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처음 아르바이트 했던 편의점

by 나는 그냥 나야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갔다.

예전이라고 해보았자 10년 전이다.




12년 전에 나와 아버지가 살던 오피스텔은 월세 낼 돈도 없었고, 집의 가구에 딱지가 붙을 것이라는 말에 언제 압류 조사관이 우리집에 들어올지 불안해하며 살았다. 하필 내 방은 오피스텔 복도 바로 옆에 붙어있었는데, 지나가는 발소리가 조사관의 발소리는 아닐지 숨죽이며 있었어야 했고, 설사 우편 배달을 목적으로 누르는 초인종에도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절대 숨소리도 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숨죽이며 살다보니 이 오피스텔의 방과 복도 사이의 길에는 쥐가 살고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정도다.


나는 그 때의 심리적 트라우마와 생활 습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큰 돈을 써야할 때면 끊임없 고민하고 더 나은 방안은 없는지 끝까지 찾아본다. 이제는 대안을 찾아보는 시간을 쓰는 것이 덜 경제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습관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내 스스로 벌어가며 생활했다. 한창 가치관이 형성될 고등학생 시절 때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어찌보면 짠돌이 경제습관이 남아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13년 전에 처음 일했던 편의점을 우연히 지나갔다. 고등학생 신분인 나를 채용하는 것은 당시 사장님 입장에서는 꽤 큰 모험이었으리라. 나의 실수로 미성년자에게 주류나 담배를 판매할 때 영업정지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일했던 편의점이 내가 살았던 오피스텔의 1층에 있었기에 사장님은 그 부분을 채용의 중요한 부분으로 판단하신 것 같다.


사장님은 공무원 생활을 하시다 은퇴하신 분이셨다. 생활비가 빠듯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채용하고 무려 법정 최저시급을 준수하며 주셨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최저시급을 지키지 않는 곳이 허다한 것을 생각하면 나에게 첫 아르바이트는 큰 행운이었다. (주휴수당이나 휴일 수당은 받지 못했다)


시급을 잘 쳐준 것은 감사하지만, 내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일까? 매대를 수시로 정리하고 한 시간에 한 번씩 먼지를 털고, 손님이 오실 때에는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라고 알려주셨는데, 그 당시에는 가르쳐주는 방식이 강압적으로 느껴졌다.


"그냥 좋게 말로 해도 될 것을 왜 이렇게 혼내듯이 알려줄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겠거니 한다. 그 당시에는 사장님이랑 교대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고, 결국 사장님이 무서워서 그만두었지만, 사장님은 아마도 나에게 예절과 사회성을 가르쳐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첫 아르바이트를 경험삼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 그것을 경험 삼아 치킨집 아르바이트, 그 다음에는 아울렛 판매직, 그 다음에는 어느 광고회사의 직원으로 채용되었으니, 안양시청 맞은편 세븐일레븐은 내 사회경험과 경제생활의 초석(礎石)이기도 한 곳이다.




그런 추억의 장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추억을 돌아보는 입장에서 큰 행운이다. 나는 손님인 척 들어간 뒤 냉장 매대와 과자 매대를 보며 그 때 생각에 잠깐 잠겼다. 아쉽게도 막연히 생각에 잠기기에는 10평도 되지 않는 좁은 매장이라 카운터에 서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직원의 눈초리가 그대로 느껴져 물건을 고르는 척 오래 생각에 잠겨있을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추억에 잠기기만 할 생각이었으나, 이 정도로 시간을 끌었으니 무어라도 사지 않으면 안되는 눈치였다. 그 와중에도 가장 경제적인 선택인 2+1 커피를 구매하고 나서 카운터에 갔다. 나는 그 직원에게도 커피를 하나 줄 마음으로 슬쩍 물어보았다.


"지금도 여기 사장님이 공무원 은퇴하신 부부 사장님이신가요?"


직원은 경계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언제적 사장님이요..?"

라고 물어보았다.


"제가 사실 10년 전에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서요.."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직원은

"아.. 사장님 바뀌었어요"

라는 차가운 대답과 함께 대화를 끊어버렸다.


커피를 주고자 하는 나의 마음까지 끊어져 어색한 공기와 함께 누가 사줘도 마시지도 않을 카라멜 마끼야또 3병을 양손 가득 들고 허겁지겁 나왔다.


그래도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보이는 사거리의 풍경은 10년 전과 똑같다. 시청 맞은편에 있어서 직장인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횡단보도를 하나만 건너면 공원이 나와 공원에서 공놀이를 하고 오는 사람들이 자주 오곤 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보인다. 옆에 있던 식당, 위에 있던 식당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비록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지만,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현기증이 찾아올 정도지만,


내가 처음 일했던 곳, 내가 처음으로 나의 사장님을 두려워하고 욕하던 곳, 내가 처음으로 술과 담배를 사서 나가던 곳, 그 물리적 환경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내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는 입장에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1. 닉네임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