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권
결혼을 하면 으레 다들 아내가 경제권을 가지게 된다.
대체적으로 둘의 월급을 합쳐서 용돈을 받아서 쓰는 경우의 시스템을 많이 사용한다. 말만 들으면 참 편하고 효율 적인 거 같은데 내 주위에서는 유부남들의 불만을 참 많이도 들었다.
사회생활을 어릴 적부터 시작한지라 만나는 유부남들의 하소연은 일맥상통한다.
'나 용돈 30만 원(대략적으로 쓴 금액) 밖에 안돼~ 나 돈 없어~'
'내가 팀장이어도 너네보다 쓰는 돈 적어'
'하아.. 이거 사고 싶은데........ 와이프가 안 사주겠지?'
'카드 긁으면 와이프한테 바로 문자 가서 함부로 쓰면 안 돼!'
.
.
.
이 외에도 용돈이 적어서, 내가 돈을 열심히 벌어도 버는 거 같지 않아서 우울한 유부남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술 한잔 마시고 넋두리로 가볍게 말하는 건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릴 적부터 내 눈에는 안쓰럽고 짠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나 나보다 나이가 8-10살 정도 차이나는 유부남들이(당연히 회사에서 상사) 용돈이 없어서 돈 없다며 저렴한 커피 한잔도 팀원들에게 못 산다고 말할 때, 10-20만 원짜리 사고 싶은 물건 하나 못 사고, 사고 싶어서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나중에 내 남편도 저러고 다니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부터 옆에서 봐온 유부남들의 효과인지, 아니면 돈 관리 귀차니즘인 내 성향인지 결혼하고 자연스레 남편에게 돈을 관리하라고 넘겼다.
나는 자취 생활할 때, 가장 스트레스였던 부분이 돈 관리 었다. 내가 내 돈을 펀드나 적금으로 불리는 건 재밌었는데 생활비(시장비, 광고 금, 관리비 등) 지출하는 부분은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주어진 금액에서 쓰는 건 자신 있지만 금액이 줄어드는 잔고를 보면 괜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용돈이 줄어드는 건 내가 친구들 덜 만나고 술 덜 마시면 되지만, 생활비가 줄어드는 건 시장 가서 식재료를 살 때에도 배달음식 시켜 먹을 때도, 보일러를 틀 때에도 신경 쓰인다.
아... 이 정도 써도 이번 달 괜찮은가? 모자라면 어쩌지? 얼마나 모자랄까? 저번 달 생활비가 남았으니 이 정도는 더 써도 되는 건가? 둘이 같이 사니 공동의 돈이 되어버리니 더 신경 쓰였다.
이런 나 자신을 알기에 남편도 결혼하기 전 자취해본 경험이 있기에 돈 관리를 맡겼다.
우선 우리 집은 둘의 급여일이 너무 달라서 한 통장에 모으는 건 더 복잡한 일이었다. 그래서 각자 정해진 용돈을 정해두고, 생활비는 연애시절 쓰던 데이트 통장이 자연스럽게 생활비 통장으로 바뀌었다.
한 계좌에 2개의 체크카드를 쓸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연말 정산할 때 한 명이 너무 저축이 기울면 세금을 토해낼 수가 있기에, 공과금, 생활비, 가족행사비용 등을 적절하게 둘이서 자동이체로 설정해놨다.
아 개인적인 보험금은 각자 청구한다.(결혼 전 다들 보험을 들어놓아서 보험회사도 금액도 제각각이다.)이 외에 돈은 각자 일정 금액을 저금한다.
용돈은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저금도 하지 않는 용돈도 아닌 여윳돈을 10-20만 원 정도 각자 남겨두었다.
나도 남편도 소비가 심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나 자신에게 돈이 많이 들 때가 있다. 직장생활에서 조직 활동을 하는 우리는 가끔은 팀원들에게 밥을 사줘야 할 때가 있고, 각자의 취미생활에 1년에 1-2번쯤은 큰돈이 들 때가 있다. 또 서로의 생일에 서프라이즈 선물도 사야 하니깐 어느 정도의 여윳돈을 쓰고 있다.
