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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형일 Apr 11. 2022

뒤바뀐영혼, 그랜드캉티뉴쓰호텔, 일하고일하고 사랑을하고

#22.04.02 류팅, 리보칭, 최지인

류팅 (2022.03.15). 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 자음과 모음. 

중국 ‘80후(80후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 류팅이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중국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피폐해진 정신세계를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낸다는데…. 생활의 곤경 때문에 타인과 영혼을 바꾼 천재 시인, 타락한 현실을 피해 당나라로 돌아간 대학 교수,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된 남자 등 열두 편의 기묘한 환상곡이 펼쳐진다고 한다.

뭔가 루쉰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작가.

“허구가 오래되면 진실이 되고, 진실이 오래되면 허구가 된다”

표제작 「뒤바뀐 영혼」은 천재 시인 야거가 연인 샤셩을 만나 가정을 이루지만, 현실적인 곤경에 직면하고 만다. “야거는 생존에 관해서 가장 본질적인 진리만 알고 있을 뿐, 두 사람이 처한 곤경에 대해 어떠한 실질적인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12~13쪽)는데, 그 어떤 위대한 ‘시’로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낀 야거는 화장터에서 일하다가 가족을 위해 유골함을 훔친다. 감옥에 갇힌 야거는 어느 날 밤, 신비한 목소리로부터 “내일 감옥에서 나가면 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우리 바꿉시다’라고 말해봐. 너의 시재를 전부 그에게 주고 그의 모든 삶의 지혜를 달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되고, 감옥을 나서는 순간 타인과 영혼을 바꾸기에 이른다. 흥미롭다!!

「당나라로 돌아가다」는 중국 현대인의 욕망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폐함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대학 교수인 ‘나’는 당위원회 부서기이자 학교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자신의 아내가 총장과 부적절한 관계인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수의 시처럼 아름다운 당나라 시대로”(85쪽)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진짜로 우연히 만난 당시(唐詩) 한 편에서 비밀을 발견하게 되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 번개를 맞고 당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소원이 이뤄진거다. 그런데 왠걸? 꿈과 현실은 달랐다. 가난과 전쟁으로 인해 그곳에서 ‘나’의 삶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을 만나기 위해 창안성에 다녀온 ‘나’는,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아내가 군부대의 습격에 비참하게 죽어 있는 것과 자신의 아내가 다른 사내와 간통을 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참담함에 빠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현실의 탐욕적 삶보다 “기근과 흉작, 살육이 존재하는” 당나라 시대의 삶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끼는데...

류팅은 “현실과 비현실, 상상과 관념이 빈틈없이 긴밀하게 연결된” 방식으로 중국 현대인들의 실상을 기록한다. 정부의 토지개발사업의 보상 문제에 맞서다가 굴착기에 머리를 맞아 온몸이 마비된 채 오로지 귀로서만 세상을 감각할 수 있는 비참한 상황을 그린 「귀」,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두려움을 먹고 살아왔던”(120쪽) ‘죽음의 신’이 더 이상 인간의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욕망과 쾌감, 분노와 증오 같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바람에 굶주림을 겪게 된다는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되다」, 야간버스 운전기사인 ‘라오훙’이 단골 승객인 한 아가씨의 권유로 처음으로 경로를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지만 단 한 번의 일탈로 인해 그 아가씨를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아이러니함을 다룬 「낮과 밤」, 제복이 가진 권력에 매료된 경찰이 그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제복에 집착하다가 결국 감옥에 가서 죄수복을 입게 된다는 「제복」, 현실에서 아주 작은 것조차 꿈꾸지 못하게 된 주인공의 영혼이 노인처럼 늙어버려, 실제로 죽어 화장을 했을 때도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는 「영혼의 무게」 등등.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인 열두 편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현대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곤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작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 “우리는 더 이상 고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타인, 사람과 자신이 일치된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직접 인식할 수 없다. 모든 인식은 문학의 기법인 은유와 상징, 우화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우리 자신은 매체를 통해서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 문학 혹은 예술이 현대생활의 종교의식이라면, 허구는 이 의식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허구는 소설이 소설일 수 있는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


리보칭 (2022, 03. 10).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허유영(역). 비채. 

