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생님'이 저는 공부를 못 할 수밖에 없대요.

아닌 밤중에 입시 16

by 오늘나

아니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린가? 도대체 어떤 선생님이 학생에게 그런 소릴 한단 말인가? 심기일전해서 여름방학을 잘 맞이하려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학습 기질 같은 거 알아보는 검사를 했거든요. 이번에 결과 나왔다고 전문가 선생님들이 오셔서 설명해 주셨는데, 제 결과 보시더니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 잘하기 힘들겠다고 하셨어요.”

“왜?”

“저는 공부 못하는 기질만 있대요.”


조카가 말한 검사의 내용은 이랬다. 학습과 관련된 기질은 모두 네 가지고, 두 가지는 공부를 잘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남은 두 개는 반대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중 두 가지가 섞여서 나타나는데, 조카는 하필 공부 못하는 기질만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기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단다.


“너는 얼굴은 모범생인데 공부하기는 진짜 어렵겠다. 집중도 안 되고 공부하기 힘들지? 원래 한 개만 있어도 힘든데, 너는 두 개나 있어서 정말 힘들겠어.”

‘그 선생님’은 별다른 조언 없이 그렇게 짧은 몇 마디의 말로 아이 마음에 커다란 못을 대차게 박아버리는 능력자였다. 조언도 필요 없을 정도로 심각했단 말인가? 심각하면 조언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조언했는데 아이가 기억하지 못했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언을 했다고 한들, 이미 늦은 상태였다.


마치 갖가지 ‘공부 못하기 대회’의 그랜드슬램을 거머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공부 못하는 기질이란 기질은 다 가진 ‘선천적 멍청이’라는 낙인이 조카의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화가 싹텄다. 공부 못하는 기질만 있다는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울며불며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건 전혀 문제 될 게 아니었다. 오히려 검사 덕분에 기질을 알게 됐으니 다행이고 감사했다. 대안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검사 결과를 전해준 전문가라는 ‘그 선생님’의 말이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 선생님’은 공부하기 힘들 거라는 말을 강조하며 안쓰러워만 했고, 덕분에 아이의 마음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부처나 예수 같은 자기 성찰의 대가였다면, 전문가에게 ‘태생적 멍청이’라는 식의 말을 들어도 흔연스럽게 흘려보내고 대안을 찾았겠지만, 그건 나도 못 할 일이다. 그 어려운걸 한창 예민한 고2 입시생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상담 후로 조카는 ‘나는 공부하기 힘든 사람, 못하는 사람’이라고 노래를 불러댔다. 지난 중간고사를 망친 피난처로 삼기에도 좋은 핑계였다. 모르는 누군가 의미 없이 뱉어낸 말에도 상처를 받는데, 전문가의 입에서 작정하고 나온 말은, 말해 뭐 하겠는가!

“그런 검사 결과에 좋고 나쁜 게 어딨어? 그냥 기질을 알려주는 거잖아. 거기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보자.”

마음을 가득 담았지만, 아이에게 닿기도 전에 허공에 흩어졌다.


‘그 선생님’이 걱정 대신 조언을 해주었다면, 참담해 보였던 그 결과조차도 조카에게는 소중한 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물은 성장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청소년 시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마음이 단단해지고, 자기 성찰을 통해 시야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부일 것이다. 암기 잘하고 정답 잘 찾는 것을 공부라고 하는 입시 덕에, 소위 일류 대학을 거친 사람들이 저지른 어리석음을 수도 없이 목격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 시험 보는 재주가 조금 부족하다고, 공부를 못할 거라고 못을 박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동안 나는 조카의 공부 범위가 조금 넓기를 바랐고, 다행히 잘 이해하고 따라와 줘 대견했다. 떠오르는 태양의 경이로움을 알아채고, 스치는 바람의 결을 느끼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것도 우리에겐 공부였다. 소소하지만 먼저 인사를 하고,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것조차도, 우리에겐 소중한 공부였다.


비록 학습적인 끈기와 집중력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교과서 이외의 공부에는 무척이나 뛰어난 최우수 장학생 아이에게, 대책 없이 똥자루만 던져놓은 ‘그 선생님’의 말이 아쉽고 또 아쉬웠다. 전문가답게 검사 결과를 담백하게 전해주고, 적절한 대안을 찾도록 길만 조금 알려주었더라면, 아이의 방학은 자괴감 대신 긍정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아이는 경청이라는 공부에도 무척이나 재능이 뛰어났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짧은 여름방학은 때아닌 ‘공부 못하는 2개의 기질’에 발목이 잡혀 스멀스멀 사라졌다. 겨우 2주 남짓인 여름방학은 그렇게 느닷없이 퍼부어 댄 소나기처럼 끈적끈적한 습기만 남기고 사라졌다.







윗글은 2021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조카(남)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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