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위험하게 됐고 초록빛의 입술은 담담해 보였어
내 인생의 노래는 여러 곡이 있지만
내 인생의 노래, 라는 타이틀로 쓰는 첫 글에는 역시 처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쓰지 않는 옛날 블로그를 뒤져서 일기까지 찾아 읽은 걸 보면.
한희정 1집 <너의 다큐멘트>에 수록된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은 무자비했던 첫 이별을 감내하게 해준 노래다. 당시 희정 씨가 진행하던 아우라(아름다운 밤 우리들의 라디오)라는 방송도 큰 위로가 되었는데, 타국 땅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꼬박꼬박 챙겨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아우라의 클로징 멘트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네, 저는 한희정이었구요,
이제 힘들어 하지 말기로 해요.
내일은 아름다운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밤 11시에 시작되는 방송을 듣고 잠자리에 누우면 일주일이 지났다. 방송이 없는 일요일에는 지난 닷새를 곱씹다가 날짜가 5일이나 흘러갔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곤 했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저마다 기간은 다르겠으나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르는 법이고, 시간이 지나면 힘든 순간도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시간이 끝나고, 빛나던 순간이 저물어도 삶이 여전히 지속되는 것처럼 모든 순간은 결국 삶에 녹아든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이를 먹고 조금씩 단단해졌다. 한 뼘이든 두 발자국이든 내가 전보다는 약간이나마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시간이란 자상해서 그토록 죽을 것 같던 감정도 언젠가는 스스로 보듬을 수 있도록 안아준다. 나쁜 감정은 희석되고, 좋았던 감정은 따스한 흔적으로 남는다.
그래서겠지, 사랑이 지나고 난 자리에 추억이 남는 이유는.
이별은 매번 지독했지만 한 번도 시작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억지로 마음을 놓느라 홀로 증오와 원망의 말을 내뱉을 때조차 나는 사랑을 생각했으므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별은 없었겠지만 사랑 역시 시작하기도 전에 떠났을 것이다. 사랑은 늘 내 못난 점을 돌아보게 하고, 인정하게 하고, 또 나를 자라게 한다.
시작해서 끝났던,
끝났기에 시작하는
그 모든 순간들을 부지런히 삶으로 녹여내고 있을 사람들과 이 노래를 공유하고 싶다.
다문 입술 속엔
날 위험하게 만들
오 그 무엇이
모른 척 웃으며
네 앞의 브로콜리
오 하나를
(미안) 브로콜리가 내게 말하기 시작해
(우리 그만 헤어져) 이 몹쓸 브로콜리
난 위험하게 됐고
초록빛의 입술은 담담해 보였어
아름답게 우린 사랑을 했고
그거면 충분해
나는 지금 아프지만
다문 입술 속엔
날 불안하게 만들
오 그 무엇이
모른 척 웃으며
네 앞의 브로콜리
오 하나를
(미안) 브로콜리가 내게 말하기 시작해
(우리 그만 헤어져) 이 몹쓸 브로콜리
난 위험하게 됐고
초록빛의 입술은 담담해 보였어
아름답게 우린 사랑을 했고
그거면 충분해
나는 지금 아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