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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랩과 영수증 박스

한국 사회가 치르고 있는 '불신의 비용"

by 김형준

주말 애들을 데리고 하버드 스퀘어에 오랜만에 나갔다.


중간에 시간이 조금 비어서 애들 데리고 가기 가장 편한 서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이들 책 코너로 달려가 빈백에 자리를 잡고 원하는 책을 뽑아서 읽기 시작했다. 동네 도서관에는 없는 듯한 최신 만화책(graphic novel)을 골라서 읽기 시작한 지 30분. 더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미술관에 가야 한다며 사정하듯 끌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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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서점의 아이들 코너엔 나무로 만든 아이들을 위한 집을 설치해서 그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책을 읽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서점은 가장 최신 (만화)책을 골라서 공짜로 읽을 수 있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동네 도서관도 그렇다. 한 명당 100권을 넘게 빌릴 수 있고, 반납기한이라는 것도 딱히 없다. 읽을 만큼 읽고 가져다주면 되는 시스템. 매번 갈 때마다 30-40권씩 빌려 나오는데 돈을 버는 느낌이 들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은 먹을게 떨어지면 장 보러 가듯이 도서관을 가는 게 일상이다. 학교에서 받아오는 숙제도 책 읽기 30분과 5분 컷인 한 장짜리 문제 세트.



이런 환경들이 있어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책이 자연스럽게 문화가 되고, 커서도 책을 찾아 읽는 습관이 되는 것 같다.



올해 여름 한국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한국에 와서 아이들과 대형 서점을 들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흔한 남매 신간이 있나 가보니 애들 책이 모두 비닐로 쌓여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비닐로 철저히 쌓여있었다. 아이들은 랩으로 쌓인 책들을 몇 권 들고 와 사달라고 졸랐다. 그중 1-2권 정도 사주며 생색을 내고 서점을 나왔다. 언제부터 우리는 아이들의 독서를 "결재"를 해야 볼 수 있는 거래로 만들었을까. 어른들 책은 다 오픈해놓고 왜 애들 책만 그렇게 꽁꽁 쌓아놓은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한 "신뢰와 통제의 균형"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존중하되, 선을 넘었을 때 통제와 처벌은 심하게 하는 편이다. 그로 인해 통제에 따른 비용 (감시/지도)은 적게 드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100권 중 1권-2권이 손상되더라도 아이들이 다시 서점에 와서 책을 사볼 거라는 믿음. 독서라는 문화를 만들어 더 지속적이고 큰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지금의 손해는 지고 간다는 것.



반면 한국은 일단 믿지 못하는 게 디폴트로 시작되어 통제와 규율이 앞선다. 그로 인해 안 되는 것들에 대한 선을 그어놓고, 통제하는데 많은 비용을 쓰는 것 같다. 아이들이 망가뜨릴 수 있는 몇 권의 책과, 읽으면 안 살 거라는 팍팍한 마음들이 아이들에게 서점은 책을 읽는 곳이 아닌 "사는 곳"으로 만든 게 아닐까. 그렇게 아이들은 책과 더 거리가 멀어져서, 비닐이 뜯겨있는 책에도 손이 안 갈 텐데 말이다. 마트에 가도 시식 코너는 있는데, 서점에선 어른들을 위한 시식코너는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 시식코너는 없는 셈이다.



일련의 모습들을 보면서 예전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국제 개발 현장에서 한 공공기관의 프로젝트 인턴으로 온 친구가 1년간의 현장 생활을 이야기할 때 상급기관에 보고 하기 위해 A4 몇 박스 분량의 영수증을 한국에 보내고 뿌듯해했다는 웃픈 기억이었다. 공금을 투명하게 써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영수증 문화가 없는 그곳에서 영수증을 "만들어" 증명해야 했던, 그 먼 타지에 와서 그 작업에 힘을 쏟았던 인턴도. 통제와 규율이 지배하는 사회의 비용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고생해서 보낸 몇 박스의 영수증은 누군가의 혹시나 모를 증거로 남아 빛을 보지도 못하고 소각될 텐데 말이다. 시스템을 믿고 그런 행정 비용들을 줄이고, 더 큰 그림을 그리는데 힘을 쏟고, 대신 감사해서 걸리면 크게 벌하는 시스템이 모두를 위한 길이 아닐까.



다시 비닐로 쌓인 책과 열려있는 도서관으로 돌아와보자. 그렇게 한가했던 한국의 여름, 책이라도 읽고 싶어서 동네 도서관에 간 우리는 1명당 5권만 빌릴 수 있으며, 그것조차 동네 주민이 아니었던 우리는 도서관 카드 주인인 부모님을 모셔와야 한다고 해서 애들의 책을 빌리지 못하고, 그 이후로는 기계를 통해서 "몰래" 빌렸다. 그것도 늦으면 대출 정지가 된다는 경고를 들으며 시간에 맞추어 책을 반납하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다음부터는 그냥 가서 읽는 걸로 하자며, 애들과 함께 에어컨이 잘 나오는 도서관에 직접 가서 읽으며 여름을 보내고 돌아왔다.



허용된 것만 가능한(permission-based) 한국 사회. 미리 규칙을 촘촘히 해서 안 되는 것들을 세우고 시작하는 곳. 자율에 기반을 두고 책임을 크게 지우는(accountability-based) 미국 사회. 개인의 선의를 믿지만 일탈 시에 엄하게 벌하는 곳.



어떤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고 인간다운 것일까. 무엇보다 우리는 어디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 답은 결국 통제와 규율을 해서 누가 편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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