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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형일 May 08. 2022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의 엔딩 크레딧.

#22.04.23.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안도 유스케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2022.04.18).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다산초당.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

2022년 1월 14일, 어떤 이의 죽음. 향년 60세. 그의 말년은 고통스럽고 눈부셨다.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애썼다. 어두운 생각이 몰려올 때마다 평화를 생각하며, 그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랑하던 이들의 곁에서 숨을 거뒀다. 

한때 그는 대기업 취업 3년 만에 역대 최연소 임원으로 지목된 스물일곱 청년이었다. 해변에는 집이 있고 회사에서 차와 기사가 나오는, 웹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눈부신 성공의 당사자. 하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에 대한 불안은 커져갔다. 그리고 그 불안은 삶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8쪽)

회사를 그만두고 그는 태국 밀림의 엄격한 계율에 따르는 숲속 사원에 귀의한다. ‘지혜가 자라는 사람’이라는 뜻의 법명 ‘나티코’가 되어 17년간의 수행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을 부르는 마음속 소음들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얻은 것은 그 소리를 없앨 수도 없으며, 그때까지 ‘나’라고 믿었던 것은 이런저런 잡다하고 충동적인 생각들의 조합일 뿐이란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배운 것이 있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모두가 인생의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17년을 숲속에서 수행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매순간 오늘의 사회에서 주어지는 모든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온갖 박탈감과 초조함, 허무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인생에서는 언제고 폭풍우를 맞이하게 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온다. 이때 자기 생각을 모두 믿어버린다면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빠져든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생각을 내려놓는 것. 이 책은 그러니깐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삶에 고비 국면에서 중요한지를 온 몸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라 보면 될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내려놓을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 잠재된 능력을 무시하거나 아예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은 여태까지 몸에 깊이 밴 행동과 관점에 좌우됩니다. 모든 결정을 습관적으로 내리게 되지요. 이를테면 과거에 목줄이 묶여 끌려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리는 같은 트랙을 계속해서 돌고 또 돌게 됩니다. 그런 삶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존엄도 품위도 없습니다.

---「과거라는 목줄」중에서

우리의 내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자기만의 조용한 나침반이 있어요. 그러나 그 지혜는 요란스러운 자아와 달리 은은해서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아가 던지는 질문과 요구는 그보다 몇 배나 시끄러워 지혜의 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요란한 소리에 쏠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립니다. 갈등에 끌리고, 불안과 불행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항시 현실과 투쟁하게 되지요.

---「순간의 지성」중에서

어떤 오클라호마주 출신의 승려는 무려 4년 동안이나 저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매일매일 조금도 감추지 않고, 쉬지도 않고 싫은 마음을 어떻게든 드러내곤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삶이란 참 역설적이다 싶습니다. 저는 늘 남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며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 제가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게는 그처럼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누군가가 저를 미워할까 봐 그토록 두려워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 그리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미움을 받고 나니 그제야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우친 것입니다.

---「괴짜들의 공동체」중에서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마법의 주문」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탓하기 좋아합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이런 생각을 품지요. “만일 내 부모님이 다른 분이었다면… 직장 동료들이 못되게 굴지만 않았어도… 정치인들만 제대로 했어도….” 그런 굴레에 자꾸만 빠지는 인간의 속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아의 근본적인 속성이거든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삶이 힘들어지고 심리적 압박을 겪을 때, 남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훨씬 편한 데다가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나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은」중에서

사실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저를 인간으로서 더 깊이 이해하고 계발하려고 인생의 절반을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초월한 지혜의 빛을 가슴에 품고서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스웨덴에서 가장 불행하고 실패한 사람으로 전락한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에선 온통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목소리만 메아리쳤습니다. ‘모든 게 갈수록 더 나빠질 거야.’ 그런 목소리를 거부하거나 맞서 싸울 수 없었습니다. 불을 내뿜는 용을 상대로 신문지로 만든 투구를 쓰고 나무 막대기를 들이대는 꼴일 테니까요. 그 불안감은 제가 아는 한 가장 가혹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영적 스승이었습니다.

