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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amI Jul 06. 2020

16.해냈다! 출산이란 걸

엄마는 위대하다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나와 남편의 2세 우리의 딸!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임신 기간이 드디어 끝났다.


애기가 태어난 지 7일째, 그 날의 경험을 잊고 싶지

않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다.


35주 까지 회사를 다니고, 36주 차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나라에서는 36주부터 임신 초기와 같이 2시간 단축근무를 주는데, 지금부터는 아무 때나 출산해도 정상 출산이며 막달은 하루하루 몸이 다른데 그때까지 회사에 나오라는 건지...


정말 아이러니한 제도이다.


35주 까지 편도 1시간 거리를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다니던 나였는데, 36주 들어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졌다.


고작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가도 배가 아파서 중간중간 멈춰야 하고, 골반과 사타구니가 아파서 힘든 건 일상이다.


자다가 자세를 바꿀 때마다 무거운 배를 낑낑대며 사타구니 통증으로 악 소리를 내야 했고, 잦은 소변과 폭풍 태동으로 불면증은 땔레야 뗄 수 없었다.


나의 담당 의사 선생님 영향인지 자연스럽게 자연분만을 생각했다. 꼭 수술해야 하는 상황 아닌 이상 자연분만을 생각했다.


난 엄살도 심하고 엄청난 쫄보이지만 여러 후기와 경험담을 들으니 살면서 한 번도 수술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자연분만을 생각했다.


38주부터는 하루하루가 초조했다. 나의 바램은 애기가 조금이라도 작을 때 빨리 출산하길 바랬다. 막달 생활이 갈수록 힘들어지니 빨리 임신기간을 끝내고 싶었다.


만삭 배로 뒷산 둘레길도 오르내리고, 시장도 일부러 걸어 다니며 시간 나면 틈틈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집이 숲세권인 덕분에 오르락 내리락을 하며 빨리 진통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바램과 달리 아무런 징조 없이 39주에 접어들었다. 하루하루가 예민해졌다. 조그만 몸의 변화만 있어도 이게 태동인가? 오늘인가? 하는 일이 잦아들었다.


그렇게 예정일이 가까워지고 이제는 예정일이 지나서 애기가 많이 클까 봐 걱정이었다.


예정일 이틀 전날 이상하게 더더욱 피곤했다.

만삭이어서 더 일부러 집안일을 하며 몸을 썼는데, 그 날은 밥도 청소도 다 싫고 컨디션이 너무 다운되었다. 무슨 자세를 해도 불편하고 딱히 배고픔도 없는데 언제 출산할지 모르니 늘 든든히 먹어야 하고 힘든 하루였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4시에 이슬을 보고 약한 진통을 느꼈다. 이게 진통인가? 싶다가도 그동안과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약한 진통으로는 병원 가도 다시 집에 되돌려 보낸다길래 어찌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화장실 갈 때마다 피가 비치고 아침이 되니 진통은 조금씩 세져서 병원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시 집에 올 수 있겠다 생각하였다.


병원에 가서 끔찍한 내진을 하고 검사를 하더니 진통이 시작되었고 다행히 양수는 안 터졌는데, 이미 진통이 시작되었으니 입원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무서운 가족분만실에 남편과 남았다.


주사 맞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관장도 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수액 바늘도 꽂아봤다.


모든 상황이 처음이고 두려워서 간호사분이 내 몸을 만질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내진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들 만진다는 게... 정말 끔찍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촉진제를 놔주셨다.

아직 진행이 느리고 초산이니 촉진제를 맞자고 하더니 정말 두 시간 후에 이게 진정한 진통이구나 하는 진통이 왔다.


진통 주기는 짧아지고 한 번 올 때마다 더 이상 남편과 대화도 할 수 없고 분만실 침대 시트를 쥐어뜯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진통이 오면 호흡법이 도움된다는 유튜브 정보로 열심히 해보았으나 강도가 세질수록 정신이 혼미해졌다.


너무 아파서 울부짖으며 무통 놔달라고 외치니, 이상태로 30분만 더 버티자는 것이다. 네??? 30분이요??

