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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Aug 17. 2021

성장을 포기하면 안되는 이유

나이를 먹으며 보이는 것

21살, 그러니까 17년 전에 어딘가에서 인턴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다.

거기서 만났던 남자애가 있었다.

나보다 한살쯤 어렸었고 같은 팀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아는 사람을 통해 약간 낙하산처럼 내려 꽂힌 애였다.


17년이나 흘렀으니 조금 각색된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 애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멍청하다'였다.

프로젝트 매니저도 뭐 하나 맡길 때마다 피드백하면서 답답해 죽으려고 하는게 눈에 보였고,

오더를 아주 구체적으로 줘야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해왔다.

어이없었던 건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어설펐다는 건데, 그중 하나로 오타가 너무 많았다.

알고 보니 유학생이었다. 그것도 조기 유학.

그래서 영어로 하는 일을 시켰는데 "MS워드 없으면 롸이팅을 못한다"고 했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대학나와도 문맹에 가까운 맞춤법 가진 자가 많은 걸 알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라 뜨악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 그 애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깜짝 놀랄 만큼 좋은 회사에서, 깜짝 놀랄 만큼 높은 지위에 있었다.


... 애가??


프로필을 살펴 보고 더더욱 놀랐다.


여기 공동창업자였어?

여기 취업했었어?

여기서 이걸 받았어????


머리가 멍해졌다.

헛웃음도 나왔다.


'와... 대단하네' 생각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아이의 17년이 얼마나 치열했을지가 눈에 보여서.

그 시간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아무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사람도 있다.

이번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되었고 반가운 사람이었다.

함께 대학을 다니고 많은 것들을 같이 했다.

엄청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한 것도 알고 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소식이 뜸해졌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된 일인데. 다시 만나서 깜짝 놀랐다.

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다가 뭔가 다시 해보려고 하면서 나에게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내가 창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즘 괜찮은 회사가 어디인지도 물어볼 겸, 자기도 창업을 고려하고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상의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선배의 머리 속은 여전히 좋은 대학에 좋은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은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줄 것이며 자신은 그럴만한 몸값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업계에 아는 사람도 없고 트렌드도 모르고 스터디가 된 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애 키우면서 너네 정도 사이즈 회사를 창업하려면 일주일에 몇시간 정도 일해야 하냐고 질문했다.

애 셋을 어떻게 키우냐고 하면서 자긴 하나도 너무 힘들다고, 그래도 애가 좀 크니깐 살만해져서 피부 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내가 알던 10년 전 그 선배가 맞나 싶었다.

그 열정과 에너지와 스마트함과 반짝임과 프로페셔널함과 추진력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연휴 내내 자꾸 이 둘이 계속 떠올랐다.


난 사실 노력의 열매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최소한 내가 있는 영역에서 노력의 열매는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재능이나 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노력의 가치를 몰랐던 거 같다.

누군가의 10년 넘는 역사를 보고 있자니, 지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의 삶과 자만해버린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역시.

사람은 성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옛 성인들의 말은 틀린게 없다.


사람이 이렇게 꼰대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어 보니 이제서야 보인다.


당신의 현재가 자랑스럽다면 그것은 당신의 과거가 끈임없이 쌓여 왔기 때문임을,

당신의 현재가 부끄럽다면 그것은 아직 당신의 시간이 더 쌓여야 하기 때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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