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저 오늘 이혼했어요.

아닌 밤중에 입시 17

by 오늘나


반칙이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공부 못하는 2개의 기질’에 발목 잡힌 찝찝함도 여전하고, 숨 막히게 끈적이는 삼복더위도 여전한데 개학이라니, 이건 명백한 반칙이었다. 하지만 소리 없는 항의는 소용없었고, 이의를 제기하는 또 다른 이도 없으니, 반칙은 규칙이 되었다.


새로운 학기와 꿈틀거리는 내 맘은 이미 가을인데, 문밖은 여전히 한여름인 것에 지쳐갔고, 좋아질 듯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우리의 입시도 조금은 버거웠다. 하지만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시 시작하기! 다만 조금의 여유는 필요했다. 급하다고 서두르면 더 크게 넘어질 것이 뻔하니, 온갖 기교 가득한 조언 대신 기다리기로 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조언은 잔소리만 될 뿐이니 말이다.


그러다 딱 한 번, 우리는 모두 장단점이 있고 계속 변화하는 존재라고 말해 줄 좋은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딱 한 번, 조선의 학자 김득신 이야기를 해줄 좋은 기회가 있었다. 과할 정도로 우둔했지만, ‘공부 못하는 기질’ 따위는 문제 될 것 없음을 오로지 노력과 끈기로 증명한 조선의 시인! 김득신은 자신의 우둔함을 탓하거나, 타인의 능력을 부러워하는 대신 역사서 『사기』 중 ‘백이전’ 부분을 1억 1만 3천 번이나 읽을 만큼 말 그대로 ‘무식’하게 노력했다. 당시의 1억이 지금의 10만에 해당하니, 11만 번 넘게 읽은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그 짧은 이름조차 평생 11만 번을 부르기 힘든데, 상상도 하기 어려운 노력이다.


물론 노력이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요한 열쇠인 것은 분명했기에, 조카에게 김득신이 이루어 낸 대기만성이라는 멋진 열매를 알려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조카는 ‘공부 못하는 기질’ 대신 그림에 집중하는 눈치였다. 아직 가을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아이 마음에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사정사정해야 보여주던 그림도 알아서 척척 보여줬다. 마치 팬 서비스처럼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부(나의 남편)와 나를 위한 대화방을 만들어서 그림을 보냈다. 그렇게 대화방은 미술관이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언제든지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호강을 누렸다. 대화방에서는 평가 대신 무한 찬사가 이어졌다. 물론 그럴 능력이 전혀 없기도 했지만, 평가는 우리 몫이 아니란 걸 잘 알았기에, 그저 아이의 빛나는 노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사랑의 눈으로 보니 모두가 걸작이었다.


아이는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며, 서서히 ‘공부 못하는 2개의 기질’이라는 저주에서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고개를 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푸념하지만, 입시 준비만 할까? 2022년 여름 끝자락, 나는 조카 덕에 이중으로 신속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의도와 다르게 광속으로 나이를 챙기던 어느 날, 조카가 드디어 지긋지긋한 ‘공부 못하는 기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고모, 저 오늘 이혼했어요.”

“이혼? 네가?”

워낙 장난기 많은 아이라 웬만한 농담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이건 또 뭘까?

“무슨 소리야? 결혼도 안 하고 이혼하는 게 가능해? 뭐야? 빨리 말해 봐.”

아이는 대답 대신 능글맞게 웃고만 있었고, 궁금해진 나는 더욱 재촉했다.

“고모는 왜 항상 개그를 다큐로 받으세요? 고모 반응이 궁금했는데, 역시나 재밌네요. 하하하. 오늘 ‘정치와 법’ 시간에 이혼이랑 상속에 대해서 배웠는데, 이혼하는 상상을 해본 거예요. 그래야 더 잘 이해되잖아요.”


가족법에 대해 배운 모양이었다. 아이는 원래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잘 챙기고, 작은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실천하곤 했었다. 간혹 수업 중 기억 남는 이야기가 있으면 내게도 풀어놓고 의견 나누기도 좋아했다. 그런 아이가 수업에 온전히 몰입해서 이혼하는 상상까지 했다는 건 ‘공부 못하는 기질’의 충격을 완전히 딛고 일어섰다는 뜻이었다. 휴! 그렇게 또 한 번 산을 넘었다.


그나저나 고등학생이 이혼이나 상속처럼 일상과 관련된 법을 배운다는 것이 부러웠다. 내가 교실에서 만났던 법은, 거대 담론 위주라 지루했던 기억만 가득한데 말이다. 결혼한 딸이 동일한 상속액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는 뉴스가 생생한데, 결혼과 상관없이 자녀들의 법정 상속분은 균등하다는 조카의 교과서를 보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무척이나 도발적이던 발상이, 이젠 모두가 누리는 권리가 된 것이다. 앞선 세대의 용기 있는 시작과 노력 덕이리라!


아직 어린 조카에게 달라진 상속 조항은 그저 암기해야 할 내용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전제되는 슬픔이었지만, 내게는 값진 유산을 받는 기쁨이었다. 받기만 하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니, 나도 뭔가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냐는 자문이었고, 다음 세대가 딛고 설 단단한 또 한 겹의 땅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했다. AI를 넘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AGI 시대가 코앞인데,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인류라는 이름표 한 자락 어딘가에 가냘픈 흔적이라도 남기고픈 욕심일지 모를, 글 쓰는 ‘이 행위’를 남겨줘도 될까? 의미가 있을까?






윗글은 2021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조카(남)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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