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형일 May 15. 2022

애쓰지 않아도. 아무튼 노래.

#22.04.30. 최은영, 이슬아

최은영 (2022.4.30). 애쓰지 않아도. 마음 산책.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다.”

최은영은 서툴고 미숙했던 시절, 누군가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시절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비밀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고 느끼지만 배신당하고, 선망은 사실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열병 같았던 시절을 지나고, 어느덧 담담해진 현재를 마주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보편적 성장담.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_31~32쪽


처음 데비가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거부감을 느낀 건 내게 사랑을 고백했던 남자들과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사랑하는 나’에 도취한 모습과 그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게 감정을 강요하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내 안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말이 꼭 협박처럼 느껴져 마음 깊은 곳에서 떨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_43쪽


너도 자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니. 그렇게 따로 묻지 않았던 건, 외롭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란 꿈처럼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_44쪽


남희,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운이 좋았지. 그녀와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잖아. 그게 어떤 건지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었잖아. 어릴 때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지. 이런 사랑을 경험해보려고 태어났구나. 그걸 알게 됐으니 괜찮아. _52쪽

나는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_62쪽

어쩌면 송문 또한 송문으로 살아온 송문의 마음을 영영 배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로 살아간다. _95쪽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고달플 때가 많이 있지. 인간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결코 자신이 바라는 것만큼을 이룰 수 없을 때의 어려움, 아픈 몸,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잘못된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괴로울 때가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것이 삶일 텐데, 불필요한 고통을 지어내는 세상. 세상은 온갖 방식으로 당신에게 고통을 안겼어. _124쪽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_220쪽 


이슬아 (2022, 04, 25). 아무튼 노래. 위고. 

노래에 대한 오랜 사랑의 고백이면서 노래와 함께 점점 더 깨끗하고, 아름답고, 오래된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

삼대가 함께 모여 사는 집 거실에는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할아버지 한우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날이면 어김없이 집안 식구들을 호출하고 노래방 기계를 틀었다. 할머니 향자는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겠다”고 노래했고, 당숙모는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라고 노래했다. 어른들이 깜빡 잊은 사각지대에서 어린 이슬아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노래가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어린 이슬아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따금 노래를 잘하는 게 제일 멋진 일인데 글쓰기 같은 게 대체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 술에 취해 노래할 때만 명곡의 힘을 빌려 마음을 내보이는 애인 때문에 꾸역꾸역 새벽의 시간을 견디기도 했다. 글쓰기가 두렵고 힘들 때 노래로 도망가곤 했다. 그때마다 노래는 넉넉한 품으로 노래에 대한 이슬아의 짝사랑을 받아안았다.  


어느 날에는 한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며 자신이 노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랑밖엔 난 몰라”라고 노래하지만 사랑 말고도 많은 것을 알게 된 노인으로서 축가를 건네고 싶었다. 할아버지를 잃어 외롭고 상심한, 이제는 헤어진 오래된 연인에게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직이 노래를 불러준다. 눈도 닮고 코도 닮고 입도 닮았지만 이제 서로를 속속들이는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동생과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노래〈밤운전〉을 만든다.  


살아가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친구가 처음으로 바다 수영을 하며 삶의 기쁨에 잠기는 것을 바라볼 때 단 한 곡의 노래만 세상에 남아야 한다면 〈안식 없는 평안〉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한 해가 끝나던 어느 날 정미조의 〈눈사람〉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하얗고 커다란 벌판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지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노래와 함께 점점 더 오래된 사람이 되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 구민회관 노래 교실에 다니는 여자와 거실 중앙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한 남자가 있었다.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노래 교실에 다니는 여자를 위해 남자가 반주 기계를 산 건지, 아니면 남자가 사놓은 반주 기계 때문에 여자가 노래 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건지. 아무튼 나는 그들의 손주로 태어났다. (p.17)


