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형일 Mar 27. 2022

H마트에서 울다, 무성교실,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22.03.19 미셸 자우너,  무라타 사야카,  리안 모리아티

미셸 자우너 (2022,02,28). H마트에서 울다. 정혜윤 역. 문학동네.

“세계를 사로잡은 신예 록 뮤지션의 가족, 음식, 슬픔과 사랑에 관한 강렬한 이야기”

『H마트에서 울다』는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이자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의 뭉클한 성장기를 담은 에세이다.  “우리 엄마만 왜 이래?” 여느 미국 엄마들과는 다른 자신의 한국인 엄마를 이해할 수 없던 딸은 뮤지션의 길을 걸으며 엄마와 점점 더 멀어지는데…… 

대학 입학 후 7년,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미셸 자우너. 어느 날 전화 한통을 받는다.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 

엄마는 급작스레 암에 걸리고 투병 끝에 죽음에 이르고 만다. 

어렸을 적부터 한국 문화를 접하게 해준 엄마를 떠나보내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마저 희미해져감을 느끼던 어느 날, 작가는 한인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다 엄마와의 생생한 추억을 되찾는다. 『H마트에서 울다』는 그로부터 얻은 위안과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담담하게 적어나간 에세이란다.

당장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타이틀과 로그라인이었다. H마트라는 공간도 신선할 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우는 한 소년에 대해 굉장히 깊은 호기심이 생긴다. 안으로 좀 더 들어가보면…

 

H마트는 미국에서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대형 식료품 할인점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의 크기’라는 의미처럼 그곳에는 만두피, 김, 뻥튀기, 죠리퐁, 갖가지 밑반찬 등 없는 한국 먹거리가 없다. 미국 14개 주 70여 곳에 있는 H마트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고향의 맛’을 찾게 해주는 보물창고와도 같다. 2층 식당가에는 뚝배기에 찌개가 담겨 나오고 떡볶이를 파는 한국 음식 전문점과 탕수육, 짬뽕, 볶음밥과 짜장면을 파는 한국식 중국 음식점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억과 사연을 안고 이곳을 찾는다.


엄마를 잃고 찾아간 그곳에서, 자우너는 딸과 함께 해물짬뽕을 먹는 할머니를 보고 울컥한다. H마트에서,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비빔밥에 고추장 많이 넣지 말라던 엄마의 잔소리도, 달콤한 짱구 과자를 손가락에 끼고 흔들던 엄마의 모습도, 엄마와 내가 조금씩 베어물던 동그란 뻥튀기의 추억도 이곳에선 생생하기만 하다. 그렇게 H마트에서 자우너는 엄마가 미각에 강렬하게 새긴 맛을 되찾으며 위안을 얻고 회복해나간다.


누구보다 애틋한 모녀였지만 깊은 사랑은 때론 애증이 된다. 한 살짜리 아기를 데리고 한국인이라곤 찾을 수 없던 미국 오리건주 유진으로 이민 온 엄마는 딸을 엄하게 키운다. 어린 자우너가 보기에 미국인 엄마들은 자식에게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고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듯했지만, 자신의 엄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딸을 최상의 버전으로 만드는 데 잔소리를 아끼지 않을 뿐이었다. 딸의 외모, 화장, 옷차림, 공부 등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엄마. 다치기라도 하면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며 흉터 걱정부터 했다. 꺼이꺼이 흐느끼는 자신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울긴 왜 울어. 네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닌데”라며 다그쳤다. 자우너는 엄마의 그런 엄하고 매정한 말들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작가가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스물다섯 살무렵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엄마에게 암 진단이 내려진다. 작가는 절박한 마음에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매일같이 엄마가 복용하는 약과 먹은 음식을 기록하고, 머리숱도 거의 사라지고 몸집도 줄어든 엄마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려 한다. 살아생전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사랑하던 남자친구와 결혼식도 올리기로 한다. 엄마는 딸의 결혼식을 보려는 듯 기적적으로 그 순간까지 버텨준다.

하지만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다만 엄마가 해주던 음식의 기억만은 생생히 남았다. 이제 엄마는 없지만 자우너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찾아보며 된장찌개, 잣죽,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엄마의 한국 음식을 통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달래며 회복해간다.

작가는 어릴 적에 엄마가 2년에 한 번씩 자신을 데리고 간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나, 마치 엄마가 자신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알려준 것처럼 남편을 데리고 한국을 경험한다. 생일날 이모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엄마와 못다 한 추억을 친척들과 공유하며 슬픔을 받아들인다.  