끝내 30분을 못 버티고 20분 지나니 무통 맞아도 되겠다 하여 무통을 맞았다.


친구들 말처럼 맞자마자 천국은 아니었다.

진통약이 드는 10분이 진짜 10시간 같았다. 1분마다 진통이 오고 몸은 베베 꼬이고 너무 아픈데 진통이 들으려면 몸을 가만히 있어야 한단다.

이게 가능한 것인가? 궁금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나보고 한숨 자라고 하셨다. 지금 자야지 나중에 애 나올 때 힘쓸 수 있다며.

그런데 무통을 맞고 큰 진통은 없지만 계속 진통은 느껴졌다. 도대체 이런 상태로 어떻게 잠이 드나 하던 와중에...


간호사 분이 내진을 보더니 애기가 내려왔다고 이제 힘줘서 낳자고 하셨다. 엥? 겨우 한 시간 정도 무통주사를 맞았는데?


갑자기 분주해지며 잠시 밥 먹으러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여러 명의 간호사분이 오셔서 힘을 줘보라고 알려주셨다.


정말 하체를 홀딱 벗고 여러 명이 있는 이 자리에서 이런 부끄러운 자세을 잡아야 하나... 정말 여자로서 수치스럽다 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수술대 위에서 출산 자세를 잡고 똥 싸듯이 힘을 주었다. 이때까지는 무통의 효과로 그냥 느낌만 날뿐 아프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하가가 애기가 나온다고? 오 할만한데? 이때까진 이랬다.....


나는 최선을 다해 힘을 주는데, 계속 힘이 부족하단다. 나도 답답하다 정말! 난 죽을힘을 다하는데 힘이 부족하다니...


또 하나 무서운 건 내가 힘주느라 숨을 참으면 뱃속에 애기도 숨이 멈춘다. 잘 들리던 심장소리가 안 들린다. 그래서 중간중간 애기 심장박동이 되돌아오도록 호흡도 해야 한다.


이러다 애기가 잘 못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계속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며 무통주사를 끊어버리고, 그때부터 제대로 된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전에 느낀 진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 울부짖을 정도의 진통이었고, 아플 때 힘을 줘야 하는데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최선을 다하는데 힘은 부족하다 하고 난 갈수록 힘이 빠지고 이렇게 한 시간이 흘렀나?


정말 내가 죽을 거 같아서 소리쳤다. “저 못하겠어요! 더 이상 못해요! 힘이 없어요!” 식은땀을 흘리며 정말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의사선생임이 드디어 들어오셔서 이제 와서 못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애기도 힘들고 빨리 낳아야지! 라며 호통까지 치셨다.


정말 고통이 극에 달하고 결국 간호사분이 내 배를 눌러주기 시작했다. 그때의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정말 내가 살면서 겪어본 최고의 고통이었다.


결국 간호사분이 꺼내 주셨다 해도 과언이 아닌 출산이었다.


이러다 나 죽겠는데? 하던 순간 꿀렁하는 느낌과 함께 애기가 나왔다.


드디어 끝났다! “애기 나왔죠?”라는 말을 하고 난 바로 넋을 놔버렸다.


순간 뭔가 뜨거운 게 가슴 위에 올라왔다. 피가 범벅인 애기가 가슴 위에 있었다.

내 뱃속에 있던 딸 인가?


그 순간 다들 감동스럽다던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솔직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뒤로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난 후 나는 후처치를 받느라 누워있고 뭔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나의 8시간 출산은 끝이 났다.


모든 후처치가 끝난 후, 10개월간 봐온 의사 선생님이 손을 잡고 잘 해냈다며 “어때? 할만하지?”라는 말을 하고 떠나셨다.


잊을 수 없는 고통이다. 이걸 두 번 해낸 엄마가 떠올랐다. 입원해있는 동안 면회 온 엄마를 보자마자 서로 눈물이 났다.


같은 여자로서 무언가 서로 아픔을 아는듯한 슬픔이었다.


난 이 힘든걸 두 번 해낸 엄마가 위대해 보이고 고마웠고, 엄마는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 일을 해낸 딸이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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