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윤 Jul 31. 2022

레슨 인 케미스트리,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22.07.02. 보니 가머스, 이인애

보니 가머스 (22.6.29). 레슨 인 케미스트리다산책방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엘리자베스 조트. 그녀는 독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치고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밝혀내지 못한 ‘진화 이전’ 분자의 비밀을 연구하는 화학자다. 문제는 이 시대가 1955년이라는 것. 여자들은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세상이었고, 임금 노동자라고 해도 사무 보조원나 행정직원이 대부분이던 시대였다. 연구소 동료들은 엘리자베스를 동등한 화학자가 아닌 연구 보조원이나 커피 심부름을 담당할 사람쯤으로 여기던 시대. 

그 시대에 예외적 남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가 바로 노벨과학상 후보 캘빈 에번스. 유능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섬이나 마찬가지였던 두 사람은 영구적인 화학 결합처럼 사랑에 빠져버린다.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캘빈이 사고로 죽고 비혼모가 되어버린 거다. 그렇다고 엉엉 울 시간도 없다.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쫓겨난 엘리자베스는 쇠지레로 직접 집 부엌을 부수고 개조해 실험실로 만들고 연구를 해나간다. 그리고 딸이  다섯 살이 되던 무렵 우연찮은 계기로 TV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의 MC로 발탁되고, 미국 부통령까지 그녀의 팬을 자처하는 미국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는데…….


“매일 저녁 6시, 우리는 요리나 화학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배워요.”

60년대에 가정주부의 식사 준비는 허드렛일로 취급받았지만, 엘리자베스는 요리야말로 ‘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이라고 말한다. 여성이 대부분인 「6시 저녁 식사」의 방청객들은 엘리자베스의 말을 엄청난 집중력으로 받아 적다가 야간학위과정에 등록하거나 의대 예비과정에 입학한다. 또한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지 말고 스포츠로서 조정을 하라는 그녀의 한마디에 갑자기 조정 클럽이 난생 처음 여성들로 북적이기도 한다. 어떤 변화도 놀랍지 않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화학적으로 언제나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_2권 236쪽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두고 「가디언」은 “보기 드문 야수 같은 책이다.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평했다. 소설은 첫 장이 끝나기도 전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강인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적인 결점도 가진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너무 똑똑해서 짜증나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딸 매드, 942개의 단어를 아는 초현실적인 강아지 ‘여섯시-삼십분’ 등등. 이 소설이 그리는 사랑과 가족애와 우정은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면서도 현실적으로 깊은 공감을 얻을만하다는데.. 더불어 예순다섯 살 노장 작가의 지혜를 증명하듯 ‘갈림길에서 선택하는 것들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인생은 끝없는 실수에 적응하는 과정’ 등 인생에 대한 불변하는 진리가 곳곳에서 묻어난다고...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 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단 말이지._1권 75p

꾸준히 슬픔을 먹으며 자라난 사람은 다른 이가 자신보다 더 큰 슬픔을 먹고 살았다는 걸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_1권 75p

집에 있다가 우연히 창밖을 내다본 캘빈은 집으로 걸어오는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뒤에서 정중하게 다섯 걸음 떨어져서 따라오는 개를 보았다. 그녀가 걷는 모습을 본 순간 캘빈의 몸에 이상한 전율이 휩쓸고 지나갔다.

“엘리자베스 조트, 너는 세상을 바꾸게 될 거야.” 캘빈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입 밖에 낸 순간 사실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엘리자베스는 아주 혁명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제아무리 반대파들이 끝없이 몰려와도 불멸의 존재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벌써 첫 번째 추종자를 달고 오지 않았나._1권 103p


이인애 (22.6.30). 안녕하세요자영업자입니다문학동네

“그래도 죽지는 않겠지. 그래, 어떻게든 살 수는 있겠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오늘을 버티는 사람들, 코로나 시대 한국 자영업자의 매일매일을 생생하게 그려낸 하이퍼리얼리즘 소설. 제9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이대한은 대기업 과장이다. 자부심도 있고 일도 곧잘 하지만 회의가 길어지거나 사고가 터질 때마다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간 신입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여기서 버티고 버텨 잘 풀리면 과장님 되는 거잖아요. 뼈를 갈면 팀장님? 전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어쨌든 저한테도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대한이 맡은 해외 바이어가 연락두절되며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안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수습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대한은 그때까지 막연히 생각만 해본 자영업을 시작해보기로, 그러니까 진짜 ‘사장님’이 되어보기로 결심한다. 고심해 고른 업종은 스터디 카페. ‘집중력이 높아지는 스터디 카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는가. 이제 남은 일은 단 하나, 동네 학생들을 끌어모아 떼돈을 버는 것뿐이었다. 돈 걱정, 대출 걱정 없이 남은 삶을 살고 싶었다. 사업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항이다. 직접 발품을 팔아 매물을 찾고 대출까지 끌어와 겨우 인테리어를 마치고 의자와 책상도 들여 드디어 가게 문을 여는데,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확진자가 폭증한다. 곧이어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지고 영업시간 제한도 생긴다. 대한은 코로나19가 얼른 종식되기만을 바라며 방역에 최대한 협조하지만 확진자는 줄지 않고 거리두기는 2주, 2주, 또 2주…… 끝을 모르고 연장되기만 한다. 왜 자영업자만 이렇게 피해를 봐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도 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도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은 무력감과 헤어날 수 없는 우울감에 빠진다. 


그러다 결국 1층 횟집 사장님의 손에 이끌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 의사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주변 자영업자들을 인터뷰해 글로 남겨보라고 조언한다. 대한은 같은 건물 횟집 사장님부터 근처 양장점, 백반집, 카페, 치킨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선배’ 자영업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누군가 가만가만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초짜’ 자영업자 대한은 그렇게 또 하루,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익숙한 동네에 늘 보던 정겨운 골목 어귀의 가게들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자신의 가게에 사활을 건 사람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보내는 치열한 하루하루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늘 지나다니던 길들이 오늘따라 새로웠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모여 만들어진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벅찼다. 마치 새로운 세상처럼 보였다. (p.117)."

코로나 시대 한국 자영업자의 피 땀 눈물이 담긴 생존 보고서


매거진의 이전글 노랜드, 눈/물, 아노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