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르키 Jan 11. 2022

결혼식 이후, 싫어했던 가을을 좋아하게 되다

코로나로 우리의 야외 결혼식은 봄에서 늦가을로 바뀌었다.

재작년 봄에 상견례를 마치고 그해 가을부터 결혼을 준비했다. 규니네 어머니는 당장 가을에 식을 치르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겐 결혼은 불편한 굴레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미혼으로서의 시간을 조금 더 보내고 싶기도 했다. 우리 집에선 내가 좋을 대로 날짜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 봄에 하기로 했다.


우리는 남산 중턱에 자리해 숲으로 둘러싸인 야외 예식장을 골랐다. 구경하러 간 날에는 단풍 숲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었다. 규니는 이곳을 보자마자 무척 마음에 들어 했었다. 나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곳에서 결혼을 약속한다면 그까짓 가부장제쯤이야…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비가 오더라도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낭만적일 것 같았다. 우리는 야외 예식장 쪽으로 마음이 완전히 기울어버렸다. 다른 식장은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결정했다.


예정했던 결혼식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4월이었지만 코로나로 한 차례 예식을 미뤘다. 막상 미루려니 11 월 중순에 딱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게다가 오후 4시 반이어서 꺼려졌다. 그러나 이 날짜가 아니 면 다음 해로 또 미뤄야 했다. 결국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늦가을의 늦은 오후로 잡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바뀐 날짜가 오히려 길일이라고 해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날이 추울까 봐 걱정이었다. 11월은 내겐 늘 애매하게 쌀쌀하고 추워서 얼른 지나갔으면 하는 계절이었다. 아빠는 차라리 식을 다음 해 봄으로 미루면 어떠냐고도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추운 야외에 모셔야 할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규니네 부모님은 식을 더 미루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양가의 다른 가족들도 더는 미루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을 맞췄다. 하객용 핫팩을 준비할지, 히터를 빌려야 할지 논의하다가 어느덧 가을이 왔다.


우린 양가 아버지 두 분에게 덕담을 부탁했었다. 규니의 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 아빠는 극구 사양하며 엄마가 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도 못해요!”라고 했다. 아빠는 “당신 이 나보다 말을 훨씬 더 잘하잖아.”라며 거절했다. 처음에는 아빠가 왜 안 하려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왜 그러시느냐고 물어봤을 때 아빠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남자들만 덕담하는 결혼식은 이상해. 너희 엄마가 나오면 좋겠어. 엄마가 제2의 주인공이니까.”

 그 말을 듣고 왜 나는 진작에 그런 생각을 못했나 싶었다. 심지어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하는 것도 반대했다.

 “신부 신랑이 동시 입장하면 좋겠어. 내가 같이 들어가서 신랑에게 건네주면 내 딸을 바치는 것 같잖아. 그건 싫어.”

 

  그래서 우리는 함께 동시 입장하기로 했다. 덕담은 우리 엄마와 규니네 아버지가 맡았다. 축사는 절 친한 친구인 아름 언니가 맡아주었다. 화창한 날씨에, 단풍이 화사하게 핀 야외식장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지 않고 들어가, 엄마가 건네주는 덕담을 들으며, 놀러 와 준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다.  내 기억에 평생토록 남을 행복한 기억과 기분이었다. 


며칠 전에도 아빠가 내게 말했다. 

"신부 신랑 손 잡고 같이 입장하는 게 진짜 좋았어." 


+ 무엇보다도 사랑이 일순위였던 저의 결혼 이야기, 1화는 아래에서 구경하세요.

만 년 만에 만나서 반가운 두 거북이 (brunch.co.kr)

 


이전 06화 만 년 만에 만나서 반가운 두 거북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