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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형일 May 01. 2022

배우의 방, 여덟건의 완벽한 살인,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22.04.16. 정시우, 피터스왓슨, 박서련

정시우 (2022.04.19). 배우의 방. 휴머니스트

캐릭터에 빠져 사는 배우가 자신으로 돌아와 자기만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방. 

박정민, 천우희, 안재홍, 변요한, 이제훈, 주지훈, 김남길, 유태오, 오정세, 고두심

배우 10인의 ‘자기만의 방’에서 나눈 심층 인터뷰란다. 


공부도 연기도 엉덩이 싸움이라는 박정민의 말, 

시대를 받아들이고 나의 방법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천우희의 말,

좋은 연기란 지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상태라는 안재홍의 말 

수백번의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오정세의 말 등등

살면서 가끔 구석에 몰렸을 때 찾아보고 싶은 이야기, 목소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에세이집같다.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에요. 오래 앉아 있는 놈이 이길 가능성이 크죠. 연기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방식을 바꿔도 봤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다시 ‘그냥 엉덩이 싸움으로 돌아가자’가 됐죠. 캐릭터를 내 몸에 붙이는 과정만큼은 그러자 싶더라고요.

--- p.38 ‘배우 박정민의 방’ 중에서

나홍진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아티스트는 시대를 선택할 수 없다. 선택받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듣자마자 와, 했어요. 결국 중요한 건 내게 주어진 환경에 나의 색을 융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같아요. 바꿀 수 없는 걸 껴안고 고민하기보다는.

--- p.90 ‘배우 천우희의 방’ 중에서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사랑받고픔에 대한 갈구가 있습니다. 가족, 친구, 관객들이 보내주는 지지는 소중하죠.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제가 저에게 보내는 지지라고 생각해요. 그건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일 수도 있고 응원일 수도 있죠. 그런 마음이 저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요... 좋은 연기란 다만 상태인거죠. 지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지속해서 질문을 찾는… 

--- p.141 ‘배우 안재홍의 방’ 중에서

“좋은 작품이라면 제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어요. 작품 안에서 올바르게 쓰이고 싶을 뿐. 누군가가 빛나야 하는 순간이라면, 기꺼이 반사판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 p.206 ‘배우 이제훈의 방’ 중에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거잖아요. 액션 영화를 찍으면 액션이 많아서 힘들고, 액션이 없으면 ‘차라리 몸으로 하는 게 낫다’ 하죠. 저는 모든 배우가 같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있는 핸디캡은 핸디캡이 아니죠.”

--- p.245 ‘배우 주지훈의 방’ 중에서

“개인적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한자성어를 좋아해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라는 뜻이죠. 실력이든 인성이든, 차근차근 쌓아가다 보면 언제고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 p.277 ‘배우 김남길의 방’ 중에서

“오디션에 합격하고 합격하고 합격한 게 쌓여서 지금의 오정세가 된 게 아니라, 떨어지고 떨어지고 수백 번 떨어진 게 지금의 저를 만든 거잖아요? 그렇기에 놓쳐서 아쉬운 건 별로 없어요.”

--- p.365 ‘배우 오정세의 방’ 중에서

“연기는 살아내는 거더라. 살아내는 거야. 나는 나에게 떨어진 이걸 숙제라고 생각해요. 내 머리는 그 숙제 풀이로 꽉 차 있어. 고통을 스스로 껴안는 것도 같은데, 어쩔 수 없어요. 그건 숙명이니까. 나에게 이만큼 짐을 줬는데, 그 짐을 안 지겠다? 말도 안 돼. 내가 이 길을 택했으니까.”

--- p.406 ‘배우 고두심의 방’ 중에서 


피터스왓슨 (2022.4.11). 여덟건의 완벽한 살인. 노진선(역). 푸른숲.

“누군가 내 리스트를 읽고 그 방법을 따라 하기로 했다는 겁니까? 그것도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죽이면서요? 그게 당신 가설인가요?”


연쇄살인범이 내 블로그 포스팅에 적어 놓았던 이야기를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것 같다면? 

