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 포럼, 제가 다녀왔습니다.

리더의 시선에서 본 다보스 포럼

by 김형준

전 세계 리더들이 매년 모여 전 세계 이슈를 논의하고 새로운 아젠다를 만든다는 세계경제포럼의 다보스 포럼.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기에 기사로만 보는 그 다보스 포럼에 제가 다녀왔습니다!



잉? 뭔 소리지? 다보스 포럼 다음 주 아냐?

네 맞습니다 사실 다음 주에 시작합니다. 근데 전 다보스포럼을 다녀온 것 같습니다.

사실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눈을 뜨면 다보스 포럼, 꿈에서도 다보스 포럼이었습니다.


지난 연말, 상사가 이번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는 CEO의 브리핑 노트(말씀자료)를 리드해 보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빡센 일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지 알았지만, 저에게 기회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누가 믿고 일을 줄 때는 또 깔끔하게 해줘야 조직 내 visibility도 높아져서 해보겠다고 덥석 붙잡았습니다.


저희 기구는 다보스포럼에서 나온 아이디어/논의로 생기기도 해서 매년 다보스 포럼에 대표가 참석하고, 자체 행사도 진행합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는데도 엄청 많은 돈 (기업들의 멤버십 비용 등)이 들기 때문에 사실 아무나 갈 수 없는 넘사벽 행사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자들을 통해서만 듣고 봐왔지 저는 다보스가 스위스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주 대표의 시선으로 누구를 만나고, 그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고민하고, 동선을 고려하고, 수시로 바뀌는 고위급 면담 스케줄을 조정하면서 가보지도 않은 다보스 여기저기를 뛰어다닌 것 같습니다. 앞으로 1주일간 대표는 약 40개 가까운 미팅과 회의에 참석하고, 그 모든 일정의 디테일을 담은 130쪽의 브리핑 노트(라고 쓰고 책이라 부른다)를 대표사무실에 보내니 과장 조금 보태고 박사 논문 제출한 느낌입니다.


이 과정에 제가 느꼈던 리사세(리더들이 사는 세상)에 관해 조금 적어봅니다.


1) 누구를 만나느냐가 당신을, 당신의 조직을 보여준다.


흔히 말해 일진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에서 누가 누구를 만나는 것은 아주 섬세한 계획과 치밀한 접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누가 오는지 리스트를 받고,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 숏 리스팅을 해서, 대표가 조직을 대표해서 그 바쁜 기간 동안 만나면 좋을지 추천하고 선택 과정을 거칩니다. 모두가 유명한 공인인데, 우선순위에 맞추어 대표의 승인이 떨어지면 면담 요청을 하러 아웃리치가 시작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상대가 바쁘다고 이번은 힘들 것 같다고 하면, 말은 하지 않지만, 아마 우리가 그들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우선순위에 따라 가차 없이 거절되는 경우도 보며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우리 조직이 가장 전략적으로 필요한 면담을 잡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게 됩니다. 최종 리스트를 보면 빌 게이츠를 시작으로, 정부, 정치인, 미디어, 기업들까지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번에는 최초로 한국 모기업 대표와의 면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파트너십 건이라...국뽕 한 그릇만 마시고 가겠습니다.


2) 우리의 카드는 무엇인가?


면담을 잡는 일이 가장 쉬운 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면담이 잡히면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합니다. 일단 우리가 원하는 것 (what we want)을 제대로 알고, 어떻게 그들이 원하는 것(what they want)도 빨리 파악해서 30분 내에 구체적인 다음 스텝을 도출해 내는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파트너십을 하다 보면 조직이 무엇을 하는지 대충 넓게 다 알게 됩니다. 요즘에는 AI를 통해 리서치를 하면서 작성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작성하고 담당하는 직원이 있으면 태그 해서 리뷰를 부탁합니다. 파트너십을 하는 사람의 강점은 이 정보의 소비자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테크기업의 PM이라고 할까나. 기술과 마켓의 사이에 서서 기술적인 메시지를 잃지는 않되, 통하는 말로 풀어내는 일이 제 일입니다. 그렇게 준비한 카드는 면담 당 1-2장으로 정리가 됩니다. 이렇게 카드들을 130장 정도로 정리하니 우리 조직의 웬만한 카드들이 뭔지 큰 그림이 맞추어지더라고요. 앞으로 5일간 대표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어떤 순서대로, 만약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답할지를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간 기분이랄까요.


3) 어떤 말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말씀자료라고 하면 내가 해야 할 말만 적는 것 같고, 사실 대부분 그렇지만. 고위급을 만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 혹은 조직이 해야 하는 말이 70%, 그들에게 물어보고 의견을 구해야 하는 것이 30%이어야 합니다. 중간중간 당신의 조직의 올해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저희 조직과의 파트너십이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중간중간 쨉을 날리며 상대방의 말문을 트는 것도 리더의 기술인 셈입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주저리 이야기한 것은 기억 잘 못하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기억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더의 레벨에서는 결국 대화의 분위기고 방향입니다. 디테일은 실무진들이 채우는 법. 그래서 말씀자료에는 꼭 좋은 질문들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4) 리더의 자질, 체력


