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위한 한 가지 목적

새벽독서 122일. 후대의 인류가 선대에게 물려받게 되는 것

by 단비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나 다큐를 나는 끝까지 보지 못한다.

역사의 거대한 풍랑 속에서 그들이 겪는 처참한 고통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숭고한 뜻을 가진 이일수록 더욱 잔혹한 시련을 견뎌야 하는 것에 울화가 치민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동료와 가족까지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면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아 버린다.


이런 나에게 한 지인이 정신이 번쩍 트이는 말을 했다.

"불행하고 불쌍한 삶으로만 보지 말아요. 자신을 다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었다는 건 어찌 보면 최고의 인생을 산 것일 수도 있어요. 그분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후회하거나 한탄하지 않을 거예요. 그 고통을 기억하고 두고두고 오랫동안 가슴 아파야 하는 건 바로 우리죠."


눈을 감고 귀를 닫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아파도 제대로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게 후손들의 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후로도 얼마나 많은 후손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선대의 고통을 아파해야 하는 걸까? 이성과 문명의 발달을 자랑하며 최첨단의 시대를 사는 지금도 야만의 시대보다 더한 살상을 자행하는 것은 왜일까?


지금껏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결같이 자신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다른 민족의 망상과 악의에 대해 놀라고 의심했다. (중략) 지금까지 천 개의 민족이 있었기 때문에 천 개의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천 개의 목에 씌울 멍에가 없으니, 그것은 단일한 목적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아직껏 인류는 공통된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지 못하다. - 니체, <인생론 에세이> 중에서

니체는 '인간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사물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했다.

인간은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창조자이며, 그 기준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더 먼저 간파하여 서로 충돌하지 않는 인류의 공통된 하나의 가치, '사랑'을 설파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어야 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인류는 2천 년 넘게 후회하고 아파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하며 각자가 옳다고 주장한다.


후대의 인류가 선대에게 물려받은 것이 후회와 아픔이 아닐 수 있기를.....

니체의 말처럼, 민족마다 천 가지 목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인류를 위한 한 가지 목적만을 추구하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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