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아니라고? 그러면 저쪽으로?

아닌 밤중에 입시 19

by 오늘나

‘코로나19’로 장식한 중간고사와 함께, 2학년의 4분의 3이 흘렀다. 시간은 자꾸만 가는데, 성적은 거기서 거기였고,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처음부터 수시만 생각하며 내신 관리를 잘하자고 했는데, 관리는커녕 비상등만 요란해졌다. 조카와 담임 선생님의 상담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고모, 선생님께서 수시는 힘들 것 같데요.”

입시에는 전문가일 담임 선생님 말씀이니 새겨들어야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미술 학원 원장님과도 상담이 있었다. 늘 그렇듯 혹시나 하며 기다렸다.

“고모, 원장님이 정시로 하래요. 수시는 힘들대요.”

미대 입시 전문가인 원장님 말씀이니 역시나 새겨들어야 했다. 왠지 모를 미련이 잔뜩 남았지만, 무슨 수로 수시를 고집할 수 있겠는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을 재간은 없었다.


3년간 차곡차곡 쌓이는 학교생활이 중요한 수시와 달리, 단 한 번의 수능점수로 결정되는 정시가 부담됐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도 국어, 영어, 그리고 사회 탐구 중 한 과목만 하면 되니, 까짓것 하면 될 것도 같았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항상 그걸 내가 증명해서 안타까울 뿐이지만 말이다.


사실 난 수시는 수시, 정시는 정시로만 알고 있었다. 수시와 정시 안에 세제 거품만큼이나 많은 세부 전형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생겨난다는 걸 미처 몰랐다. 학교 수업만 열심히 하면, 수능도 저절로 해결되는 줄 알았던 한 겹의 무지를 겨우 벗어내기 무섭게, 또 다른 무지가 줄지어 있었다. 이건 뭐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그 끝을 알 수가 없는 다양한 입시 전형에 두통이 도졌다. 많아도 너무 많은 입시 전형에, 방향감각도 잃었다.


학교 내신만 필요한 경우, 수능만 필요한 경우, 내신과 수능이 다 필요한 경우, 더구나 전형별로 필요한 과목도 일률적이지 않았다. 국어만, 영어만, 국어와 사회 탐구 중 한 과목만, 국어와 수학 등등 그 조합의 수가 우주의 별만큼 많았다. 노력과 실력 이상으로 전략과 전술이 필요했다. 왜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입시를 공부하고, 돈을 들여가며 입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지 알게 되는 씁쓸한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입시라는 경기장 위의 선수들에겐 규칙에 항의하거나 변경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고, 일단 시작된 경기는 끝내야 했다.


기어이 정시로 결정되자, 일단 학교 시험에서는 자유로워졌다. 그럼에도 학교생활에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학교가 오로지 입시의 수단이 아닌, 인생의 한순간을 오롯이 담아내는 소중한 순간이 되기를 바라는 조카와 나의 마음이 통한 것이다.


학교 시험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기 무섭게, 수능이 대차게 치고 들어왔다. 수시처럼 ‘최저 등급’을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 무조건 잘 봐야 한다는 사실에 긴장감이 더해졌다. 미대 입시에서는 정시와 수시 모두, 국어와 영어가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수학을 제일 사랑하고, 영어를 제일 싫어하는 조카에게 영어는 난제 중 난제였고, 제일 싫어하는 영어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건, 모순 중 모순이었다. 아이와 살펴본 영어 수능 기출과 모의고사는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였다. 수능 앞에선 나도 까막눈이었다. 교과서 영어와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왜 학교 공부만으로는 수능을 볼 수 없는지 저절로 단박에 알아 버렸다.


입시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세워줄 전문가 대신, 우리는 EBSi의 도움으로, 듣기 평가, 단어, 수능 기출문제 풀이 등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하나같이 대단한 선생님들의 강의가 보석함처럼 쌓여있었다. 누구 하나 빠질 수 없는 설명의 달인들이었다. 더구나 정답 고르는 기술과 요령도 무한 방출하고 있었다. 우리말 풀이를 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지문들을, 정해진 시간 안에 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정답 고르는 요령이 요긴했다. 예를 들어 여러 개의 문장을 섞어 놓고, 순서대로 배열하는 문제에서는, 정관사 ‘the’가 중요했다. ‘the’는 이미 앞에서 한 번 나온 것을 뜻하니, ‘the’가 있는 문장을 맨 첫 번째에 놓은 오지선다의 예시는 지운다. 그렇게 사지선다, 삼지선다로 만들며 정답에 다다를 확률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꺼림칙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수들은 경기 규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가 없다. 그저 무조건 냅다 뛰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경주마의 자세로 열심히 강의를 들을수록 조카에겐 요령보단 단어가 더 급하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요령도 기본이 있어야 가능하니 말이다. 교과서 수준에 머무른 조카의 어휘를 위해 비장의 무기를 찾던 중, ‘영포자’를 수능 1등급으로 만들어 준다는 조금은 화끈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글로 영어 발음까지 적어주는 과한 친절에 민망했지만, 체면 차릴 새가 없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고모, 단어장 제목이 참 자극적이네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자극적이라고? 어디가?”


우린 그렇게 1년 정도 수시를 향해 열심히 달리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바로 방향까지 바꿨다. 행여 숨소리에도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윗글은 2021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조카(남)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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