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삶은 낯설어질수록 더 분명해지는가
이방인의 마음 (Heart of A Stranger)이란 책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간 서점에서 기다리며 책을 구경하는데 메인 섹션에 아시아 여성의 얼굴이 크게 나온 책을 발견해서 호기심에 들어보았다. 게다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라니. 뭔가 믿고 볼만하다는 생각과 누구인가 궁금한 마음에 집어 들어 보기 시작한 책.
미국 유대인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젤라 북달이라는 유대교 랍비의 자서전이었다. 아시아계, 여성, 혼혈이라는 배경으로 미국 유대교의 중심인 뉴욕의 센트럴 회당의 수석 랍비로 재직 중인 저자. 그녀의 인생 여정이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이방인의 마음이란 제목도 내 마음을 살짝 몽글하게 만들었는데 책의 서문이 내 마음을 쿵 건드렸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1-2)
"Go forth from your land, from your birthplace, from your father's house, to the land I will show you... and you shall be a blessing (Genesis 12:1-2)"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인용하며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야 했던 성경 속의 인물 아브라함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방인의 삶을 살기 시작한 유대인의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고,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유대교의 중심인 뉴욕에서 가장 큰 회당을 이끄는 유대인 랍비로 살아왔던 그녀의 삶의 모습이기도 했다. 경계인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온 본인의 이야기를 꾹꾹 담아낸 책.
서문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My ancestors' spiritual imperative and my parents' example taught me that the goal of life is not to be affirmed, settled, and comfortable. Rather it's to find a purpose and pursue it. Almost always, this requires leaving what is most familiar and secure to wander into what is risky and uncertain."
"삶의 목적은 안정과 편안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본인만의 목적을 찾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 여정은 필연적으로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불확실성과 위험을 안고 나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알아봤는데, 워낙 신작이기도 하고, 인기가 많아서 수십 명이 대기를 걸어놓아서, 아마존에서 바로 구매를 해서 읽기 시작했다. 밖에 날씨는 춥고, 눈이 오며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며, 300쪽이 넘는 책을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 심지어 형광펜으로 줄을 그며 공감과 감동을 하며 술술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3가지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 아직 한국어 번역책은 안 나온 것 같지만, 원서로 읽어도 쉽게 읽히는 스토리텔링이 이 책의 포인트.
1. 유대인에 대한 마음
이 책은 내가 ‘유대인’이라는 단어에 가지고 있던 거리감을 처음으로 좁혀준 책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 항상 유대인이 많았고 (내 박사 지도교수님도 유대인), 개신교인으로 유대교와 구약을 공유하기에 공통의 스토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문화/믿음에 관해 알기에는 항상 벽이 느껴졌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종교, 문화적인 차이점도 있었겠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관한 복잡한 감정도 역할을 했을게다. 그래서 유대교, 유대인, 유다이즘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유대인 아버지와 불교인 어머니 사이에서 유대인으로 자라며 종교 문화적으로 바운더리를 끊임없이 마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그들의 사바스(안식일)는 무엇인지, 왜 유대인들은 왜 회당 근처 모여 사는지, 그들에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어떤 의미인지, 유대교 안의 전통파와 개혁파의 다른 점들은 무엇인지, 유대인들은 왜 역사와 종교와 교육에 집중하는지. 저자의 삶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눈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 챕터별로 유대교의 가르침/탈무드를 인용하여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기독교와 닮은 점과 차이점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유대인의 이야기를 평생 경계인으로 살아왔던 저자가 흡사 한 손으론 유대인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잡고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유대인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 우리가 같은지, 또 얼마나 다른 지도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다.
2. 정체성에 대한 마음
이 책은 결국 ‘혼혈 랍비’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계에 선 모든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인 어머니가 미국 유대인 아빠를 만나 시애틀 외곽으로 이민온 이야기부터, 엄마 쪽 친척들이 하나둘씩 미국으로 이주해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재미교포로 살아가는 모습, 그 속에서 조금 다른 유대인으로 사는 그녀의 모습. 유대인이지만 완전 유대인의 방식대로 살지 못했던 본인의 삶과, 자기보다 훨씬 더 유대인처럼 살아온 유대인들과의 조우들의 모습들도 흥미롭게 그려졌다. 그 와중에 개신교 목사인 한국인 이모에 관한 챕터 (Minister Emo)는 전형적인 재미교포들의 기독교 라이프도 보여줘서 많이 공감했다.