이 책은 엄마를 잃은 딸의 치유기이면서 한 예술가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자우너는 음악과 처음 사랑에 빠진 풋풋한 시절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수많은 젊은 예술가가 겪는 시련, 부모의 극심한 반대, 생활고, 기약 없는 미래로 불안에 떨던 경험도 솔직하게 들려준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아시아계 혼혈인 여성 예술가라는 겹겹의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좌절과 혼란에 대해서도 담백하게 이야기하는데... 



무라타 사야카(2022,03,14). 무성교실. 최고은(역). 하빌리스

≪편의점 인간≫으로 홈런을 때린 무라타 사야카가 이번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는 네 명의 여성 이야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세계는 지금 ‘정상’인가.”

의심해 본 적 없는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네 편의 기묘하고 도발적인 이야기.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 서른여섯 살 직장인이지만 마법소녀라는 망상으로 현실을 이겨 내고 있는 리나,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같은 과 남학생에게 일주일간 감금당해 달라고 부탁하는 우치야마, 

성별이 금지된 학교에서 남자도 여자도,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채 사랑에 빠진 유토, 

자신만 빼고 모두가 ‘분노’라는 감정을 촌스럽다고 말하는 데 ‘분노’하는 가와나카까지. 

비현실적인 가운데 지극히 현실성 있는 이 이야기들을 연이어 만나다 보면 내가 사는 세계 자체가 흔들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데.. 무라타 사야카는 네 편의 단편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에 적당히 물들고 길들여져 가는 건 아닌지, 이대로 흘러가도록 두어도 괜찮은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 같다. 

“괜찮아. 우리는 쉽고 안이하게, 아무 생각 없이, 제 의지란 없는 것처럼 순식간에 주변에 물들어, 변용하며 살아가는 생물이야. 자신의 그런 점을 믿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줄곧 우리 유전자는 그걸 반복하며 살아왔으니까.”

- <변용> 중에서


먼저 <마루노우치 선의 마법소녀>는 무리한 부탁, 무례한 요구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단계, 도박, 불륜, 데이트 폭력 등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일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일상에 주목한다. 크고 작은 일상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의연함을 강요받는 현실에 살고 있는 주인공 리나는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판까지 좋은 서른여섯 살의 직장인이지만 자신이 ‘마법소녀’라는 망상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려 애쓰고 있다.


<비밀의 화원>은  순수했던 첫사랑의 환상 속에 사는 우치야마, 그녀에게 현실의 남자친구는 모두 징그러운 존재다. 번번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도 순수했던 첫사랑과 현재 남자친구의 괴리감 때문이란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첫사랑의 환상을 깨기로 결심한 그녀는 첫사랑에게 제안한다. “일주일만 감금당해 줄래?” 


표제작 <무성 교실>은 젠더가 금지된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유토가 학교에 가기 위해 입는 트랜스셔츠는 어느 성별에도 속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 듯 흰색 바탕에 연한 녹색 줄무늬가 들어간 무난한 셔츠다. 셔츠가 유토의 가슴을 납작하게 압박한다. 성별이 금지된 학교에서 모든 학생은 비슷한 쇼트커트 머리를 한다. 물론 신체 발달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말만 하지 않을 뿐 누가 어느 성별인지 안다. 문제는 사랑이다. 유토는 친구 세나를 좋아한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 자체가 없는 곳에서 사랑에 빠진 주인공 유토는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니다. 성별이 금지된 학교에서 두 친구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눈을 감은 채 서로를 알아가는 두 친구의 모습은 언뜻 괴상하면서도 이상한 쾌감을 준다.


마지막 작품 <변용>은 분노가 낡은 감정이 되어버린 시대를 담는다. 주인공 가와나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젊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진상 손님의 갑질에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분노라는 감정을 교과서에서 봤다며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는 가와나카를 오히려 낯설어 한다. 그리고 가와나카에게 분노가 무엇인지 묻는다.


모든 작품이 모두 비현실적인 세팅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철저히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소설집되겠다. 

 

리안 모리아티(2022.03.08).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김소정(역). 마시멜로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완벽한 가족,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다면 실종신고를 해야 할까? 가장 강력한 용의자가 아버지라도?!! “우리 가족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저 가끔 서로를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을 뿐..” 