특히 나에게 '생일 선물'은 서로 갖고 싶은걸 미리 알려주고 건네준다거나, 우리 20만 원짜리 선물로 이번에 고르자! 와 같이 금액대를 정해놓고 서로 주고받는 건 너무너무너무 싫다.
정이 없다고나 할까? 연애 때부터 선물은 그날 당일까지 베일에 쌓여있었다. 나는 이게 좋다.
맘에 안 드는 선물이 나와도 괜찮다. 서프라이즈로 짜잔~ 하고 보는 재미와 기대감이 좋다. 마음에 안 드면 어떠냐~ 내 돈 주고 내가 사면되지~~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모든 권한을 남편에게 넘겼다. 결혼하자마자"난 돈 관리하면 스트레스받는다. 나보다 성격이 꼼꼼하고 알뜰하니 오빠에게 맡길게! "
사실 결혼 준비하면서 나의 전적이 있다. 그 당시 둘이 돈을 모아서 금액대에서 스/드/메, 신행 티켓까지 금액을 충당하였는데, 내가 자신 있게 "내가 관리할게!"라고 큰소리쳤다가. 계속 실제로 통장에 들어 있는 돈과 내가 계산한 돈이 안 맞아서 애먹은 적이 있다.
남편은 결혼하면 당연히 용돈 받으면서 살 줄 알았는데 돈을 덜컥 맡기니 살짝 난감해 보였다. 하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며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한눈에 우리의 돈 관리를 볼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그는 생각보다 더 잘 해내고 있다.
우선 나도 같이 볼 수 있도록 열심히 구글 드라이브에 가계부를 쓴다. 참 대단하다.
벌써 1년 치가 쌓였고, 난 그저 가끔 들어가서 보는 정도이다. 나 같으면 벌써 관뒀을 일을 꾸준히 잘해오고 있다.
무턱대고 "여보 우리 여행 가자~" 라던가 "가보고 싶은 식당 있는 게 거기 외식하러 갈까?" 할 때, 가끔은 이번 주는 생활비가 거의 다 끝나서 다음 달은 어때?라고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나라면 이걸 어찌해야 하나, 그냥 모아둔 돈에서 좀 빼서 쓸까? 뭐 티도 안 나겠지? 밥 한 끼인데~ 하며 갈등했을 텐데 남편은 생활비의 행방과 실태를 알려준다.
여전히 서로의 용돈 사용 여부는 모른다. 뭐 사실상 집에 오는 택배들을 보면 대충 알 수 있긴 하다. 대부분이 남편이 카드를 긁으면 문자를 받는다거나, 카드 명세서를 확인한다는데 필요 없을 것 같다.
나도 내 용돈을 어디서 얼마나 지출했는지를 확인한다면 불편할 것이다. 가끔은 돈을 더 보태서 내가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친구들에게 가끔 술 한잔 사주며 위로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다들 결혼하고 나니 "경제권은 네가 가지고 있지? 뭐라고? 남편이? 안돼! 돈은 여자가 관리해야 해!"라고 말들을 하는데, 아직은 문제가 없다.
아마 내가 했으면 벌써부터 금액이 안 맞아서 어디서부터가 문제인지 입출금부터 따지고 있을지 모른다.
엄밀히 따지면 소비를 좋아하는 건 남편보다 나다.
경제권을 여자나 남자 둘 중에 한 명이 쥐고서 남편의 100원 하나까지 어디에 썼는지 확인하는 게 정말로 좋은 방향일까? 카드 알림이 문자가 올 때마다 궁금하고 의심은 계속 들꺼같다. 아니 지금? 누구랑? 무슨 일이길래?
언제까지 이런 평온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꼭 여자가 아니라 남편이 돈 관리를 해도 집 안은 평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