저자는 "완전" 유대인도 아니고, "완전" 한국인도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이끄는 랍비라는 사명을 쫒았고, 미국 유대교 중심인 뉴욕 센트럴 회당의 랍비가 되며 그들의 중요한 종교지도자가 된다.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로 백악관에서 유대교 대표로 초대되기도 하고, 유대교 내에서도 경계를 허무는 전도사 역할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모든 정체성을 지우기보다는 본인 안에 담으려 노력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신기하게도 유대인과 한국인은 닮은 부분이 꽤나 많았다. 가족과 교육을 중요시하고, 핍박의 역사를 공유한다는 점 (그로 인해 생긴 생존 본능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근면함), 그리고 군대의 의무 복무까지. 그 닮은 점을 발견하기까지 저자는 개인적으로 많은 정체성 혼란을 겪지만, 50대 중반에 이른 지금 본인의 차별점이 본인을 규정하고, 빛나게 한다는 걸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3. 이방인의 마음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이방인이라는 위치가 공감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항상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고 고백한다. 전통적으로 "진짜" 유대인이 되려면 모계를 통해야만 될 수 있다고 한다. 북달 랍비가 속한 개혁파 유대교는 저자가 12살이 되던 1983년에야 부계를 통해서도 유대인이 될 수 있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대인이라 생각하고 유대교를 종교 삼아 살아왔던 그녀지만, 그녀를 처음 만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녀를 유대인으로 보지 않았다(혹은 못했다)고 했다. 생김새도 한국인과 더 가까웠고 (실제로 그렇다),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었던 그녀가 유대인을 이끄는 종교적 지도자인 랍비가 된다는 것은 노력을 넘어서 정체성에 관한 편견들과 싸우며 얻어낸 자신의 자리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많은 거절과 경계 세움에 내몰아졌었고, 여전히 많은 이가 아시아계라고, 여성이라고, 유대인이 아니라고 하던 주변의 시선들이 오히려 그녀를 이방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주민으로 온 미국에서 자기 이후에 오는 또 다른 이주민들을 돕는 단체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어머니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또한, 그녀가 인종주의에 갇힌 유대인 성도들에게 전하는 도전적인 메시지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모두 이방인으로 시작한 민족이고, 인생인데, 지금은 우리 안의 버블에 갇혀 새로오는 이방인들에게 손 내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메시지는 기독교인 나에게도 마음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이 설교를 유튜브에서 실제로 찾아보며 다시 듣기도 했다.
나가며.
이 책이 유달리 나에게 마음이 와닿았던 가장 큰 이유는 서문에 언급된 창세기 12장의 말씀 때문이었다. 유엔에서 일한 지 10년이 되어가던 그해. 내가 익숙한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는 당시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이 설교했던 창세기 12장 말씀 때문이었다. 커리어의 상승곡선을 지날 때 과감히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박사를 올 때 그런 믿음이 있었다. 나에게 보여주실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떠나고 싶지 않지만) 아브라함의 모습에 내 모습을 투영했었다.
그렇게 이방인이 되기로 자청해서 온 미국이었고, 이땅에 온지 4년이 되어간다. 힘들었고, 부족했고, 절실했지만, 그만큼 인생을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플로우에 따라가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떠난 아브라함에게 꽃길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서 엄청 고생하고, 그 고생의 여정을 그 후세들도 계속하며 이방인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나의 삶도 이방인의 삶으로, 여기도 아닌, 저기도 아닌, 그런 떠돌이의 삶일지라도, 축복받은 삶으로 여기고, 주님의 뜻을 믿으며 걸어가는 그런 믿음의 여정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비록 나와 종교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유대인 랍비를 통해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는 진리, 삶의 자세들을, 그 겸손과 포용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안젤라 북달 랍비님. 나중에 어디선가 꼭 만나면 (왠지 만날 것 같은 상상이) 이방인의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는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