탐정 VS 경찰 VS 괴도 VS 킬러

네 가지 추리가 만나는 순간 드러나는 의외의 진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초호화 시설을 자랑하는 특급호텔 캉티뉴쓰. 송년 파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1월 1일 새벽,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호텔 사장 바이웨이둬가 산책로에서 조깅 중 총을 맞고 숨진 것. 유일한 단서는 갈비뼈 사이에 박혀 있는 총알뿐. CCTV와 관리사무소로 둘러싸인 산책로에는 누구도 드나든 흔적이 없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호텔 투숙객이자 명탐정으로 알려진 조류학 교수 푸얼타이, 전직 경찰 뤄밍싱, 변호사 거레이, 신비의 괴도 인텔 선생이 등장해 추리를 선보인다. 범인은 누구일까? 이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살인일까? 그런데, 애초에 네 사람이 호텔에 모인 것부터가 이상한 일은 아닐까? 서로 다른 네 가지 사실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상상도 못 한 진실이 선명히 떠오른다. 


네 사람의 추리에는 저마다 허점이 존재하고, 그 허점을 다음 장의 주인공이 메우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 한마디로 다중시점만의 매력을 한몸에 갖춘 소설이라는데... 푸얼타이와 그의 조수이자 친구 웨이즈는 언뜻 보기에도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을 연상케 하고, . 고도비만에서 탈출하고자 칼로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전직 경찰 뤄밍싱의 모습에서 로런스 블록이 창조한 캐릭터 ‘매튜 스커더’와 요 네스뵈의 안티 히어로 ‘해리 홀레’가 오버랩된다고 한다. 그뿐인가. 한 시대를 풍미한 ‘괴도 인텔’은 ‘괴도 뤼팽’의 오마주이고 살해당한 호텔 사장 바이웨이둬는 〈화양연화〉 속 양조위를 빼닮았다는데...


작가는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인물들을 추리소설의 정석대로 배치한 다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를 틀어버린다. 완벽한 듯 보였던 추리는 철저히 반박당하고 인물은 그 전형성을 잃고 의외의 면을 드러낸다. 한편, 진실에 마주한 독자는 책을 덮으면서 모든 단서가 처음부터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음을 깨닫는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도 애정하는 찬호께이 작가가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원하는 모든 요소를 고루 갖췄다’고 극찬을 했다니 아니 읽을 수 없겠다. 


최지인 (2022,03,18).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 시집

MZ세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의 일과 사랑과 아픔을 가슴에 와닿는 적확한 언어로 듣고 싶다면 1990년생 최지인 시인의 언어가 좌표가 될지 모르겠다.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민음사 2017)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란다. 2020년대 부조리한 세상의 그늘에서 위태롭고 불안정한 생활을 꾸려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삶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목소리와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언어로 담아냈다고 한다.. 

실패한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괜찮은 변명거리다

누구나 실패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순 없다

(…)

사랑한다 말하면 무섭다

그것이 나를 파괴할 걸 안다

--- 「섬」 중에서


누군가 말했다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고

그런 자유는 없다

우리 시대 지식인들은 모든 인민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무엇에 공모하고 있는가

이 구미 자본주의에

이 신자유주의에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다 분명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둔 것이다

--- 「숨」 중에서


양심 있는 지식인들은 노예제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임금은커녕 마음대로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돈 버는 것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삶의 모범이 없다는 건

몹시 슬픈 일이다

--- 「코러스」 중에서


어제 집계된 감염자 수와 두려움과 가난과 외로움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돈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다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인데 다 늙어버린 것 같다

--- 「이번 여름의 일」 중에서


유명해지거나

가난해지거나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네

너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겠지

하루 열여섯시간

여섯명의 몫을 하기에 우리는

벌써 늙어버렸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끝끝내

살아간다는 것을

--- 「컨베이어」 중에서


우리는 죽지 말자 제발

살아 있자

(…)

요새 애들은 뭔 할 말이 그리 많으냐, 자고로 시는 함축적이어야 한다 말한 교수에게

우리는 장황하게 말할 것이다 계속

여러명의 목소리로 떠드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산과 바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 인간이 파괴한 인간, 우수한 여백과 무수한 여백

--- 「제대로 살고 있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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