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이자 경영 구루 짐 콜린스(Jim Collins)는 경영자의 필독서가 된 여러 권의 책을 냈습니다. 대표적인 책은 제리 포라스와 공저로 1994년에 출판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D TO LAST)>, 2001년에 출판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2009년에 출판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입니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은 책의 원제목처럼 창업할 때부터 영속하는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서이고,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좋은 기업의 단계까지 성장시켰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하지만 두 책의 공통적인 지향점은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창업가 또는 경영자가 기업 성장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따라 책을 활용하면 됩니다.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은 이 책들에서 제시하는 위대한 기업의 특징을 점검표로 활용하면 좋은데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 그 특징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짐 콜린스는 4단계를 제시하는데 간단하게 정리하면 위대한 기업은 훈련된 사람들이(1단계) 훈련된 사고를 통해(2단계) 훈련된 행동(3단계)을 함으로써 위대함을 만들어내고 그 위대함을 지속시킨다(4단계)는 것입니다. 훈련된 사람들이란 훈련된 리더(단계5의 리더)가 적합한 인재들을 모아 만든 훈련된 조직을 말하고, 훈련된 사고란 현실을 직시하면서(스톡데일 패러독스)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동시에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고슴도치 컨셉) 사업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훈련된 행동이란 훈련된 사고를 통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반복적인 노력을 통해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플라이휠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3단계를 완성한 위대한 기업도 언제든 몰락할 수 있으므로 이 위대함을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끌어와 ‘시간을 알려주지 말고 시계를 만들고’ ‘핵심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정리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1단계부터 3단계까지는 논리적이고 연속적인데 4단계가 뭔가 모호합니다. 그래서 4단계의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짐 콜린스가 그의 연구를 통해 경계하는 것은 카리스마형 리더입니다. 그 이유는 카리스마형 리더는 탁월한 성과는 내지만 조직의 성공이 아니라 리더 개인의 성공의 집중하기 때문에 그 리더가 경영자로 재임할 때는 좋을 수 있지만 리더가 떠나면 성과를 낼 수 없게 되어 결국에는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기업은 한 명의 탁월한 리더가 아니라 다수의 탁월한 인재로 구성된 탁월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그 탁월한 조직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바로 탁월한 리더가 만듭니다. 다시 말해 리더는 여전히 위대한 기업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리더의 유형이 다를 뿐입니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의 리더로 ‘단계5의 리더’를 제시합니다. 두 리더 유형의 공통점은 탁월한 성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은 카리스마형 리더가 개인의 성공에 집중한다면 단계5의 리더는 조직의 성공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성공에 집중하는 리더는 개인적으로는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을 만큼 겸양의 미덕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위대한 기업은 단계5의 리더가 훈련된 조직을 만들어 훈련된 문화와 훈련된 행동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기업을 말하며 여기서도 탁월한 리더라는 조건은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짐 콜린스는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도 변치 않는 핵심가치와 존재 이유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열하게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면서 ‘크고 담대하며 도전적인 목표(BHAGs)’를 설정한다는 것입니다. 일관성과 지속적인 혁신이라는 양면성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리더의 사후에도 계속 가능할까요?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또다른 단계5의 리더를 후임자로 계속 연결해가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짐 콜린스가 탁월한 한 명의 리더를 경계해야 하며 그래서 탁월한 조직을 만들어야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여러 저작을 통해 말해왔지만 결국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은 탁월한 리더가 만들고 탁월한 리더가 계속 연결되어야만 가능한 기업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기업을 만들기 어렵고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이유입니다. 따라서 한 때 위대했던 기업이 왜 몰락했을까에 의문을 품을 게 아니라 한 때 위대했던 기업이라도 몰락하거나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을 사람들은 계속 찾고 꿈꾸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도 필요할 것입니다. 판단을 위한 원칙은 이미 짐 콜린스가 훌륭하게 정리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실행지침만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그의 저작들에서는 그 실행지침들을 (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원칙들을 통찰하여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을 발견하는 두 가지 지침을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단계5의 리더가 만들어낸 탁월한 기업들의 리스트를 만듭니다. 그 다음, 단계5의 리더가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기업들을 골라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후보 기업들을 정리한 후 이 기업들의 역대 CEO 리스트를 연대순으로 작성하고 그 리더들도 단계5의 리더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워밍업 차원에서 국내 기업 중 몇 개 기업을 예로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IT기업을 대표하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위대한 기업일까요?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창업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업가들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하는 단계까지 가긴 했지만 아직 전문경영인 중 창업가를 넘어서는 인물이 등장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아마존은, 테슬라는 위대한 기업일까요? 같은 이유로 아직 아닙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는 위대한 기업일까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창업가가 리더에서 물러나고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리더들이 등장하여 탁월한 성과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짐 콜린스의 저작들에서 성공사례로 다룬 기업 몇 개를 뽑아내 탁월한 리더들이 연결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GE(General Electric).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카리스마형 리더가 아니라 탁월한 리더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GE와 1981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20년간 GE의 CEO를 역임한 잭 웰치를 들었습니다. GE는 찰스 코핀이라는 단계5의 리더가 초대 사장으로서 조직을 설계했고 내부 선발이라는 문화와 전통을 통해 리더가 연결되어온 기업이었습니다. 