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서 빨래를 한다는 것

두 달 살기 중입니다.

by 차곡


빨래는 일주일에 한번 모아서 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빨래방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나는 주로 월요일 저녁에 빨래를 했다. 세탁을 하고 건조까지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꼼짝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좋았다.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자가 되어, 진짜 그 곳의 삶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빨래방은 호텔과 레지던스가 모여 있는 두 번째 블럭과 로컬들이 사는 세 번째 블럭 사이의 사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 곳에 앉아 있으면 꽤 다양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우선 여행할 때는 스마트폰으로 무장했던 나와는 180도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난생 처음 마주한 그 나라의 세탁기 앞에서 어버버하는 나. 아 세탁코인을 여기로 넣는 것 같고, 세제는 이걸로 하고, 건조까지 하려면 얼마가 필요하네, 잔돈이 얼마 있더라. 인터넷 연결이 끊긴 지피티처럼 헤매고 있을 즈음이면, 꼭 옆에서 누군가가 먼저 도움을 준다. 이쪽에 코인을 넣으면 되고, 이건 세제가 포함되어 있어서 넣지 않아도 된다는 대충 그런 내용의 현지어이다.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을 하고서야 겨우 세탁이 시작된다.


내가 갔던 곳은 'Laundry Bar'라는 곳이었다. 무인 세탁기와 건조기 옆에 작은 세탁소가 붙어 있었다. 가끔 점원이 나타나 다림질을 하다가, 또 어딘가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다림질 하기를 반복했다. 어떤 태국 청년이 수트차림으로 나타나, 자켓만 벗어 맡겼다. 그러자 어디선가 점원이 나타나 그 자리에서 빠르게 자켓을 다려주었고, 청년은 다시 자켓을 받아 입고 떠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젊은 현지커플은 사포린백에서 세탁물을 한가득 꺼내 중앙에 놓여진 커다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둘이 하하호호 웃으며 세탁물을 넣다가 갑자기 현지어로 막 싸우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행히 세탁기는 돌아가고 있었다.

건조는 누가 찾으러 오지? 같은 세탁기를 쓴다는 건 참 친밀한 관계구나, 세탁기를 돌리다 이별하면, 이 빨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내 세탁이 끝났다.

나는 다시 세탁물을 건조기에 집어 넣었다. 건조기 크기가 어찌나 큰지, 나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엄청 잘 마를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빨래방은 반오픈 구조라 테라스처럼 의자와 테이블 몇개가 놓여있었는데,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앞으로, 이 동네에서 자주 보던 부랑자 모녀가 들어와 앉았다. 아니 오늘은 아이를 안은 히잡 쓴 엄마와 그 할머니까지, 삼대가 함께 였다. 비가 많이 내려 점원은 그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테이블 위에 음식을 꺼내 빠르게 식사를 했다. 아, 저 점원 좋은 사람이었네. 근무시간에 자리 비우는 건 못 본 걸로 할게요. 비가 잦아들 무렵, 삼대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건조기가 반 이상 돌아가고, 점원이 자리를 비우면 내가 그 빨래방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된다. 코인을 어디에 넣을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마치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설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공간에서는 그렇게 역할이 천천히 바뀐다.


착한 마음은 돌고 돈다. 그래서 난 여기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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