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하는가?

하버드 경영대 교수에게 듣는 이야기

by 김형준

국제기구의 구조조정 때문인지 조직을 떠나거나, 새로운 자리를 찾거나, 아니면 새로운 커리어를 설계하는 소식들이 링크드인에 유난히 많이 뜨고 있다. 나도 그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질문을 해보았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일하는가. 어떤 일이 정말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 24시간의 3분의 1 정도를 거기에 쏟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최소한 왜 하는지는 내 나름의 답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박사 때 하버드 경영대 수업 시간에 읽었던 경영학 거장인 크리스텐슨 교수의 책을 책장에서 다시 꺼내 들었다.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책.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는 책이 있고, 읽을수록 인사이트가 맑은 곰탕처럼 우러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였다.


IMG_6648.JPG?type=w773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바로 이 책


다시 읽으며 마음에 걸린 것들을 정리해 본다.


1. 우리는 잘못된 것을 쫓고 있다. (You're probably optimizing for the wrong thing)


심리학자 허츠버그는 1950년대 말, 수백 명의 직장인을 인터뷰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따르면 직업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만은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는 점. 즉, 불만을 줄여주는 요인들과, 행복감을 높이는 요인들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연봉, 직함, 명성, 안정적인 계약 같은 것들은 '위생 요인(hygiene factors)'이라 부르며 불만을 줄여주는 요인이라 불렀다. 즉, 없으면 직업적인 불만족은 높지만, 이게 보장된다고 해서 결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점. 그런 것들은 행복 레벨의 바닥은 올려줄지 모르나 천장을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대부분이 커리어에서 이런 보이는 것들을 쫓아 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 연봉이 높은 곳, 그럴듯한 직함. 이런 것들이 개인의 직업적 만족감, 그리고 행복을 보장할 거라고 믿는 사회의 모습들. 저자는 이런 사회적 현상을 신기루라고 불렀다. 쫓아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그런 어떤 것.



2. 진짜 동기는 다른 곳에 있다. (Motivation comes from different fuel)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진짜로 움직이는가.


허츠버그는 이걸 '동기 요인(motivation factor)'이라 불렀다. 의미 있는 일, 배움, 성장, 점점 커지는 책임감.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어딘가에서 도움이 된다는 생각. 이런 것들은 결핍을 채워주는 최소한의 위생요인들을 넘어서 직업적 동기부여와 행복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사람들이 이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현실에서는 연봉, 타이틀, 명성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보이는 것들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 (인정, 칭찬 등)이 오지만, 동기 요인들은 천천히, 조용히 내 속에 쌓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more instant return and gratification의 함정에 빠져 장기적인 행복 요소들을 잊고 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이 일이 얼마를 주고, 남들이 얼마나 알아주냐 보다는, 이 일이 얼마나 나를 성장시킬 것이며, 내 가치에 비추어볼 때 의미가 있는 일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게 말은 쉽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참 어렵다는 점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결국에는 밸런스의 문제일 터.



3. 좋은 관리자는 이걸 안다. (The best managers understand this and use it)


저자는 리더십과 매니지먼트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팀을 운영하는 리더는 잘만 하면 엄청 고귀한 직업 중 하나라고 말한다.


좋은 리더는 하루에 약 8시간, 팀원 한 명 한 명이 일을 통해 어떤 성장의 감정과 성취를 경험하는지 직접 설계가 가능한 위치라는 것이다. 어떤 일을 어떻게 맡길 것인지, 또한 언제 어떻게 피드백을 주는지, 어떠한 성장의 기회를 어떻게 열어주는지. 그 작은 의사결정들이 모여 누군가의 의미 있는 하루, 행복한 직장, 삶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는 어쩌면 팀원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행복을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잘 못하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리더가 가진 무게기도 하지만.



4. 커리어에는 계획 한 스푼과 유연함 한 스푼이 필요하다. (Balance deliberate and emergent strategy in career)


마지막으로 저자는 경영학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을 활용해서 커리어 전략을 설명했다. 의도적 전략 (deliberate strategy)과 우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의도적 전략은 J가 좋아하는 커리어 플랜. 목표를 세우고, 5년 후 나의 모습, 그 과정에서의 스탭들을 촘촘히 세우는 전략. 하지만 커리어와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예상치 못한 기회, 뜻밖의 만남,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들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데려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커리어와 삶에서 우발적 전략 (emergent strategy)도 운용하면서 애자일(agile)하게 변화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저자인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버드에서 MBA를 할 때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흘러간 컨설팅 업계, 그리고 그 후 창업과 실직. 그러다 37살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커리어 패스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우발적인 변화들이 오히려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저자는 우리에게 계획을 버리라는 건 아니다. J로 살아가지만, P의 자세도 가지라는 것이다. 계획은 가설일 뿐, 실행하고, 배우며, 삶이 보내는 신호를 읽고, 조정하라는 말. 나침반으로 방향은 가져가되 열려있는 기회들과 변화 또한 우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


커리어 전환점에 (또다시) 서 있는 요즘. 우발적인 전략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조금은 위안과 많은 인사이트를 준 책이었다.


내 가치를 중심에 두고, 내가 쫓을 것과 쫓지 않을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성장과 의미를 찾아가는 커리어. 그리고 다른 이의 성장도 돕는 리더의 역할도 잊지 말고. 무엇보다 삶의 다가오는 기회들과 변화에 열려있는 삶.


이렇게 살고 싶은데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집어 든 이 책에서 조용한 위로를 얻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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