그는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다음 차례는 나인 걸까? 보스턴에서 추리소설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맬컴 커쇼. 어느 날 FBI 요원이 찾아와 ‘당신이 몇 년 전 서점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을 기억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범죄소설 가운데 가장 똑똑하고 독창적이면서 실패할 확률이 없는 살인을 저지른 여덟 작품을 모아놓은 포스팅인데, 누군가 이를 따라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책들에 나오는 살인 방법을 성공적으로 모방했다면 범인은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낯모르는 이들이 살해당했으나 곧 살인마의 타깃에 서점 단골손님도 포함되고, 어쩌면 커쇼 아내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살인자의 손길은 치밀하고도 지능적으로 점점 커쇼를 향해 다가오는데…. 범인은 대체 누구이며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이야기는 단순히 주인공과 살인자의 두뇌 싸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둘 사이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은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진실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갈수록 속도감이 배가 된다는데. 그 중심에는 아내 클레어의 죽음이 있다. 커쇼의 아내, 클레어. 아름답지만 불완전했던 사람. 가정이라는 중심 밖으로 자꾸만 벗어나는 클레어를 볼 때마다 커쇼는 바다 밖으로 나간 어부를 기다리는 반려자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클레어의 삶은 전반적으로 엉망진창이었고, 전반적으로 그 엉망진창을 스스로 책임지려 했다. 클레어에게 중요한 일은 남을 화나게 하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  그러나 바로 그 성향이 스스로를 갉아먹게 되고 남편 커쇼까지 잡아먹게 되며 .설상가상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의 단초를 만들고 만다는데…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전설적인 스릴러 고전들을 한 권에 응집한 작품이라고도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덫》, A.A. 밀른의 《붉은 저택의 비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살의》, 제임스 M. 케인의 《이중 배상》, 존 D. 맥도널드의 《익사자》,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 등 작품성과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고전 스릴러들이 단서로 등장한다. 범인은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살해 방법을 모방해 살인을 거듭하지만, 단순히 재현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예컨대 《ABC 살인사건》 속 범인의 살해 방식은 A로 시작되는 도시에서 A.A.라는 이니셜을 가진 사람을 살해하고, B라는 도시에서 B.B.라는 이니셜을 가진 사람을 알파벳 차례대로 살해하는 식이다. 반면  소설 속 범인은 이를 응용해 이름에 새(bird)가 들어가는 이들을 연속으로 살해한 후 새 깃털을 관할 경찰서에 보내는 것으로 해당 고전을 오마주한다. 범인을 추적하는 주인공과 FBI는 살인자가 어떤 식으로 살해 방법에 고전을 접목시킬지 전설적인 작품들을 들춰보며 추리를 거듭한다. 각종 오마주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추리를 통해 고전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또 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왓슨의 최신작이다. 


박서련 (2022.4.10).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창비. 

“흔한 얘기인걸요, 세계를 구하고 본인은 망하는 거.”

창비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세번째 작품. 


나는 신용카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죽기로 한다. 이달에 갚을 수 없다면 다음 달에 갚으라는 ‘친절한’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한 대가는 혹독했다. 갚아야 할 빚은 점점 늘어났고, 전염병이 퍼져 일자리마저 잃게 된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 주어진 건 많지 않았지만 최대한 낭비 없이 노력해왔다고” 생각한 ‘나’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온 것처럼” 한강 다리 위에 서게 된다. 한참이나 뛰어내리지 못하고 울고 있던 ‘나’는 문득, 택시 한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택시에서 내린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하는 말.  “당신은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니에요.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

마법소녀들이 세상을 지키는 시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마법소녀들은 매일매일의 현실을 지켜낸다. 특정 단체에 소속되거나 개인에게 고용되어 보안 업무를 맡기도 하고, 대테러 작전에 투입되기도 하며, 지구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기후 위기를 저지하는 일에도 나서기도 한다. 기후 위기처럼 거대한 일에 지속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마법소녀들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전마협)을 만드는데, 이들은 지구멸망을 막기 위해서 시간의 마법소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내’가 시간의 마법소녀라고? 그게 나의 운명이라고? 어릴 적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시계방에서 어깨너머로 시계 수리를 배우던 ‘나’는 시계 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품어왔다. 시계를 좋아하던 ‘내’가 시간의 마법소녀라니, 게다가 사상 최강의 마법소녀가 될 거라니.. 지구멸망을 막는다는 막중한 책임을 얻었지만 ‘나’는 아직 마법소녀가 아니다.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각성의 계기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라는 시급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전마협 의장은 ‘나’에게 각성을 촉진시킬 마구를 만들어주기로 하는데, 그 마구가 알고 보니 '신용카드'

소설은 마법을 사용하는 소녀들이 등장하는 세계에 신용카드, 리볼빙, 전염병, 기후 재난 등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을 녹여내며 독특한 재미를 불러온다는데… 

“세계에 종말론만 가득하고” 그에 맞서 싸울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 시대. 누군가가 타인에 의해 존엄을 잃었다는 소식,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그에 따라 날씨는 더욱 종잡을 수 없겠다는 소식, 산불이 나고 물이 넘쳐 누군가는 집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소식. 하루에도 여러 차례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대에 소설은 우리 모두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자고 말한다. “마법소녀들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생각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놀라운 힘을 개인적 편의를 넘어 타자와 세계를 위해 사용”하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존재를 너무도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놀랍게도 우리는…… 마법소녀의 민족이다. 받아들여.”(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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