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나의 조현병 삼촌,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참사 이후, 나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서 외로웠다. (중략) 왜 아무도 사과하지 않지? 우리는 이렇게 아픈데. 세상은, 이 시대는, 사과하지 않기 위해 ‘네가 놀다가 죽은 것’이라며 개인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도 진짜 어른을 찾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진짜 어른을 찾고 있다.” (김초롱,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아몬드, 2023, p.119)
“사과하지 못하는 세상은 사람을 너무 많이 다치게 만든다. 이번에도, 그랬다.” (p.281)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참여한 저자는 압사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공포 가운데 살아남았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이어간 1년여의 기록을 담았다. 참사의 본질은 세대에 대한 이해와 연결감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말하며.
주변에서는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말한다. 그러게 왜 그런 곳에 갔냐고, 놀러 갔다 죽은 걸 왜 그리 유난이냐고, 개인이 잘못한 걸 왜 국가 탓으로 돌리냐고.
상담 초기, 저자도 동일한 말을 내뱉는다. 그날 이태원을 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이어진 상담사의 대답에 심리치료는 시작된다.
“아니에요.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p.50~51)
본문에 언급되는 심리단체는 두 개다. 국가기관인 국가트라우마센터(현재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중이다), 사단법인 한국심리학회(역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심리지원을 맡고 있다). 특히나 한국심리학회와 담당 선생님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는 대목이 여럿 나온다. 좋은 심리 상담사를 만났고, 그들의 위로와 이해, 건네는 말로 일상으로의 회복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눈앞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걸 목격하고 그들을 구하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탓하는 모습에 상담사는 묻는다. 이기적인 게 나쁜 거냐고. 상담사의 대답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며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었다는 저자.
“이기적인 게 나쁘기만 한 것이라고 누가 그래요?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해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p.89)
자신의 심리치료 과정을 통해 이태원 참사를 바로 보는 시각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어떤 심리 이론서보다, 여느 심리전문가의 사례 중심 이야기보다도 생생하고 흡입력 있다. 강추.
비슷한 책 두 권 더. 『나의 조현병 삼촌』(이하늬, 아몬드, 2023). 20대에 조현병을 앓기 시작한 외삼촌. 가족이 겪었던 힘든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이유를 엄마에게 말한다.
“그건 삼촌이나 우리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원은커녕 낙인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족은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고, 노동하지 못하는 몸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우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을힘을 다해 숨겨온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어쩌면 그 시작일지 모른다.” (p.9)
예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 불렸던 조현병의 사전적 의미는 ‘현악기의 음률을 고른다’.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는 불협화음을 내는 데서 비롯된 병명이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해사건, 2019년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 및 살해사건은 모두 조현병 환자의 망상에서 비롯됐고, 이로 인해 조현병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모두 가해자의 병명‘만’ 부각한 결과다(실제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 범죄율에 비해 낮고, 조현병 환자라서 폭력적인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가진 기질과 성향에서 기인한다).
10여 년 기자생활로 다져진 논리적인 글과 삼촌과의 인터뷰, 전문서적의 인용으로 ‘조현병’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역시 추천.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쓴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김진주, 얼룩소, 2024). 1심을 거쳐 2심에서 15년 형을 확정 짓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풀어나간다. 해리성 기억상실 장애, PTSD. 이런 것보다 저자를 힘들게 한 건 범죄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려가 없다는 사실. 가해자 신변과 법적인 진행 절차에 대한 안내가 미흡하기에 피해자 스스로가 파악하고 알아내야 하는 부조리에 반기를 든다.
출소 후 보복이 무서워 흔히들 숨어버리는 여타 피해자들과 달리 가해자를 몰아붙이는 전투적인 글쓰기가 내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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