델라니 가족은 누가 봐도 너무도 완벽한 가족이었다. 지역 명사인 부모님 스탠과 조이는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다. 테니스 코트 위에서 만난 부부는 모두의 부러움을 살만큼 사랑했고 화목했다. 결혼 생활 50년이 지난 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운영했던 테니스 교실을 매각했고, 인생 제2의 황금기가 될 수 있는 은퇴를 맞을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델라니의 네 자녀, 에이미와 로건, 트로이와 브룩은 모두 과거 촉망받는 테니스 유망주였지만, 아버지의 기대처럼 최고 지점까지 올라간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네 사람 모두 괜찮은 어른이 됐고, 곧 스탠과 조이에게 손주를 안겨줄 멋진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반나라는 낯선 여자가 스탠과 조이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남자친구와 싸우다 다친 사반나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이는 상처받은 어린 영혼에게 친절을 베풀고 오갈 데 없는 그녀를 한동안 집에 머물게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자의 등장은 가족들 사이에 묘한 균열을 불러온다. 

그리고 몇 달 뒤 갑자기 조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델라니 남매들은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하루아침에 엄마가 휴대폰도 남겨둔 채 사라졌다면, 그리고 시간이 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면, 과연 실종 신고를 해야 할까?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아버지일지라도?

조이가 사라졌을 때, 사반나도 행방을 알 수 없었을 때, 경찰이 주목한 사람은 오직 스탠 뿐이었다. 수많은 실종자의 수많은 배우자처럼 철저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스탠도 무언가 감추는 것이 많아 보였다. 델라니 남매 가운데 두 명은 아버지의 무죄를 믿었지만, 두 명은 아버지의 무죄를 확신하지 못한다. 두 편으로 갈라져 자신들이 치를 가장 큰 시합을 준비하는 동안 델라니 가족은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던 가족의 역사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한다. 이들 가정에는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과연 이들이 서로에게 감추고 있는 비밀은 무엇이며, 정체불명의 사반나는 이들 가족에게 어떤 파장을 안긴 걸까?

갑작스런 엄마의 실종을 추적해나가는 현재의 시점과 낯선 젊은 여인이 등장했던 6개월 전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 소설은, 어른이지만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들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여러 문제들을 파헤친다.

곧 마흔 살이 되지만 이따금 불안정한 감정 기복으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시간제 파트타임 일을 하며 살아가는 철부지 첫째 딸 에이미, 

델라니 테니스 아카데미를 물려받아 아버지처럼 코치가 되길 바랐지만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강사 일을 하며 루틴한 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 아들 로건, 

남매들 중 유일하게 테니스로 일류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한 뒤 뉴욕을 오가며 활동 중인 잘나가는 전자상거래 사업가인 셋째 아들 트로이, 

얼마 전 자신의 물리치료실을 개업한 물리치료사로 막내답지 않게 가족 중에서 가장 신중하고 의젓하지만 늘 만성 편두통에 시달리는 넷째 딸 브룩까지… 

제각각 녹록치 않은 인생의 무게와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는 장성한 네 남매는 엄마의 부재를 두고 각자의 시선으로 가족의 문제들을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실종이 불러온 파장은 서로 다른 의심과 엇갈린 진술로 점차 커져만 가고, 어쩌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끼리 오히려 잘 모르고 있었던 지난날의 문제와 비밀들이 베일 벗듯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점입가경의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소설에서 이들 가족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등장하는 ‘테니스’는 미처 완성하지 못한 부부의 성취이자 열망이며, 부모와 자식 간에 기대와 실망, 형제와 자매 간에 치열한 욕망과 경쟁을 의미하는 배경이자 상징으로 작용한다. 

50년 동안 함께 산 부부라고 해도 결코 알 수 없는 진짜 속마음, 아무리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대 간의 갈등, 같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이기에 유독 더 크게 느껴지는 미묘한 질투와 경쟁 등… 수십 년 동안 내재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응고되어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미처 소통하지 못했던 지난 과거의 오해와 상처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고 하는데...  

소설의 제목은 “사과는 결코 사과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The apple never falls far from the tree)”라는 부전자전, 모전여전의 의미를 담은 미국 속담에서 차용해온 듯하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사랑하지만 미운, 그립지만 힘겨운 애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가족은 상처일까, 위안일까? 웃음일까, 눈물일까? 절망일까, 희망일까? 무엇이든 나는 결과 부모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펼쳐나갈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자와 나오키:아를르캥과 어릿광대, 페스트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