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입시 18
똥자루처럼 뒤집어쓴 ‘공부 못하는 기질’이라는 더러운 저주도 잘 이겨냈다. 이제 고난의 서사는 충분히 쓰고도 남았으니, 좋은 일만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그걸 증명해 줄 2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기다려졌다. 조카는 처음부터 수시전형을 생각했던 터라, 국어, 영어, 그리고 사회 탐구 중에 선택한 정치와 법, 한국 지리, 윤리와 사상만 잘 보면 됐다. 미대 수시전형에서는 국어와 영어 그리고 사회 탐구 중 본인이 선택한 과목의 내신 등급이 중요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1학년 내신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상태였고, 입시 미술조차 늦게 시작한 조카에게는, 2학년 내신이 더욱 중요했다. 이제껏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다가오는 중간고사는 다를 게 분명했다. 과정도 매끄러웠고, 뭔가 기분도 좋았다. 어떤 변수가 생겨도 이겨낼 만반의 준비를 마쳐 가고 있었다. 순풍에 돛까지 달고 순항 중이었다. 모든 과목에서 1등급도 충분할 것 같았다. 물론 미술 실기가 제일 중요하지만, 다가오는 중간고사만 잘 본다면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이 더 많아질 판이었다. 그동안의 좌절을 보상받고도 남을 것이 충분했다.
드디어 중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마지막 점검만 남겨둔 날, 아이가 평소와 달랐다. 항상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농담을 던지며 유쾌했는데, 힘도 없고 지쳐 보였다. 하긴, 지칠 만큼 열심히 하긴 했다. 밤늦게까지 미술 학원에 다니며, 시험공부까지 하는 게 쉽지는 않으니 말이다. 거사를 앞두고 약간의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는 조카의 뒷모습이 유독 안쓰러웠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설정도 아닌데 생뚱맞게 촐싹대는 진동음이 요란했다. 싸했다. 이른 아침의 전화는 왠지 모르게 싸해진다. 더구나 조카라니, 더욱 싸해졌다.
“고모, 저 코로나래요.”
전생이 있다면 아이는 분명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생에 다시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고난의 서사를 끊임없이 쓸 수 있단 말인가? 영웅서사! 아이의 이름을 ‘영웅’이라고 지어야 했을까? 어린 시절, 나라를 구하는 멋진 영웅을 꿈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험난한 과정이 두려워 일찌감치 포기하고, 영웅이 나오는 책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못다 한 내 꿈을 이루어 주기라도 하려는 듯, 조카가 쓸데없이 영웅의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다.
영웅서사의 완벽한 배경처럼, 2022년은 하필 ‘코로나19’가 일상이었다. 그동안 무사히 잘 피했나 싶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딱 걸려들고 말았다. 몹시도 중요한 순간에 자가격리가 필요한 ‘코로나19’에 발목을 잡히니, 모든 시공간과 판단 능력이 블랙홀에 강력하게 빨려 들어가 암흑천지가 됐다. 블랙홀 입구에서 끊임없이 빠져들며 고무줄처럼 늘어나듯 ‘코로나19’에 무한정 빠져들었다. 나름 호두처럼 탱글탱글 멋진 주름을 자랑하던 나의 뇌가, 엄청난 중력 앞에서 속수무책 도토리묵처럼 매끈하니 팽팽해졌다. 그때 곱게 펴진 뇌는 지금도 얇은 주름살 하나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당황했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당황했지만, 차마 조카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아이의 건강이 제일 중요했고, 가장 속상한 사람은 당연히 조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생각과 달리, 마음 한구석에 숨어있던 중간고사 걱정이 자꾸만 한숨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이번 시험은 망했다는 조카의 억장 무너지는 선포가 있었다.
그럼에도 찰나의 좋은 소식은 있었다. 격리기간이 생각보다 짧아졌고, 그래서 중간고사를 아예 못 보는 건 아니란다. 영어와 정치와 법을 제외한 다른 과목은 다행히 볼 수 있단다. 더구나 그 두 과목은 다음 기말고사 점수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공부할 시간이 더 많아진 셈이니, 다행이라고 여기자고 했다.
‘코로나19’라는 희대의 전염병은 학교에도 갖가지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요구했고, 발 빠르게 학교의 입장을 전해준 담임 선생님 덕에,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정해진 격리기간 후에 조카는 시험을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성적은 김칫국을 너무 마셨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었다. 우리도 경험하지 않았는가? 시험종료와 함께 머릿속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삭제되는 마법을! 그런데 시험도 보기 전에 이미 긴장이 풀리고 아프기까지 했으니, 그동안의 공부는, 아니 암기한 내용은 봄볕에 사라진 눈사람이었다.
책 읽기를 몹시도 좋아한 어린 세종이 눈병이 나서도 계속 책을 읽자, 아버지 태종이 책을 모두 치워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야기의 결말은 그야말로 한 편의 동화다. 어린 세종이 용케도 병풍 뒤에 숨겨져 있던 한 권의 책을 찾아 수백 번 읽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조카에게 어린 세종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프지만 그럼에도 공부하는 그럴싸한 장면을 마음속에 숨겨둔 것이었다. 하지만 조카는 아프면 쉬고, 잠이 오면 자고, 의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처럼, 평범한 아이였다. 매번 ‘역시나’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혹시나’의 유혹에 넘어가는 내 욕심에 화끈거렸다. ‘혹시나’는 언제나처럼 ‘역시나’로 끝났지만, 아이가 건강을 회복했고, 내 욕심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었다. 더구나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나는 구멍도 경험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윗글은 2021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조카(남)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