짐 콜린스는 다음과 같이 확신을 가지고 썼습니다. “하지만 웰치의 지도력만 강조하는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웰치는 GE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웰치가 지금의 GE를 있게 했지만, 마찬가지로 GE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웰치가 있을 수 있었다. GE라는 조직이 웰치를 채용하고 키워서 지도자로 선택할 만한 능력이 있었던 셈이다. GE는 웰치의 임기 훨씬 이전에 이미 번성하고 있었고, 아마 그의 임기 이후에도 오랫동안 번성할 것이다. 웰치가 GE 역사상 최초의 뛰어난 사장이라고 할 수 없듯이 그가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잭 웰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으로 GE를 당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GE의 매출은 10배 성장했으며 기업가치는 무려 40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잭 웰치가 CEO에서 물러난 이후는 어떨까요. GE의 전통인 내부선발 원칙에 따라 후임 CEO가 된 제프리 이멜트는 잭 웰치가 만들어놓은 버블을 해결하느라 무려 16년 동안이나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불명예 퇴진합니다. 그 후임으로 역시 GE의 전통에 따라 GE에서 31년간 근무한 존 플래너리가 선임됐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GE 126년 역사상 최단기 CEO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그는 경질됩니다. 그리고 2018년 GE의 오랜 전통을 깨고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인사인 래리 컬프가 CEO가 선임됩니다. 한 때 위대한 기업의 대표 사례였던 GE는 짐 콜린스가 경계했던 카리스마형 리더 잭 웰치에 의해 126년의 역사를 끝장내버릴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를 봅시다. 한 때 위대한 기업이었으나 몰락했다가 다시 위대한 기업으로 회복한 사례로 짐 콜린스가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다룬 IBM. 1896년 설립된 IBM은 1914년 단계5의 리더였던 토마스 왓슨을 CEO로 영입하면서 급성장의 계기를 만들었고 그의 아들인 왓슨 주니어가 경영을 승계하고 1971년 퇴임할 때까지 무려 50년간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하향세를 그리더니 1990년대 초반에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IBM에서 잔뼈가 굵은 존 에이커스가 CEO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세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결국 IBM 100년 전통을 깨고 최초로 외부 인사가 CEO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1993년 또다른 단계5의 리더 루이스 거스너가 CEO에 취임하면서 IBM을 다시 한번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CEO로 취임한 후 기자회견에서 그가 말한 내용입니다. “지금 당장 IBM에 가장 필요 없는 것은 비전입니다.” 부임 후 3개월동안 가는 곳마다 서랍 가득히 미래 비전계획서가 차 있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 짐 콜린스는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의 특징이라는 관점에서 루 거스너의 업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거스너는 핵심 가치와 운영 관행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실타래를 잘 풀었다. 고루한 전통과 비합리적인 규칙을 폐지하는 동시에 IBM의 핵심 가치와 탁월성 및 성공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네트워크 컴퓨팅이 분산 컴퓨팅을 대체할 것이라는 통찰력에 확신을 갖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정보통신 회사가 될 거라는 담대한 목표를 세웠다.” 루 거스너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낸 후 60세의 나이로 정년 퇴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IBM은 어떨까요? IBM이 위대한 기업이라면 루 거스너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했어야 합니다. 루 거스너가 퇴임한 것이 2002년이고 짐 콜린스가 2009년 출판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IBM을 위대함을 회복한 사례로 다뤘기 때문에 루 거스너 이후의 IBM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루 거스너는 1973년 IBM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자신이 주도한 혁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수준까지 성장한 사무엘 팔미사노를 CEO로 지명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역시 단계5의 리더였던 팔미사노는 CEO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IBM을 한 단계 도약시킨 후 IBM에서 오랜 기간 성과를 창출한 지니 로메티를 후임으로 지명하고 2011년 정년 은퇴합니다. 그러나 로메티는 부진한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20년 불명예 퇴진하고 IBM 클라우드 및 인식 소프트웨어 부문 수석 부사장 출신인 아르빈드 크리쉬나가 후임 CEO에 오릅니다. 그러나 2012년 정점을 찍은 IBM의 기업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에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차례가 됐습니다. 전세계 경영자들을 감동시키고 철저한 데이터와 연구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짐 콜린스의 저작들은 한낱 이론에 불과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저작들은 분명 경영에 도움이 되는 지표와 원칙, 통찰력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그 위대함을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 뿐입니다. 따라서 짐 콜린스가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의 특징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그의 이후 저작 리스트에 영속하는 위대한 기업들의 사례를 다룬 책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 결과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창업가/경영자 관점 그리고 투자자 관점, 두 가지로 나누어 간단하게 적용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창업가/경영자 관점에서는 수 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 있는 내용들이니 책의 지식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 때까지 두고두고 곱씹을 것을 추천합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해보고 싶습니다.
첫째, 짐 콜린스가 제시한 위대한 기업의 특징을 갖춘 기업 목록을 만들어보자.
둘째, 그 기업들 중에 단계5의 리더가 경영하는 기업을 선별하자.
셋째, 단계5의 리더가 연결되는 기업에 장기 투자하자.
더 현실적으로 정리하면, 위대한 기업 중 단계5의 리더가 경영하는 기업에 투자하되 리더십이 변경되는 경우는 리스크로 간주하고 단계5의 리더가 경영을 승계하지 않는다면 주식을 팔고 단계5의 리더가 경영을 승계한다면 투자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장기 투자하는 가치투자자 성향을 가진 분들에게 해당될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봅니다. 기업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 과연 그런 기업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기업이 등장하길, 그런 기업이 되기를 꿈꾸는 창업가와 기업가가 많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기업 역사가 긴 해외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는 기업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기업이 하나 있습니다. 짐 콜린스의 책에서는 이 기업을 사례로 다루지 않았지만 위대한 기업의 원칙에 부합하고 탁월한 CEO들을 배출해왔으며 기업가치 역시 지난 수 십년 동안 우상향 추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기업이라는 주제로 글을 다시 쓸 기회가 된다면 이 기업을 다뤄보고 직접 투자를 통해 이 글에서 정리한 기준을 적용해볼 생각입니다.