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힘을 위로하는 숨 가쁜 달리기

위로수집 일지 3

by 단비

힘든 일을 겪는 동안 신체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답답함이었다. 심리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아무리 마음을 가라앉혀도 숨이 막히기 시작하면 갈비뼈가 허파 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가슴을 한껏 앞으로 내밀어 아무리 깊은 숨을 몰아쉬어도 폐의 반의 반도 숨이 들어가지를 않았고, 얇은 옷 한 겹도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압력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계속 심호흡을 하다 보면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한참 동안 주저앉게 되거나, 더 심하면 시야가 흐려지면서 몇 분 동안 정신을 잃기도 했다. 이렇게 몇 번을 실신하고 나서는 숨 막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들 앞에서 쓰러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욱 가슴을 옥죄어 왔다. 나중에는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왼쪽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국 흉부내과 검사를 받았고 심장과 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예상한 그대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증상이란 답을 들었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매일 먹어도 되지만 본인이 매일 먹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면 불편감을 느낄 때만 먹어도 된다고 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약물 의존성이 생기면 약을 먹지 않았을 때 그 불편감이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 때문이었다. 사실 의사 선생님은 약물 의존성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은 약을 먹어서라도 안정감을 찾는 게 더 우선이라고 했지만, 나는 되도록 약이 아닌 방법으로 숨 막힘이 나아질 수 있게 해보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숨이 찰 때까지 매일 달려보라고 권하는 이들이 있었다. 자신들은 그게 도움이 되었다고. 달리는 동안 잡념도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는 계속 달릴 수 있는 힘이 솟아나는 느낌도 든다는 것이다. 너무 진지하게 권해서 ‘그래 보마.’라고는 했지만, 걸을 힘도 없는데 무슨 달리기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가끔 조깅 기록을 톡에 올리는 아들에게 물어봤다. ‘너는 달릴 때 숨이 안 차냐?’고. 아들은 아주 성의 없이 ‘매일 달리다 보면 숨이 트일 때가 와요.’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내 귀에 번쩍 박힌 소리는 ‘숨이 트일 때가 온다.’는 말이었다. 그 말만 들어도 숨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고, 숨이 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트인다.’는 말은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나는 근래 너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10분씩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탁 트인다거나 더 달릴 힘이 솟아나는 느낌은 아직까지 없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서 숨이 막히는 느낌보다는 달리면서 숨이 찬 느낌이 좀 더 견딜만했다. 그리고 이렇게 숨이 턱까지 차오르다 보면 아들 말마따나 어느 날인가 숨이 트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숨이 탁 트이지는 않았지만 숨 가쁨을 견디며 달리는 시간이 10분에서 20분, 20분에서 30분으로 점점 늘어났다. 숨이 너무 가쁘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니 힘든 일들도 잠시 잊혔다. 너무 숨찰 때 잠시 걸으면 목까지 차올랐던 숨이 천천히 가슴으로 내려가는 느낌도 좋았다. 그렇게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나면 잠도 더 잘 왔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자 아놀드 J 맨델(Arnold J Mandell)이 1979년 처음 사용한 단어로, 맨델은 러너스 하이에 대해 ‘30분가량 계속 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팔다리가 가벼워지면서 리듬감이 생긴다. 그리고 곧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고 했다. 이런 러너스 하이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그중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기쁨 호르몬이라고 하는 ‘엔돌핀’의 분비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달리기만이 아니라 강도 높은 다른 운동들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엔돌핀은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심할 때 그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 분비되는 것이다. 즉, 고통 때문에 분비된 엔돌핀은 쾌감을 느끼게 해서 그 고통을 진정시킨다. 그런데 이런 엔돌핀이 주는 쾌감에 중독이 되면 몸의 피로가 많이 쌓였거나,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가서 안 좋은 상태가 되어도 강도 높은 운동을 멈추지 못하는 역효과도 생긴다고 한다. 결국 엔돌핀이라는 위로가 잠시 고통을 잊게 해 줄 수는 있어도 고통스러운 일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며, 엔돌핀이 주는 위로에 중독되면 오히려 또 다른 고통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뭐든지 과하면 원래 좋았던 취지에서 벗어나 부작용이나 역효과를 동반한다는 것은 놀라울 게 없었다. 오히려 몸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엔돌핀이라는 진통제로 몸을 위로하게끔 되어 있다는 신체의 자기 위로 시스템이 놀라웠다. 중독은 지나치게 탐닉했을 때의 문제이고, 몸이 몸에게 엔돌핀이라는 위로를 건네어 잠시 고통을 잊고 숨을 고르며 힘을 내보라고 응원을 한다는 것, 신체도 고통에 대해 위로받는 방식을 설계해 놓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숨 가쁘게 달리는 것은 숨 막힘을 위로하는 나의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숨이 찰 때까지 달리다 보면 숨이 트일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또 하나의 위로였다. 숨이 트이면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 들 거라는 상상이 나를 달랬다. 그렇게 살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좀 더 버틸 수 있을 테고, 좀 더 버티다 보면 이 힘든 시간도 막을 내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겠지. 다음 장이 꽃길일지 돌길일지 황톳길일지는 열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니, 일단은 다음 장의 커튼에 가닿아야 한다. 기우제가 성공하려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야 하듯이, '다 지나가더라.'는 말을 하려면 다 지나갈 때까지 버텨야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숨 막힘을 숨 가쁜 달리기로 위로한다.

마라톤 완주 메달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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