가왕들이 화려한 열창으로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세 평 남짓한 방을 뒤흔드는 동안 나는 소심하게 리모컨을 들고 다음 곡을 고른다. 예약 버튼을 누른 뒤엔 목을 가다듬고 다른 이의 노래를 경청하며 기다린다. 드디어 차례가 다가오면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쥔다. 좀 송구스러운 모습으로 첫 소절을 부른다. 에코 섞인 내 목소리는 내가 아는 나보다 어리고 여린 것만 같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최대한 집중해서 두 번째 소절을 부를 때쯤 가왕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기 시작한다. ... 지금은 그저 가왕들이 쉬어 가는 시간일 뿐이란 걸 1절 후렴을 부르며 깨닫는다. (p.7)


새삼스럽지만 나는 오늘의 신랑 신부도 잘 몰랐고 결혼식이 뭔지도 몰랐고 결혼이 뭔지는 더욱더 몰랐다. 어디 가서 축가를 불러본 적도 없었고 직접 녹음한 반주도 실은 엉성했고 노래 제목은 하필 〈사랑밖엔 난 몰라〉인데 사랑이라도 알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사실은 사랑마저 잘 몰랐다. 이 자리에 섭외되기에는 내가 너무 덜 살았으며 그러므로 축가 수락은 여러모로 부적절했다는 판단이 설 무렵 점잖은 사회자의 준엄한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pp.54~55)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내가 노래하자마자 그가 물 흐르듯 양손 검지를 흐르게 하더니 두 손바닥을 부르르 떨고선 두렵지 않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이라고 내가 노래하자마자, 그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턱끝에 살짝 톡톡 친 뒤 상심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까처럼 양손을 떤 뒤 고개를 끄덕였다.?(p.91)


그게 동원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정말로 불러드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임종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는데, 내가 노래를 미루지 않았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찬송가가 끝나자 하마가 영정 사진을 들었다. 하마의 발치에는 동원과 합장하기 위해 고이 모셔둔 할머님의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 식구가 적은 장례라 그것을 들 손이 부족했다. 망설이지 않고 얼른 가서 소중히 안아 들었다. (p.106)


“모를 거야, 누나는.” 무슨 일인지 다 말해놓고선 꼭 그렇게 마무리한다. 우리 사이의 유행어 같은 거다. 얼마나 우스웠는지 얼마나 서러웠는지 얼마나 앞이 캄캄했는지 누나가 어떻게 다 알겠냐는 푸념이다. 그럼 나는 한순간에 모르는 누나가 되어 웃는다. 웃으면서 똑같이 대꾸한다. “모를 거야, 너도.” 그럼 걔가 한 번 더 응수한다. “아니, 누나는 진짜로 모를 거야.”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모르는지 강조하며 웃는다. 몰라도 괜찮다는 듯이 웃는다. 나는 그 순간이 “넌 내 마음 다 알잖아.” 같은 말을 주고받을 때보다 더 좋다. 그냥 우연히 남매가 되었을 뿐이다. 가족이어도 다 알 수가 없다.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p.117)


우리는 그런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 겪으면서도 아쉽다. 흔치 않아서. 영영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서. 시간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좋은 곳에서만 계속 멈춰 있을 수는 없다. 현희진은 여기에 쭉 머물고 싶은지 자신이 이대로 더 깊이 떠내려가도 붙잡지 말라고 했다.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은 안 돼. 힘차게 그의 튜브를 끌고 해변을 향해 헤엄쳤다. 친구가 표류하거나 익사해서 죽게 놔두기엔 나는 수영을 너무 잘했다. 현희진은 순순히 뭍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함께 깊은 물에 머물던 순간은 이 모든 걸 모래 위에서 지켜보던 이훤의 카메라에 담겼다. 이 여름 한 장의 사진만 세상에 남아야 한다면 그 사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한 곡의 노래만 세상에 남아야 한다면 그 노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p.134)


하지만 어떻게 다시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듯이. 누가 보고 있어도 괜찮다는 듯이. 내가 나여서 다행이라는 듯이. 언제든 네가 될 수도 있다는 듯이. 노래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영혼을 들켜버리고 만다. 좋은 가수는 좋은 작가가 해낸 것과 비슷한 일을 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이 되는 것. 그렇게 투명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면 음악의 사랑을 받으며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p.142)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의 엔딩 크레딧.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