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이전에 상업용 네이버 블로그와 개인용 티스토리 블로그도 운영한 적이 있어 블로그 생태계에 대해서는 남들보다는 이해도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브런치 작가에 지원한 이유는 내가 글을 쓸 재능과 역량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이다.
예전에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사주 따위 믿지 않는 나이지만,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줄 수 없는 무료 사주 어플리케이션에서 나에 대한 사주를 '글을 쓰고 먹고 살 팔자'라는 풀이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만큼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를 손에서 놓은지도 오래 되었고, 추상적인 내용의 에세이나 소설보다 직관적이고 명료한 환경에 노출되면서 그 감각을 점점 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 작가에 지원할 때에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선정이 되었다. 예전 티스토리라는 블로그에 양질의 글이 많이 올라오던 시절에는 '초대장' 시스템이 있었으나, 이제는 브런치 내부에서 심사를 통해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를 조절하는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수 십억 혹은 수 백억개가 될 수도 있는, 셈이 무의미한 도메인의 홍수 속에서 나의 것이 하나 생겨났으니 이것 하나를 잘 가꾸면서 살아가야 할텐데 초장부터 머리를 쥐어짜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닉네임 짓기'다.
닉네임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생물이 아닌 법인이나 비자연적 사물 역시 닉네임에 준하는 슬로건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라에 등록된 나의 본명(本名)과 인터넷 안에서의 이름이 같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자아를 생성할 수 있다는 축복이기도 하다.
축복은 축복이지만, 난데없이 자아를 표현하라고 하니 참 부담될 노릇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회원가입을 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름짓기다. 예전에 쓰던 몇 가지 닉네임이 있다. 녹차식빵, 안양냐옹이, 원할머니투할머니쓰리할머니.. 생각해보면 유치하고 도대체가 내 자아랑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 카카오톡에서 쓰던 '녹차식빵'이라는 닉네임이 자동으로 생성되었으나, 저것은 더 이상 나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단어다. 나는 녹차도 식빵도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 표현해달라고..?"
5초 정도 고민하다 내린 결론.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다. 아무 의미도 설명도 없는 도돌이표 같은 설명일수도 있겠다. 혹은 나에 대해 설명하기 게으른 사람의 자기변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 나를 오해없이 표현해주는 말도 없다.
'나'는 '내 존재'가 탄생 이후 지금까지 겪어온 시간과 개인적, 사회적 역사의 총 누적체다. 그 외에 나를 설명하는 모든 말은 그 명제의 부속되어 있는 하나의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 닉네임은 '나는 그냥 나야'로 지어보았다. 나중에 검색이 더 잘 되게 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는 키워드로 닉네임을 지어야겠지만, 첫 번째 닉네임은 이렇게 짓고 넘어가보자.
닉네임 하나 짓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들어갈 일인가 싶다.
게임 할 때에도, 커뮤니티 회원가입 할 때에도, 이제 생각해보면 별 시덥지 않은 수다 오픈채팅방에 들어갈 때에도 나는 늘 2글자에서 8글자 사이의 텍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했다. 인간의 뇌가 문자에 의해 사고방식이 영향을 받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대충 넘어가기에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앞으로 닉네임을 지을 때에도 가장 보편적인 명제의 속성을 지닌 닉네임을 사용해보는 것을 고려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