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서 129일. 풀지 못한 갈등은 콤플렉스가 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받은 이 신탁*(神託)을 피하기 위해 부모님을 멀리 떠났다. 긴 여정 끝에 테베라는 곳에 이르러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맞히어 그곳의 왕이 된다. 그리고 남편을 여읜 미망인이었던 테베의 왕비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식을 낳아 키우며,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나라의 국왕으로 화평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것은 신탁을 피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완벽하게 신탁을 그대로 실현시킨 것이었다. 멀리 떠나왔다고 생각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의 친부모가 아니었고, 이국땅을 향하던 여정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 끝에 죽인 노인이 그의 진짜 생부이자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였다. 그리고 그가 결혼한 테베의 왕비는 자신을 낳아준 생모였다.
라이오스 왕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자랐다. 그런데 그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을 돌봐준 이의 아들, 크리시포스를 유괴하고 성추행한다. 이에 대해 헤라 여신이 크게 노여워하며 그에게 저주를 내린 것이다.
자신이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아들이 어머니를 취한다는 신탁을 라이오스 왕은 오이디푸스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들었다. 그 후 왕비가 아들을 낳자 그는 신하를 시켜 아기를 죽여 산에 버리게 했다. 그러나 아기는 이웃 나라의 왕에게 거두어져 청년으로 자랐고, 우연히 마주친 길 위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라이오스 왕은 아들 오이디푸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라이오스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까맣게 잊고 죄책감마저도 느끼지 않은 채 살았지만,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의식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헤라의 저주는 그 두려움을 흔들어 깨웠을 뿐,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버리라고 명한 것도, 지나가는 행인에게 무례하게 군 것도, 폭력을 휘두르며 달려든 것도 라이오스 자신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부모님과 전혀 닮지 않은 것에 늘 불안을 느꼈다. 어린 아기 때 발에 구멍이 뚫린 채 산속에 버려졌던 기억은 떠올릴 수 없지만, 그 아픔과 공포는 온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깊었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높았다. 라이오스 왕을 죽인 게 자신임을 모른 채, 그는 모든 백성 앞에서 라이오스 왕을 죽인 범인을 밝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부인으로 맞은 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만다.
해결되지 못한 갈등은 결국 대대손손 악영향을 끼치며, 다음 세대에 짐을 지우고, 심지어 후손에게 파멸의 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이든 국가든 현재의 갈등을 풀지 못하면, 그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저주의 근원이 되고 만다. (중략) 헤라의 저주가 두려운가? 그러면 지금 당장 현재 갖고 있는 갈등을 묵인하거나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진짜 그녀의 저주가 실현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 김상준,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족은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인 동시에 갈등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기도 하다. 갈등은 사람이 태어나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사람이 자라는 과정에 늘 함께 한다. 결국 사람의 성장과 성숙은 갈등을 얼마나 지혜롭게 다루느냐의 문제와 직결되는 일이다.
갈등이 없는 가족을 꿈꾼다면 그 또한 거의 강박에 가까운 콤플렉스를 양산할 것이다. 소소한 의견 충돌에서 마음 깊이 파인 감정의 골까지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이 가족이다. 그런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서로를 멀리 밀어내며 외면할 것인지 불편하더라도 조금씩 풀며 지낼 것인지는 언제나 열려 있는 선택지이다.
갈등을 직면할 때, 갈등이 제 모습을 드러내려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신탁(神託): 신(神)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