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황금알을 낳는 경찰관이 산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가상화폐에 무려 고등학생이 돈을 넣어 빚이 생겼단다. 친구들에게 돈까지 빌려서 가상화폐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안 그 아이 부모는 그 즉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을 끌고 경찰서에 방문한 것이다.
어린 본인의 아들은 순진하게 속은 죄 밖에 없으니 ‘불법도박자’가 아니라 ‘사기피해자’라고 하면서도 아들을 어찌나 패던지 담당 경찰이었던 남편은 저러다 죽지 싶어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2018년 그날의 사건을 ‘천운’인지 모르고 세상 말세라며 혀를 찼던 나란 인간. 그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이후 내 소개에 ‘재테크와 투자에 진심’이라는 문구는 사라졌다.
경찰관의 아내로 산다는 건 뜻밖의 이득이 있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아파트 단지에 전에 없던 수상한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신고가 잦아지면 여지없이 부동산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무인점포의 도난, 관리 문제는 뉴스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남편의 업무를 과부하 상태로 만들어놓았었다.
경찰관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껏 쭈욱 나름의 원칙이 생겼다. 결코 내 상식으로나 사회적 통념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거다. 대표적인 예로는 신고자가 키우는 개에게 물린 사건인데, 출동했던 남편이 운 나쁘게도 그집 개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했다. 남편 손목 살이 파이고 피가 흘러도 치료는 경찰관 개인의 몫이며 대한민국 경찰관을 물어버린 개를 발로 차거나 욕도 할 수 없다는 점도 기가 막히다.
죽고 사는 문제의 최전방에 있든지 말든지 그저 잘하면 본전인 남편 직업군은 그렇다고 해도, 평생 동안 단 한 번만 겪어도 트라우마 생길만한 일을 매일 마주하는 경찰관의 연봉은 애국심마저 떨어트린다.
국회로 나가 1인 시위라도 하면 좋겠지만, 소심한 경찰관의 아내인 나는 남편의 근무연차만큼 재테크 공부 연차를 쌓았고 현재도 밤잠을 쪼개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강의를 듣는 중이다.
하필 주력하고 있는 부동산은 여전히 시들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한 주식에서 의외로 큰 성과가 나자 진한 현타와 동시에 불현듯 몇 년 전 고딩의 이야기가 스치 듯 떠오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같은 세상에 그야말로 ‘천운’을 몰고 다니는 직업이 아닌가.
신고내용을 주의 깊게 살피기만 해도 어쩌면 ‘내 집 마련의 타이밍’과 ‘무조건 손절해야 하는 투자처’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나 있는 딸내미 내복까지 물려 입혀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부동산 강의를 듣던 시절, 강의료가 너무 비싸 부담이 되어도 역시 돈은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는 거라며 부들부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던 수많은 날들, 주말마다 아이 맡겨가며 임장 다니느라 보낸 세월이 갑자기 억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아무것도 안 하면 영원히 가난할 것 같아서 놓을 수 없었던 새벽 독서와, 명상을 오늘도 했는데 이렇게 결실이 맺어진 건가 싶다.
‘역시, 시크릿은 구라가 아니었어'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이 중요한 사실을 알아채기까지 조금 긴 시간이 필요했고, 고난이 조금 있었을 뿐, 어쨌든 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가졌다.
‘여보 오늘은 무슨 사건이 많았어?’
첫 술에 배부른 법 없는 줄 아는데, 본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꿈에도 모르는 남편의 이야기는 너무하다 못해 그가 진정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까 의심마저 들게 했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치매할머니 실종신고와 술 먹고 취한 사람들 사건 후일담을 영혼까지 끌어모은 인내로 묵묵히 들으며 몇 해 전 가상화폐 거래로 경찰서를 찾아온 투자영재 고딩을 떠올렸다.
참고로, 그때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그 고등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현재까지도 그 학생을 투자영재라 칭한다. 버터기만 했어도 그 학생이 살던 아파트 몇 채는 샀을 거라 확신과 함께 말이다. 이에 반해 남편은 그때 엄마한테 걸린 게 신의 한 수였다며, 안 그랬으면 인생 크게 나락 갔을 거라며 혀를 찬다지.
영웅과 빌런을 오가는 일론 머스크의 행보를 보면서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안타까운 영혼이지만, 소중한 나의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니 보듬고 살아야지.
‘알만 낳아라. 황금으로 바꾸는 건 내가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