---「전직 승려의 수치」중에서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거리낌 없이 보살핀다면 또 어떨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 전체가 반드시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안의 고귀한 마음가짐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너에게서 시작된다」중에서

승려 시절에 배운 것들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법과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는 법을 17년 동안이나 수행했으니까요. 그 기술 덕분에 때로 덮쳐오는 절망감을 조금이나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휠체어 신세가 되거나 말도 못 하고 아무것도 삼킬 수 없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지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대신 제 안에서 싹트는 다른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지요. 그것은 죽는 그날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모습」중에서

내면의 도덕적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잘 아는 사람의 삶은 더 쉽고 더 자유롭습니다. 저는 그 증거를 곧잘 목격합니다. 이 우주는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무심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존재는 공명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네가 세상에서 더 보고 싶은 것」중에서

우리가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랑하는 이들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없음을 머리로 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이해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더는 이만하면 됐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모든 사람과 반드시 이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 외의 나머지는 다 추측이고 가능성입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몹시 거슬리는 한마디」중에서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라 하지 말아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곁을 지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때가 됐을 때 제가 늘 원했던 끝이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열린 손바닥을 보여주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중에서


안도 유스케 (2022.04.23). 책의 엔딩 크레딧. 이규원(역). 북스피어

『책의 엔딩 크레딧』은 샐러리맨의 애환을 다룬 소설을 다뤄오던 저자가 원고를 보내고 나면 정작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3년 넘게 인쇄업계를 취재하여 쓴 소설이다. 책에도 영화와 같은 엔딩 크레딧이 있다면 기록해야 할, 책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종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잉크를 배합하고 그날그날 기계의 컨디션을 파악하여 설정을 결정하는 인쇄 기술자, 온도와 습도에 따라 잉크의 점착성을 판단하고 마른 뒤의 색까지 예측해 별색을 조합해 내는 제조 담당자, 뜻대로 되지 않는 종이 수급과 갑작스런 제작 변경에 따라 스케줄을 조율하는 인쇄 영업맨 등.

원고가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지는 광경이나,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지 사이에 공기를 넣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책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사양 산업으로 불리는 업계의 그늘과 이를 돌파하고자 하는 프로들의 자부심을 잉크 냄새 나게 묘사했다고 한다.


“종이 성분의 약 8퍼센트는 수분이다. 때문에 습도나 온도에 따라 미세하게 신축하고 변질된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습도가 높아서 종이와 종이가 들러붙기 쉽다. 공기를 충분히 넣어 주지 않은 채 급지부에 세팅하면 종이가 막히거나 여러 장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겹침이 발생하기 쉽다. _25p.

하지만 지로 씨는 그야말로 기술자라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종이 재질, 온도, 습도에 따라 잉크 성분이나 점착성을 판단하고 별색을 조합해 낸다. 인쇄기를 다루는 책임자인 노즈에도 잉크나 종이의 기본에 대해서는 거의 다 지로 씨에게 배웠다. _35p.

하판부 사람들이 들려주는 예전에 고생했던 이야기도 좋았다. 활판 인쇄 시절에 활자를 하나씩 골라 게라상자에 나열해서 판을 만들던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재미있다. 후쿠하라는 입사 후 연수에서 하판부 부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내내 가슴에 새기고 있다.

‘판이라는 것은 책의 도장이라고 생각하면 돼. 도장은 한 번 만들면 수정할 수 없지. 그러니까 신중하게 만들고 조심해서 다뤄야 해.’

레이아웃을 짤 때 줄바꿈 위치 하나만 틀려도 판을 전부 다시 제작해야 한다. 변경이나 수정이 비교적 쉬운 디지털 세계에 있으면 그 심각함을 잊기 쉽다. _216p.

훔칠 수 있으면 훔쳐야지. 다만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게 있어. 지로 씨는 종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잉크를 배합하고 규 씨는 기계의 그날그날 컨디션을 살펴보며 설정을 결정하지. 장인의 세계야. 내가 일조일석에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407-4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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