투자유치에 실패했고, 모든 것을 잃었다. 무너졌다. 엔지니어링을 담당해서 공동창업자의 자리를 지켜주던 동료 또한 어느날 조용히 포기를 선언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실패 경험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내가 경험한 스타트업의 성장단계와 실패한 지점의 재정의를 해보았다. 나의 스타트업이 죽은 지점은 '죽음의 계곡'이기 보다는 급격한 시장과 산업환경의 변화의 한 중심에 있는 암호화폐 시장 한 켠에 자리한 거대한 무덤이었다. 그만큼 암호화폐 시장은 기존 스타트업 시장보다 더 치열하고 더 위험하고 도전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었고, 기존 경제체제 중심에서 동작하는 성공 방정식과는 상당히 다른 시장이었다. 물론 전통 경제에도서 똑같은 성공 방정식은 절대 통할리가 없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변수, 상수가 추가되어 더 복잡해진 느낌이랄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실패였다.


성찰, 회복, 그리고 전환


그 실패 이후, 나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고 엄청난 무기력감에 시달렸다. 결국 너무나도 무모한 나였다. 나의 무능력함은 그렇게 한계를 드러냈다. 공동창업자는 떠났고, 재정 파탄은 시작되었다. 유일하게 기댈곳은 우연히 들어간 코리빙 커뮤니티 논스였는데,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고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활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 있었다. 투자, 협업, 창업가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그 공간에서 나는 내가 직면한 특정 사업의 윤리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철학적인 고찰 뿐만 아니라 왜 창업을 했는지 무엇이 고지 고질적인 문제들인지 그리고 내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나아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에 대해 재질문하게 된다.


비트코인을 백서부터 다시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그저 '기술'로 접근했던 블록체인에,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철학을 재탐색하게 된다. 그리고 창업을 하기 전 보다는 그 가치의 효용에 대해서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KAIST 학생주도의 학회에서 비트코팀 연구팀을 운영했던것은 너무 감사한 경험이었고 나에게 유익했다. 사토시가 남긴 글을 다시 진지하게 읽어보고,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기여하기위해 분위기를 파악하고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요청하고, 코드를 직접 분석해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러고는 나의 창업과 기술실험을 시작하기전에 아래의 글을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미리 준비해서 역량을 갖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를 생각하고 이제부터라도 독립연구와 독립개발을 통한 기여 레코드를 꾸준히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도구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 오늘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세상은 아직까지 대부분 허구의 세상입니다. 실제로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 현실에 대한 본질적 이해 없이 희망을 팔고 과장광고를 하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더 크고 영향력 있습니다. 그러나 백서나 뉴스 해석 기사를 읽어서 블록체인을 이해하려는 것은 비즈니스 스쿨에 가고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회사를 세우는 수준밖에 안됩니다. 코딩을 해야합니다. 여러분에게 유용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보다 기술을 이해하는 더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 ” - 지미송, 프로그래밍 비트코인 켄 리우의 머릿말 중


또한 창업가로서의 나의 실패를 숨기지 않고, 실패 경험을 자산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에도 이르게 된다. 다른 창업가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조력자가 되기로. 그리고 조용히 오픈소스를 연구하고, 문서화하고, 생태계에 기여하고, 가끔은 조용히 버그를 잡고, 리뷰를 하는 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기술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강점을 지녔던 내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초기 창업가들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두 가지 실천적 행동 그리고 결심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이것이 창업가로서 직면하는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경험일지도 모른다. 내 실패를 되돌이켜보니 가만히 앉아서 공허한 마음으로 실패를 외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두 가지 실척적 행동을 중심으로 실패를 인정해보며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것이 더 현명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제한된 재정과 시간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를 속으로 수 없이 생각했던거 같다.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실천적 행동에 대한 결과를 통해 내 자신을 정의 할 수 있는 나름의 냉철한 자기변화 방식을 찾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첫 번째 실천은, 비트코인 오픈소스 개발자가 되기 위한 훈련의 시작이었다. 기술을 잘못 이해하고 응용하여 한계와 실패를 체감한 것이 아닌지 기술기반의 창업의 근본을 다시 파헤쳐보는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철학을 이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코드기여자로서의 삶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실제 P2P 프로토콜상의 inv 메세지나 reorg 규칙같은 관심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비트코인이 동작하는것에 역할을 하는 secp256K1 연산자 재정의, 트랜젝션, 블록, 블록체인,UTXO와 같은 핵심 구현체들을 cpp, rust, go 언어환경에서 분석해보고 테스트코드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확인해보며, 조금이라도 개발자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엔지니어로서 성장하는 경험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기술 이면의 측면이 가진 깊이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렇게 생태계 내부의 흐름을 조금씩 체득하고, 독립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을 천천히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창업가 시절의 자신과 조금은 다르게, 기술에 대한 책임과 존중을 품은 조용한 실행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측면에서의 실천이었다.


두 번째 실천은, 내가 경험하고 체득한 창업과정에서의 실무경험을 해커톤이라는 형식으로 압축해 재구성해보는 시도였다. 실패와 성찰, 시장과 기술, 철학과 실행을 넘나들며 얻은 것들을 구체적인 비트코인 프로그래밍 교육 프로그램, 아이디어톤, 팀빌딩 세션의 형태로 구성하고 직접 운영해보았다.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초기 창업자들이 진짜 문제에 접근하고 협업하고 피벗하며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결국 이 모든 기획은, 내 실패를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발생한 방식의 조력이었던것 같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비트코인 생태계 기여자로서 작은 실천이자 코딩보다는 강점이 드러나는 실천적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기강점 탐색을 해보며 코드 기여자로서의 성과보다는, 창업가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기획과 운영으로 풀어내는 역할에서 더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독립 연구자와 코드 기여자로서의 길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내가 처한 현실과 실제 발생했던 결과를 기반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했을 뿐이다.



창업가를 조력하는 엑셀러레이터 업무로의 전환


나는 여전히 무모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모함이 신중함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기술을 여전히 흠모하고, 그것이 향하는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싶다. 이 글은 실패의 기록이자 전환의 서사이며, 새로운 실천을 위한 나의 의지다. 나처럼 어설펐지만 진심이 있었던 사람, 혹은 지금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이 기록이 작은 울림과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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