대표의 일정은 6시에 시작되는 팀 브리핑으로 시작됩니다. 우리 대표만 그렇지 않을 겁니다. 첫 번째 세션이 대부분 7시 반에 시작되고, 조식 회의/미팅도 많습니다. 역시 리더의 삶은 빡셉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 필란 트로피 협회는 지역의 소셜임팩트 투자자와 관련 전문가들을 모으고 싱가포르 대통령과 함께 진행하는 조식 세션을 가고, 어느 날은 빌 게이츠가 보건과 관련 인사들을 모아 타운홀같이 진행하는 미팅도 아침 7시 반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하루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스케줄이 가득 차있습니다. 하루 종일 회의가 있지만 사람들은 회의장에만 있지 않습니다. 양자 면담을 찾아 돌아다니고 중간중간 미디어를 만나서 조직의 전략과 미래를 예측하는 인터뷰를 가집니다. 다보스 포럼 장소는 눈이 많이 와서 그 길을 걸어 다니며 회의장을 계속 옮겨 다녀야 된다고 합니다. 대통령도, 총리도, 사장도 웬만하면 회의장 건물들을 그 추운 곳을 옮겨 다니며 일정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소를 옮길 때는 넉넉히 20-30분 정도를 두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녁이 되면 만찬들이 그들을 기다립니다. 각 국가들이 국가 이름을 건 나이트(인도네시아 나이트, 파키스탄 나이트 - 그 춤추는 나이트 아닌 거 알죠?)를 개최하고, 노벨상 수상자들을 모시고 혜안을 배우고, 심지어 명상 관련 기업이 명상을 진행하는 저녁 만찬도 있습니다. 5일밖에 안 되는 짧은 일정에 우리 대표는 저녁은 기본 2군데를 돌아다니며 조직을 열심히 알리고 네트워킹을 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목이 쉬도록 이야기만 하는 일주일이 될 거라 예상합니다. 리더에겐 체력도 능력인 이유입니다.


Davos_Congress_Centre.jpg 다보스 포럼 장소가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5) comfort zone을 벗어나 unknown zone으로


다보스 포럼에 가면 평소에 편하던 주제를 넘어서 더 큰 이슈들을 이야기하고,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네트워킹 이벤트에서는 아무리 국제기구 대표라도 내가 원하는 사람만 만날 수 없습니다. 토니 블레어랑 이야기하다가, 저기에 빌 게이츠가 보이면 가서 이야기해야 하고, 그러다가 앙골라 대통령이 보이면 가서 또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아프리카 대통령/총리들이 주최하는 비공개 회담에서는 형식도 파격적이라 어떤 질문이 나올지, 얼마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어떤 순서로 이야기해야 할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표는 그렇게 대부분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완전한 정보를 들고 혼자 들어가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정부면 정부, 기업이면 기업, 미디어면 미디어. 단지 외향과 내향을 떠나서 매일이 comfort zone을 벗어나 panic zone을 넘나드는 곳에 가게 됩니다. 모두가 리더를 보고 있고, 그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은 오로지 리더의 몫입니다. 말씀자료들을 보니 이걸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실전에 투입되면 무조건 스몰토크부터, 완전 소개팅 분위기라서, 결국엔 그들의 기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리더가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GwICHtyXYAAh9iE.jpg 때마침 우리 대표의 사진에 제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딱! (출처: 세계경제포럼)


6) 대표의 숟가락을 믿는다.


사실 다보스 포럼에 오는 리더들은 남이 차려논 밥상에 숟가락만 얻는 겁니다. 조직의 구성원이 준비해 놓은 아름다운 리더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서 우아하게 먹는 셈이죠. 그런데 사실 게임의 결과는 그 우아함이 좌우합니다. 얼마나 구성원이 준비하고 지원을 한들, 리더의 말과 소셜 스킬과, 매력과, 네트워크로 현장에서 승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더 친절하고, 매력 있고, 말을 잘하고, 스마트한 리더가 그 숟가락으로 빛을 발하는 거죠. 조직을 대표해서 그렇게 중요하고 비싼 자리에 갈 때는 그에 걸맞은 기대가 수반됩니다. 리더의 진가는 조직을 대표해서 협상을 하고 설득을 하고 청중에게 영감을 줘서 대표하는 조직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보할 때 빛을 발합니다. 저는 그 숟가락을 최대한 믿고 주방에서 양파를 자르고, 블렌더에 갈아서 크림소스를 넣어 리조또를 만드는, 중간급 셰프로 이번 잔치에 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만든 음식을 가지고 다보스에 다음 주에 가서 멋지게 먹어줄 대표를 응원합니다.



지난 몇 주 대표가 할 말을 생각해서 정리하고 쓰면서, 간적접으로나마 리더의 어깨에 올라간 기분이었습니다. 비록 다보스에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아직 갈 레벨이 못된다는), 지난 몇 주 조직의 다양한 정보를 분석하고 풀어내고 쓰는 경험은 참으로 유익했습니다. 매년 3조 정도의 예산을 가진 조직의 수장인 우리 대표는 다보스에 가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생각들을 준비해 갈지 궁금했었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그 준비의 과정에서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껴보았습니다.


얼마나 빠졌었는지 어제는 잠을 자다가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꾸었고, 악! 비명을 지르며 새벽에 깼습니다. 와이프도 깜짝 놀라서 깬 밤. 나를 쫓던 그 정체는 아무래도 데드라인과 압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브리핑 자료를 보고하고 제 손을 떠나니 이리 다보스 포럼이 기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나도 리더의 자리에서 다보스 포럼에 가서 숟가락을 얹을 날이 있을지. 그날을 위해서라도 항상 깊은 생각과 긍정적인 태도 전략적인 딜리버리가 참 중요하단 생각을 하는 밤입니다.


바통을 대표에게 넘겨드렸으니 저는 주말에 편히 쉬겠습니다. 끝!




럼, 제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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